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안 Jan 01. 2021

헬싱키의 도서관과 함께 한 하루

<월간 국회도서관> 2020년 9월호에 실은 글

2020년 7월 말 어느 하루였다. 인스타그램 DM이 왔다. <월간 국회도서관>을 제작하고 있는 주무관님이었다. <월간 국회도서관>의 '아무튼 도서관'이라는 코너에 도서관을 주제로 자유롭게 쓴 글을 실어줄 수 있는지 요청이었다. 그 분은 이전부터 내 인스타를 봐오신 것 같았다. 특히 내가 2019년 11월경 퇴사 후 쓴 일부 게시물을 보신 모양이었다. 그때 당시 도서관에 매일 같이 다니며 했던 경험, 도서관 자체에 대한 내 오랜 생각이나 애정 같은 것이 게시물에 담겨 있었다.


DM을 본 그 순간 얼마나 떨렸는지. 기쁘고 설레고, 기뻤다. 학교 다닐 때도 학내 언론사 기자로 활동했고 실제 기자가 되어 글을 써보기도 했기 때문에 외부에, 공식적으로 내 글이 소개되는 것이 처음은 아니었다. 하지만 원고료를 받는 것, '내 글'을 소개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때 당시 강민선 작가의 <자책왕>을 읽고 있었다. 도입에 적힌 책 소개는 이렇다. 스스로를 자칭 '자책왕'이라 부르는 한 1인 출판업자가 매일 자책하며 쓴 글을 담은 책입니다. 여러 이야기들이 묶여 있는데, 그 중 '거절할 수 있는 제안'이라는 제목의 이야기는 창작자에게 무언가를 같이 해보자고 제안할 때 지켜지기를 바라는 10가지를 다룬다. 6번이 이렇다. '특히 원고를 요청하는 거라면 마감일, 고료, 입금일, 이 세가지는 안내가 필수예요.'


저 부분을 읽으며 언젠가 원고 요청, 출판 제안을 받게 될 때를 상상했었다. (꿈 하나를 꿔도 야무지게 꾸는 편)그런 날이 왔을 때 마감일, 고료, 입금일 이 세 가지는 꼭 먼저 확인해야겠다고 생각하면서. ㅋㅋ 주무관님으로부터 받은 DM에는 이런 곳에 실을 원고를 요청드리고 싶다는 내용 정도만 있었다. 그래서 원고 작성 희망하나 메일을 통해 몇 가지를 여쭤보고 싶다고 DM 답장을 보냈다.


알고 보니, 주무관님이 나에게 '연락처(메일 주소 등)를 알려주면 보다 자세한 사항을 안내하겠다'고 한 DM도 같이 보내셨는데 그 DM만 전송 과정상의 어떤 문제 때문인지 누락이 됐던 것이다. 주무관님이 다시 자신의 메일 주소를 알려주셨고 나는 그 메일을 통해, 주무관님이 원래도 먼저 알려주려고 하셨던 그런 정보들을 질문했고 협의는 원활하게 마무리 됐다.


도서관을 주제로 쓰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것, 가장 끌렸던 것은 2019년 헬싱키 여행 때 방문한 Oodi 도서관과 헬싱키 대학교 도서관이었다. 이전에 브런치에 올려둔 것을 다듬고 살을 붙였다. 글은 역시 보면 볼수록 고치고 싶은 부분이 생기는데 그 글도 그랬다. 써놓은 글의 틀을 유지하면서 다듬기만 한다 해도 시간이 꽤 걸리는 이유다. (써놓은 글 다듬기와 새 글 쓰기는 드는 시간과 노력 면에서 결코 큰 차이가 없다.)


두 도서관을 소개하는 내용만 담기보다 그곳에서의 내 기억과 감정을 담고 싶었다. 두 곳에서 내가 품어 데리고 온 기억과 감정의 총체가 현재의 내가 지닌 삶의 태도이자 가치관이라고 해도 무색함이 없어서다.


마감 시간 직전까지 원고를 보고 고쳤다. 원고를 전송한 뒤에는 참 뿌듯했다. 고료를 받고 원고를 쓰는 경험 자체도 그랬고, 그 원고에 '내 이야기'를 충분히 담을 수 있었다는 것도 그랬고.



