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진 Mar 22. 2020

8년 전 과외했던 아이를 만났다

2012년 봄, 꿈꾸던 새내기가 되었던 해. 


과 동기의 소개로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던 적이 있다. 목련 잎이 활짝 피고 벚나무의 꽃망울이 가득 차오르던 날씨, 생각해보니 딱 지금의 봄이었다.


당시 내가 스무 살이었고 과외를 받았던 나의 첫 학생은 15살의 중학생이었다(편의상 그 아이를 A라 하겠다). A의 집이 우리 집과 도보로 20분 정도 거리에 있었다. 매일이 설레는 캠퍼스 생활과 술 약속(?)으로 가득 차 있던 시절. 용돈 벌이도 할 겸 좋은 기회라 판단했던 나는 그 집을 찾아 영어와 수학을 주 2회, 2시간씩 수업했다. 


A는 공부에는 흥미가 없던 아이였고 부모님과 함께 살지 않았다. A는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살았고 아버님이 주말마다 A를 보러 오셨었다. 가끔 숙제를 빼먹기도 하고 집을 찾아가면 과외가 있는 날인지 몰랐다며 PC방으로 도망친 적도 있어서 할머님과 함께 찾으러 가기도 했다. 첫 과외 경험이자 내 노력으로 처음 돈을 벌었기에 8년의 시간이 흐른 오늘도 생생하게 기억이 떠오른다.


지난 금요일 오후, 집 근처의 카페에 들렀다. 밀렸던 글도 쓰고 일기장도 점검할 겸. 8년 전과 비교했을 때 나는 여전히 같은 동네에 있었다. A가 여전히 이 근처를 돌아다닐 거라 아주 가끔씩은 생각했었지만 그날이 실제로 다가올지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노트북에 한참을 몰두하고 있을 무렵 낯익은 얼굴의 성인 남자 한 명이 카페에 들어섰다. 그를 바라봤던 순간, 나는 단번에 알았다. A라는 것을. A도 나를 마주하고 씩 웃어 보였다. 내게 먼저 다가와 인사를 건넸던 A. 8년 전 열다섯의 말썽꾸러기 소년은 어느새 스물셋의 청년이 되어있었다. 키도 훌쩍 자라 나보다 조금 더 커 보였다. 당시 나는 스무 살의 어른이 되었다는 생각에 5살밖에 차이 나지 않는 A와 어린아이를 달래듯 대했었다.


"명진 쌤, 쌤 맞죠?"


영화 같은 장면이었다. 물론 A의 생각은 물어보지 못했지만!


"야, 너 잘 지냈냐. 진짜 오랜만이다. 키는 언제 이렇게 많이 컸어?"


숙제를 해오지 않아 내게 꾸지람을 듣던 A는 건장하고 멋진 청년이 되어있었다. 어떤 사람은 표정만으로도 속마음을 읽어낼 수 있다. A가 그랬다. 가끔 내 말을 듣지 않고 반항도 했었지만 분명 '대화'가 되는 아이였다. 이미 나보다 훌쩍 커버렸지만 A는 여전히 맑은 눈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자신도 그동안 '쌤'이 궁금했다는 표정을 하고서.


"저 올해 1월에 전역했어요. 이제 복학해야 되는데 코로나 때문에 개강이 밀려서 요즘은 놀러 다녀요."


8년이라는 시간 앞에서 우리 사이에는 참 많은 것들이 변해있었다. 이제는 '쌤'이 아니라 '형'이라 부르게 해야 할까. 짧은 대화 속에서도 여러 생각이 스쳤다. 친구 일행과 같이 왔던 A는 다시 그들에게 돌아가 봐야 한다고 했다. 먼저 악수를 청하며 A는 내게 인사말을 건넸다.


"쌤, 저 친구들이랑 같이 와서 지금 가봐야 해서요. 번호 알려주세요! 연락할게요."


그렇게 A의 폰에 내 연락처를 찍어주며 나는 웃으며 말했다.


"나 8년 전이랑 번호 똑같아. 내 번호 지웠구나?"

"저 그때는 중학생이었잖아요. 폰 바꾼 지가 언제인데요. 그럼 저 가볼게요, 쌤!"


8년 전 말썽꾸러기 같던 그 표정과 똑같은 미소가 A의 얼굴에 겹쳐졌다. 멋지게 자라난 그를 보니 괜히 뿌듯하면서도 묘한 감정이 휘몰아쳤다.

어른이 되면 외적인 성장은 멈춘다. 키가 자란다거나, 목소리가 변한다거나 하는 등... 어린 시절 명절에 친척집을 가면 삼촌, 큰아버지들은 그대로이신데 하루가 멀다 하고 자꾸만 자라나는 우리들의 모습과 같은 맥락이다. 그렇기에 누구나 어른이 되면 자신의 내적인 성장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거나 변화된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 아닐까. A를 바라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똑같은 8년의 시간 동안 A가 나보다 큰 키로 자라날 동안 나는 무엇이 변했는지...


언젠가 A를 만나게 된다면 물어보고 싶었던 게 참 많았다. 그가 열다섯의 소년일 때에는 나눌 수 없었던 이야기들. 이제는 소주 한 잔 기울이며 할 수 있을 이야기들. 어른이 된 오늘 너의 꿈은 무엇인지, 요즘 너의 행복은 무엇인지, 연애는 하고 있는지, 용돈은 벌고 있는지, 일주일에 한 번씩 오시던 그의 아버님에게 안부 전화는 잘 드리는 착한 아들이 되었는지 그리고 할머니는 건강하게 잘 지내시는지.


나는 스무 살의 3월부터 과외를 시작해서 군 입대를 하기 전까지 1년을 A와 함께 했다. 그 집을 방문했던 마지막 날, A의 할머니는 내게 월 과외비 30만 원에 10만 원을 더해 주셨다. 그동안 고생했다며 입대하기 전에 친구들과 술 한잔 사먹으라시며. 그 날 받았던 10만 원은 내가 과외 선생님으로서 일했던 '급여'가 아니었다. 그저 나라는 사람을 좋게 봐주시고 한 청년의 앞길을 응원해주시던 할머님의 마지막 선물이었다.


조만간 A에게 다시 연락을 해볼 생각이다. 밥을 먹고 싶다 하면 맛있는 밥을, 술을 마시고 싶다 하면 맛있는 술을 사주고 싶다. 금액은 딱 10만 원이면 괜찮을 것 같다. 어쩌면 내가 지금껏 살아오면서 기분 좋게 갚아야 할 마음의 '빚'이 아니었을까. 8년 전 할머님이 주셨던 10만 원으로 내가 친구들에게 한턱내며 생색을 냈던 것처럼.


A의 친구들도 함께 오면 기분이 더 좋을 것만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80번째 발행 버튼을 누르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