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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안 Mar 09. 2020

여성을 위한 술집

제주 고산리 '수월'

여성을 위한 술집, 제주 고산리의 #수월 아이, 동물, 남성 누구든 '여성이 원하면' 함께 할 수 있는 곳이다.


안전하고 안온한 술집이기에


저녁 7시 반, 혼자 술을 마시던 어떤 여자 분 근처에 자리를 잡았다. 사장님 혼자 주문 받고 요리 하고 계산도 하시기 때문에, 다른 손님의 요리가 준비되는 동안 곳곳을 둘러봤다.


사장님은 '마마'라는 개를 임시보호 중이다. 이 개를 소개하는 프린트들이 눈에 띈다. 계산대 밑 낮은 책장에는 제주와 동물 그리고 젠더의 책들이, 입구 옆 작은 유리잔에는 가져가도 되는 세월호 리본 고리들이 있다. 어느 한 곳을 향하는 듯 보이는, 따뜻한 물성의 온갖 것들.


저녁 8시 반쯤 여자 손님 두 명이 더 왔다. "식사 하고 오셨으면 안주는 안 시키셔도 돼요. 편하게 보세요." 사장님의 세심한 한 마디가 귀에 든다.


시기상 손님이 거의 없어서 음식 재료들을 많이 버리게 되자, 당분간은 미리 전화 주는 손님이 있는 날만 오픈하게 된 와중이다. 그 '와중'이 내게 주어졌어도 난 손님에게 저렇게 말할 수 있었을까.


여성을 위한다는 것


여성을 위한 술집이라 하면, 여성만 이용할 수 있느냐고 물을 수 있겠다. 첫 단락에 쓴 것처럼 그렇지 않다. '~을 위한'과 '~만'은 그 세계가 완전히 다르다. 앞서의 말은 배려와 포용이지만, 뒤의 말은 배제와 한계이니까.


사장님이 얼마 전 인스타그램에도 쓰셨지만, 여성만 이용할 수 있다고 한다면 아이와 동행하는 여성이 가장 먼저 배제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디, '아이와 동행하는'이란 수식을 빼기가 쉬운가. 우리 주변과 그 주변에서 말이다.


이 사진을 내 인스타그램에 올렸는데, 사장님이 이런 말을 남기셨다. '처음으로 내 작고 소심한 간판 알아차려 주신 손님 고맙습니다!' 


사장님이 이 공간을 통해 세상에 이야기하고 싶은 '지향'이 여성은 되고 남성은 안된다는 정도의, 단순하고 간단한 무엇은 아닐 거라고 가늠해본다.


이곳 책장에서 꺼내 읽은 #여자둘이살고있습니다 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멀리 가려면 같이 가야한다. 그래야 지루해지지 않으니까.'




고등어를 익혀 잘게 부숴넣은 볶음국수, 계란물로만 구운 새우전, 스페인식 차가운 샐러드 문어뽈뽀, 달달한 밤조림 등이 있다. 술은 위스키, 꼬냑 등 리쿠어들이 다양했는데 잔으로 주로 판다. 맥주는 스텔라가 좋다. 새 메뉴가 꾸준히 생겨나는 편. 3월 초, 제주산 갑오징어 칼라마리, 폰즈소스 통가지튀김, 봄나물(냉이, 달래, 쑥갓) 튀김, 제주산 돼지고기 쇼가야끼가 추가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소: 제주시 한경면 고산로 26-1 (무명서점 아래 층)
인스타그램: @suwoul / 트위터: @suwoul_gos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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