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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명진 Nov 16. 2019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음악

대중 가요에 숨어있는 사회 문화와 공기



#1. 음악, 그리고 예능


2000년대 초반에 비해 오늘날 예능 프로그램의 위상은 굉장히 높아졌다. 이러한 변화의 기저에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로서 자라온 젊은 세대의 폭발적인 이슈 메이킹(페이스북, 인스타그램, 유튜브 등에서의 화력 지원이랄까)이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에 영화, 드라마 등에 출연하는 것보다 2049 시청률이 높은 예능 프로그램에 잠깐이라도 출연하는 것이 인지도를 올리는 것에 보다 효율적인 방법이 되어왔다. 그중에서도 아이돌 그룹과 다른 뮤지션들이 다방면으로 진출함에 있어 자연스레 처음 얼굴을 들이 밀 수 있던 곳은 ‘음악 예능’이었다.

현재 음악이 유통되는 가장 거대한 플랫폼인 ‘멜론(Melon)’의 경우 흔히 말하는 팬덤의 화력에 의해 TOP 10에 진입하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어 왔다. 특히 인기 아이돌 그룹의 경우 그것이 너무나도 강력해서 발매 직후 TOP 10 진입이 목표가 아닌, 음원 줄 세우기를 해내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 중대한 이슈로 여겨져 왔다. 화력으로 대중에게 알려지는 경우가 아니라면, 음악 자체로서 승부를 봐야 하는데 이에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바로 음악 예능 출연이기도 했다.

돌이켜보면 수많은 음악 예능 포맷이 등장했다가 사라져 왔다. <1박 2일> 시즌1의 전성기에 대항마로 급부상해 MBC 음악 예능을 다시 부활시켰던 <나는 가수다>부터 최근의 <복면가왕>, <더 팬(The Fan)>, <판타스틱 듀오>, <듀엣가요제>까지 다양했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무대 경연 포맷을 지향했고 노래를 부르되 ‘누가’ 부르느냐에 따른 변주만 있어왔다. tvN <놀라운 토요일 – 도레미 마켓>과 같은 경우 경연이 아닌, 가사 받아쓰기 포맷으로 안정적인 음악 예능으로 안착했지만 다른 포맷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물론, 이러한 흐름이 절대적으로 잘못된 것이라 할 수는 없다. 안정적인 포맷과 시청률 속에서 큰 변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테니.


#2. 수요일은 음악프로


그렇기에 새롭게 등장한 이 음악 예능이 몹시도 반가웠다. 과거 KBS 1박 2일 시즌1에서 몰래카메라를 호되게 당했던 당시 유호진 신입 PD가 tvN 이적 후 새롭게 준비한 음악 예능 프로그램 <수요일은 음악프로>가 바로 그것이다. ‘음악이 차고 넘치는 시대. 각자의 플레이리스트는 빈곤하다’라는 프로그램 소개 문구는 내 흥미를 단번에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이리 봐도, 저리 봐도 맞는 말이다. 분명 음악은 넘쳐나는데 매일 지하철 위에서, 거리에서, 글을 쓰며 듣는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만큼은 큰 변화가 없었다. ‘풍요 속의 빈곤’처럼 우리들의 플레이리스트는 외로울 따름이었다.

잘 뜯어보면 뉴트로 콘셉트의 음악 예능이다. 새롭게 플레이리스트를 채워줄 음악을 찾기 위해서는 과거의 그것을 되돌아봐야 했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음악들은 무엇이었으며, 그 음악들은 지금 어디에 떠돌고 있는지. <수요일은 음악프로> 1화부터 싸이월드 BGM를 해부하는 퀴즈를 통해 90년대 생들의 향수를 기분 좋게 꺼내왔다. 기존의 음악 예능과 다른 시도를 하고 있다는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음악이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도 하나의 포맷이 반복되는 않는다는 것이다. 스튜디오, 야외 버스킹, 퀴즈, 여행 그리고 최근의 ‘백곡 토론’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음악을 소비할 수 있게 한다는 점. 최소한의 시청률을 사수해야 하는 프로그램의 위기를 감수하고서라도 여러 시도를 하는 것은 시청자의 한 명으로서 <수요일은 음악프로>의 제작진분들께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연애 중에 깔았던 BGM, 이별했을 때 깔았던 BGM, 허세를 부리고 싶을 때 깔았던 BGM까지 음악 퀴즈를 통해 등장했던 것들은 전주만으로도 저마다의 추억 여행을 떠나기에 충분했다. 김종국의 <사랑스러워>부터 SG워너비 <내 사람>, 브라운 아이즈 <벌써 일 년> 등 너무나도 반가웠던 음악들이었다.