원고가 실린 책자를 배송 받은 날, 인스타그램에 이렇게 기록을 남겼다. (세 문단이 한 기록.)


'국회도서관'에서 발간하는 <월간 국회도서관> 9월호에 작은 글을 하나 실었다. 코너 이름은 '아무튼, 도서관' 도서관을 좋아한다고, 도서관은 나에게 이런 의미라고 쓴 내 인스타 글을 전에 보신 담당 주무관님이 원고 제안을 주셨다. 그래서 처음으로 '고료'를 받는 글을 쓰게 됐다. 뵈어보지도 못한 분인데, '아무튼' 감사하다.
2019년 12월 27일, 그날 하루는 온종일 도서관에 있었다. 헬싱키 중앙도서관 #Oodi 와 헬싱키대학교 도서관. 그때 보고 듣고,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썼다. 열 몇 해의 삶에서도, 스무 몇 해의 그것에서도 도서관은 나에게 위로가 아니었던 적이 없는데 기쁜 기회마저 가져다줬다고 생각하면 조금 뭉클하다. 도서관에도, '아무튼' 고맙다.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도서관은 거의 줄곧 문을 닫고 있다. 공공기관이니까 더. 이 책도 보내주신 택배로 확인했다. 이 책은 도서관에 있는 게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은데, 도서관에서 꼭 보고 싶었는데. 함께의 공간에서 각자의 시간을 보내는, 도서관의 그날이 얼른 오기를 바라며.


다만 이번 기회를 빌려 한 가지만 더 전해보자면, 글에 이 문장이 있다. '그런 자리가 왜 있는지 설명 해주듯 평일 낮 시간인데도 아이를 데려 온 엄마, 아빠가 많았다.' 처음 원고를 쓸 때도, 원고 편집이 완료된 후 수정 원하는 부분 있으면 알려달라는 말을 들었을 때도 고민을 한 부분인데 바로 '엄마, 아빠'라는 단어다. 아이를 돌보고 있다면 높은 확률로 그들은 부 또는 모이겠지만 확실할 수는 없는 부분이다. 삼촌, 이모일 수도 있고 나아가서는 직업 차원에서 보육 역할을 하는 남성 또는 여성일 수도 있고, 한국으로 치면 위탁 가정이라 불리는 것일 수도 있다. (위탁 가정: 친부모가 아이를 돌볼 수 없는 상황일 때 일정 기간 다른 가정에서 아이를 돌봐주는 것.) 우리가 '별 뜻 없이' 엄마(여성), 아빠(남성)를 가족 또는 양육자의 기본값으로 놓을 때 기본값에서 벗어나는 존재들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삶을 살지 상상해본다면, 평범해보이는 단어 하나도 사용이 조심스러워진다. 고민을 했음에도 글에서 내가 최종적으로 엄마, 아빠라는 단어를 남긴 이유가 명확히 기억나지는 않는다. 공식적인 채널이든 개인적인 채널이든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되는 글을 쓸 때는 '피하지 않는 것'이 곧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딘가 '이게 맞을까?' '이것도 괜찮을까?'라는 질문이 생기면 고집스럽게 고민하기. 쉽게 타협하지 않기.


아래는 <월간 국회도서관> 2020년 9월호에 실린 원고의 전문이다.




2019년 12월 핀란드 헬싱키에 있었다. 2년 조금 넘게 다니던 곳에서 퇴사하고 세 번째 회사, 그러니까 지금의 회사에서 최종 합격 연락을 받은 후였다. 한국의 친구들도, 심지어 거기서 만난 핀란드 사람들도 ‘왜 핀란드인지’를 궁금해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다. 적어도 가기로 했던 그때의 이유는 모르겠다. 홀리듯이 핀란드로 결정하고 흘러가듯 핀란드에 도착했다. 헬싱키에서 더 북쪽의 라플란드 지역을 돌아 다시 헬싱키로 왔다. 12월 26일에서 27일로 넘어가는 새벽이었다. 날이 밝으면 내가 갈 곳은 헬싱키 중앙도 서관 Oodi(오디)와 헬싱키대학교 도서관이었다. 중학생 때부터 혼자 도서관을 다닐 만큼 도서관은 늘 좋았지만, 다른 나라 여행에서 그곳의 도서관을 가는 건 처음이었다.


