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진 Jun 19. 2019

우주를 줄게

한 사람 한 사람을 하나의 우주로 친다면 매일 아침 지하철과 길거리, 회사와 학교에는 수많은 우주가 말없이 스쳐 지나가고 있는 셈이다. 그 속에서 가치관과 생각, 치열한 고민들이 일치하는 우주들은 저마다의 은하를 만들어낸다. 그리고는 하나의 무리가 되어 제각각 다른 빛을 내며 유유히 떠다닌다.


하지만, 때로는 이 은하들이 매우 편협하고도 이기적이어서 서로 바라보는 방향이 다른 은하들을 할퀴며 상처를 입힌다. 상대보다 더 큰 집단 은하가 되기 위해서 또는 규모가 작은 은하를 집어삼키기 위해서. 가끔은 집단 은하가 발산하는 빛과 향기에 어울리지 않는 작은 우주를 쳐내기도 하면서 말이다.

누군가 내게 그랬다. 안정된 직장과 지켜야 할 가족이 있는 30대의 부담감보다 20대의 방황과 고민, 좌절이 더 힘겨웠다고.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폭풍 같은 생각과 고민이 아주 잠시 잔잔해질 때, 스물일곱의 우리는 무엇보다 거친 소용돌이에 빠지는 것만 같다.




어느 순간부터 밤하늘의 별을 찾기가 어려워진 요즘. 나라는 우주는 오늘 어떤 우주에 도킹을 시도했는지, 혹시 그 도킹이 처참하게 실패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 내가 속한 이 거대한 은하는 어디로 가고 있는지를 문득 떠올린다. 스스로는 아니라고 하지만 나 또한 때로는 몹시도 편협하고도 이기적인 우주가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는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서로의 우주를 온전히 준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만남과 헤어짐이, 순식간에 공허하게 빠져나가는 썰물처럼 느껴지는 것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인 셈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누군가를 미워할 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