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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Mar 18. 2020

80번째 발행 버튼을 누르며

어제, 기다리고 기다렸던 원고 공모에서 탈락했다.


사실 지난 몇 주의 시간들을 이 소식 하나만 바라보고 일상을 견뎌왔을 만큼 내게는 스스로의 기대가 꽤나 컸다. 실패는 수십 번을 반복해도 익숙해지지 않는다는 법칙을 다시금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여러 번 마음이 다쳤던 부분이라 웬만한 상처에도 쉽게 아물 것 같았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넋두리라도 해야겠다 싶어 브런치에 들어와 보니, 공교롭게도 이번 글이 브런치를 시작하고 나서 80번째 글이었다. 첫 글을 업로드했던 이후 79번의 발행 버튼을 눌러오며 생각지도 못했던 많은 분들의 이야기를 접했다. 다른 훌륭한 작가님들의 글을 보며 많이 배우기도 했고 나의 글을 보고 피드백 주시는 독자분들의 마음도 가까이 느낄 수 있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글을 평가받고 또 평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일까. 글에 순위를 매길 수 있을까. 이번 공모에서 탈락했다는 것은 내 글이 '좋은 글로 줄 세우기'라는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의미 일터. 맹목적으로 '내 글은 누구도 평가할 수 없어. 나는 잘한 거야.'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절대 그런 오만에 빠지고 싶지는 않다. 그러면 도대체 어떤 생각과 깨달음을 통해서 지금 이 우울과 좌절감에서 탈출할 수 있을까.


지금껏 써왔던 79개의 글을 돌아봤다. 독자분들이 남겨주신 소중한 댓글도 모두 정주행 했다. 묘하게 글이 닮아있었다. 변하지 않는 나만의 스타일이 있다는 것은 고무적이었으나 항상 글의 뚜렷한 결론이 없고 애매한 듯한 느낌. 다음에 올라올 글이 조금은 예상되는 느낌. 전혀 다른 글이었지만 쓰이는 단어들이 모두 비슷비슷한 느낌. 가끔은 몽상가나 이상주의자처럼 손에 닿지 않는 이야기들만 늘어놓는 느낌.


책상을 조립한다거나 한 곡의 음악을 듣는 것, 목적지를 향해 같은 버스를 타고 머리를 감고 말리는 것... 이렇듯 어떠한 일이든 여러 번 반복하다 보면 충분히 익숙해지고 잘 해낼 만도 한데 유독 글쓰기만큼은 그러지 못한 것 같은 서러움에 한참을 멍했던 어제와 오늘이었다. 계속 쓰는 것이 의미가 있을지, 뭔가 커다란 변곡점이 필요한 시기가 아닐지...


대학교를 다닐 때 집에서 캠퍼스로 가는 나의 버스는 하나였다. 80번이 뭐람, 수백 번은 반복해서 타면서 모든 풍경과 노선을 달달 외웠던 길이다. 지난 79개의 글도 그랬다. 이미 여러 번을 반복해서 어느 정도 다음 풍경이 그려지고 노선이 떠올랐다.


그렇다면 잘 쓰는 작가, 좋은 작가는 무엇을 잘 해내는 사람일까? 독특한 단어 선택, 기시감이 느껴지지 않는 신선한 사연이나 한 분야에서 정점을 찍은 전문가의 고견?


구독자가 넘쳐흐르는 브런치 성공 작가, 짤막한 글 한 편만 올려도 좋아요와 공유가 쏟아지는 스타 작가. 내 꿈은 그런 것들이 아니다. 어떤 일이 있을 때 이 사람이라면 어떻게 생각할까, 이처럼 평범한 사연 속에서도 이 작가라면 어떻게 써낼까, 어떻게 그것을 바라보고 적을까 하며 글이 궁금해지는 그런 사람.


자꾸만 궁금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

80번, 100번, 1000번의 글을 쓰더라도 계속 궁금해지는 그런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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