도서관이 아닌 도서관을 만나다


아침 10시가 조금 넘어 숙소를 나섰고, 천 천히 걸어 헬싱키 중앙도서관 Oodi에 도 착했다. 중간에 길을 잘못 든 덕분에 Oodi 근처의 호수(나중에 알아보니 ‘만’이었다) 를 걸을 수도 있었다. Oodi에 들어섰을 때 든 생각은 ‘도서관이 맞나?’였다. 한국에서 흔히 봐 온 도서관은 1층에서부터 ‘나 도서관이야’를 외친다. Oodi 1층에서 사람들은 같이 온 이들과 이야기 나누었고, 몇 가지 책과 판매 중인 기념품을 볼 수 있었다. 3유로짜리 검정색 에코백을 하나 샀다. 돈을 아껴보려 맥주도 두 번 고민하고 사던 여행인데, 도서관 기념품에는 지갑이 쉽게도 열렸다. 2층으로 올라갔다. 개별 또는 그룹 스터디룸과 3D프린팅 실험실, 게임하는 곳이 보였다. 아이, 어른 모두 실제로 그 공간들을 이용하고 있었다. ‘구색’을 맞추기 위한 게 아니구나, 싶었다. 계단식 또는 개방형의 쉴 자리도 충분했다. 마지막 층인 3층으로 오르는 길은 나선의 계단을 지나야 했다. 아래를 내려다보면 검정색 난간과 하얀색 계단이 교차하며 점점 작아졌고, 옆으로는 검정색 난간 벽들 사이로 2층의 일부가 보였다. 건축에 대해 잘 모르지만 좋은 건축이란 영감을 깨우는 것이라 감히 말한다면, Oodi는 이미 그 위치에서부터 좋은 건축이었다. 신났다. 설레었다. 자세한 정보를 모른 채 도서관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왔는데, 모르고 온 게 미안한 생각이 들던 중 Oodi의 핵심인 3층에 다다랐다. 하나의 큰 타원인 3층은 외벽 전면이 유리여서 어디서든 바깥이 보였다. 가운데에는 작은 카페테리아와 도서 대출 및 반납대가 있었다. 가운데의 양 옆으로 놓인 서가들은 160cm대인 내 키와 비슷했다. 장서 수가 많다고는 할 수 없었지만 분류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픽션, 논픽션 같은 분류 방식 에 ‘LGBTQIA+’가 더해졌다.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할까.


Oodi는 책을 기반으로 다양한 문화 경험을 하는 곳이었다. 그 경험에는 경계가 없었다. 아이와 그 보호자, 학생을 포함한 청년, 나이 지긋한 어른, 장애인과 비장애인 이 모두 어우러졌다. 저마다의 목적이 부딪히지 않은 채, 그러면서도 한 공간에서 배제 없이 조화롭도록 3층은 구획되어 있었다. 자세 잡고 공부할 사람, 편하게 기대어서 태블릿을 볼 사람, 일행과 함께인 사람 누구든 원하는 자리만 찾으면 된다. 휠체어와 유아차가 다닐 수 있도록 3층 유리창 옆을 따라 크게, 계단 없는 길이 당연히 있었다. 아이들은 전용의 낮은 서가는 물론 공간 곳곳을 양말만 신은 채로 자유롭게 다녔다. 또한 공간이 더 확보되는 느낌이 들도록 하는 장치들도 있었다. 이를테면 옷걸이가 곳곳에 보였는데 그것도 어른용과 아이용으로 나뉘어 있었다. 이용객의 입장에서 외투만 걸어둘 수 있어도 꽤 많은 사적 공간이 확보된다. 실내에 유아차를 세워두는 널찍한 자리도 눈길을 끌었다. 그런 자리가 왜 있는지 설명 해주듯 평일 낮 시간인데도 아이를 데려온 엄마, 아빠가 많았다.