#3. 그 시절 음악이 담고자 했던 이야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음악들에는 분명, 그 날의 공기와 분위기가 가득 담겨있다. 버즈의 <나에게로 떠나는 여행> 전주를 듣는 순간, 우리가 스마트폰이 아닌 MP3를 떠올릴 수 있는 까닭이다. 그 시절 우리가 사랑했던 음악들에는 익숙한 가사와 멜로디뿐만 아니라 우리가 살았던 사회를 읽어낼 수가 있다.


딘의 <Instagram>을 들어보자. 매일 밤 잠들지 못하고 타인의 인스타그램을 보며 스스로를 끊임없이 고민하는 모습들은 과거에 살펴볼 수 없던 풍경이다. 하지만 과거 싸이월드에서 연인과의 일촌명이 조금 더 특별했던 것을 생각하면 형태만 바뀐 채 오늘날 ‘럽스타그램’으로 부활한 셈이다. 장근석으로 떠올릴 수 있는 허세 글과 감성 충만하던 10대의 기록들은 평범한 학생들의 Youtube Vlog로 그 모습을 바꿔왔다. 그렇다면 1998년 발매되었던 한스밴드의 <오락실> 노래 가사를 한 번 살펴보자.

‘오늘의 뉴스 / 대낮부터 오락실엔 이 시대의 아빠들이 많다는데 / 혀끝을 쯧쯧 내차시는 우리 엄마와 내 눈치를 살피시는 우리 아빠 / 가슴이 아파 아빠의 무거운 얼굴 / 혹시 내일도 회사에 가기 싫으실까’


가사를 읽는 순간 누군가는 눈치를 챘을지도 모르겠다. 가벼운 듯하지만 내용은 전혀 그러하지 않다. 당시 IMF의 영향으로 대거 실직된 아버지의 모습을 담아내고 있다. 회사에서 해고되어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오락실로 향했던 우리네 아버지들의 풍경. 이처럼 그 시절의 음악들을 들어보면 이처럼 무언가를 읽어내고 느낄 수 있다. 이와 반대로 유례없는 경제 호황을 누렸던 IMF 직전의 음악들에는 사람들의 여유와 풍요로움을 읽어낼 수 있다. 1994년 발매되었던 마로니에 3집의 <칵테일 사랑>을 들어보자. 어렵지 않게 한스밴드의 <오락실>과는 다른 공기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거리를 걸어보고 / 향기로운 칵테일에 취해도 보고 / 이 세상은 나로 인해 이렇게 아름다운데’

다만, 오늘의 음악들에서는 이러한 공기와 분위기를 쉽게 읽어낼 수 없다는 것에서 플레이리스트가 빈곤한 까닭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간단하게 정리할 수 있는 내용이 아니기에, 짧게 느낌을 적어보려 한다. 오늘의 음악에는 분명 사랑 노래가 넘쳐난다.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멜론의 TOP 10안에는 이별 노래가 6곡이나 된다. 그중에서도 술에 취한 듯한, 떠나간 이를 그리워하는 노래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옛날에는 사랑과 연애가 없었고 이별이 없었겠는가. 절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끊임없이 솔직한 사랑과 이별 이야기를 담아내려 하고 이것에 사람들이 열광하는 이유를 조금 더 고민하며, 나는 앞으로 이것을 콘텐츠로서 만들어보고 싶다. 그 형태가 글이 될지, 유튜브 영상이 될지는 조금 더 깊이 고민해야 할 지점이다.





알 수 없는 유튜브 알고리즘이 이끈 곳으로 홀린 듯 따라가며 밤잠을 설친 적이 있다(분명 나만 그랬던 것은 아니겠지). '2008년 지상파 음악프로 1위 곡 모음' 유튜브 영상의 댓글에 이런 말이 있었다. ‘저 때가 가장 좋았던 걸, 그때는 왜 몰랐을까.’ 또한, 한림예고 실용무용과 학생들의 홍진영 <오늘 밤에> 플래시몹 유튜브 영상의 댓글에는 이런 말도 있었다. ‘얼굴이고 뭐고 다 필요 없고, 젊음이 깡패다.'

분명, 시대별 음악에는 많은 이야기가 담겨있고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무언가를 듣고 향유하고자 한다. 자꾸 세상은 좋아지고 누릴 수 있는 것들이 많아지는데 옛 시절을 찾는 이유. 레스토랑을 놔두고 을지로의 노포를 찾는 이유. 듣기 좋은 세련된 음악은 많아지는데 오래전 음악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우는 이유. 


이 모든 것들에는 공통된 가치와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이다. 꾸준히 고민하고 영상으로서 기획해보며 새로운 채널로 곧 찾아오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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