오후 4시에서 5시 사이, 헬싱키대학교 도서관으로 향했다. Oodi로 돌아올 생각이어서 지갑과 핸드폰만 챙겼다. 가방은 그대로 뒀다. 핀란드 여행 동안 내 물건을 누가 훔쳐갈 걱정은 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곳이었다. 헬싱키대학교 도서관도 Oodi에서 걸어갈 수 있었다. 가는 길에 외관이 고풍스러운 책방을 발견해 한참 들여다보기도 하고 근처에서 살짝 헤매기도 했다. 1시간 여를 머문 그 도서관도 Oodi 못지않게 건축과 디자인이 멋졌다. 중앙에 나선의 계단이 있다는 점이 Oodi와 비슷했다. 흰색의 책상과 책장들이 주로 공간의 중심을 잡는 가운데, 디테일들이 눈에 띄었다. 스탠드 조명이 책상의 공간을 차지하지 않도록 숨겨진 듯 설치된 것, 높은 곳의 책을 꺼낼 때 딛는 받침대는 깨끗한 원목인 것 등. 책 읽고 공부한다는 도서관의 본질을 잘 살리면서도 이용자의 지루 함은 덜어낸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야는 먼 곳에 마음은 지금 여기에 


다시 온 Oodi. 문을 닫는 시간인 밤 10시까지 머물렀다. 참 좋았다. 특히 3층은 고작 한 층인데도 여기저기 살펴보고 감탄할 것이 얼마나 많던지. 이곳을 처음 와 본 사람의 표정과 걸음새로 얼마의 시간을 지나, 어느 때부터는 나도 공간에 녹아 들었다. 다양한 색과 모양의 의자들과 조명이 있던 만큼, 조금씩 옮겨 앉으며 그 자리에서의 풍경을 눈에 담고 몸으로 새겨봤다. 가져간 책을 읽었고 어떤 자리에 서는 잠깐 잠이 들기도 했다. 내부 카페테리아에서 산 게 아니어도 간식 등을 가져 와서 먹을 수 있었는데, 나도 챙겨간 빵으로 요기를 했다. 모두들 이 공간의 의미를 알았기에 냄새나 소음이 없도록 해내었다. 유리 창가에 가만히 서거나 앉아 하늘을 보고 있으면 그 하늘이 이 공간과 공간 속 사람들, 사람들 속 나를 포개어 안는 느낌이었다. 이토록 따뜻한 겨울나라였구나. 관찰과 사색, 움직임과 멈춤을 기꺼운 마음으로 반복했고 오후 3시를 마주했다. 12월의 핀란드는 그때면 해가 지기 시작했다. 푸른색에서 붉은색으로 다시 검은색으로 서서히 바뀌어 가는 하늘을, 아니 시간을 잡을 요량은 없지만 잡고 싶은 마음만은 나에게 숨기지 않았다. 그래, 아쉽지? 응, 아쉬워. 한국에서의 일상에 대한 막막함이나 후회, 앞으로 다 잘될 것 같다는 대중없는 낙관, 잘해보려는 다짐 같은 건 어쩐지 아쉬움에 뒤따르지 않았다. 그저 이런 생각을 했다. 지금이 아쉬운 건 지금을 너무나 좋아하고 있어서인 것, 지금에 푹 빠져 있기 때문인 것. 곧, 메모를 기록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시간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타인의 몰입은 깨지 않는 게 배려이자 예의임을 다들 알고 있다. 그런데 자신에게는 다르다. 그 순간에서 평온함을 느끼고 또한 빠져나 오고 싶어 하지 않는 자신의 마음은 좀처럼 몰라주거나 다그치기만 한다. 자꾸 현실로, 의무로, 책임으로 가도록.


헬싱키의 도서관에서 보낸 그 하루로, 마음이 ‘지금 이 순간’에 머무른다는 것이 무엇인지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머무르는 내 마음을 살펴주는 일이 꼭 필요하다는 것도. 시야는 한 치 앞에 마음은 저 멀 리 두어 내가 불안하고 내 옆의 사람들도 때때로 힘들게 했던 날들을 건너, 시야는 먼 곳에 마음은 지금 여기에 두는 날들에 오늘 더 가까워지고 있다. 가까워지기 위해 그날 하루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의 노력을 한다. 2020년 8월, 노력하는 내가 서울에서 띄우는 이 작은 글이 2019년 12월 헬싱키의 나에게 가닿는다면 그때의 나는 무슨 말을 할까. 궁금해지는 밤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헬싱키에서의 첫 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