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명진 Dec 16. 2019

아들, 다섯 밤만 자면 오는 거지?

"여보세요, 엄마 나야."

"응~ 우리 아들. 밥은 먹었어?"



엄마는 내게 한결같이 끼니부터 묻는다. 그놈의 '밥'. 밥, 밥, 밥은 잘 챙겨 먹었냐고.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매번 같은 멘트다. 나는 대학교 입학부터 졸업 그리고 첫 번째 직장을 퇴사하기 전까지 줄곧 집에서 통학과 출퇴근을 했다. 그렇기에 최근 이직을 결심하며 독립한 아들이 마치 물가에 내놓은 어린아이 마냥 걱정되시는 건 어쩔 도리가 없는 영역이었다. 이처럼 엄마의 궁금증이 한가득 담긴 통화는 시간대마다 표현이 조금씩 달라지곤 했다. 이를테면 아침은 먹었니? 점심은 먹었니? 저녁은 먹었니?(저녁에 일찍 먹었을 경우에는 다른 멘트가 등장하곤 했다 : 왜 그렇게 일찍 먹었어, 지금 배 안 고프니?)와 같은 질문들로서.

이 세상 모든 엄마들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과제가 하나 있는 듯하다. 바로, 자식의 끼니 여부를 정확히 파악하고 이를 온 마음 다해 걱정하는 것. 일이다 뭐다 매일 같이 바쁘다는 아들의 못난 핑계로 연락을 자주 못 드리고 있기에 백번이고 생각해봐도 죄송한 부분이다.


한편, 엄마와 통화를 할 때마다 내가 기계적으로 '응, 밥 먹었다니까.'라고 대답하는 것을 파악한 엄마는 최근 전략을 바꿨다. 삼시 세 끼를 물어보는 방식에서 벗어나 새로운 질문이 등장했다.


'아들, 다섯 밤만 자면 이번 주말에 집에 오는 거지?'


어라, 익숙하다. 분명 어디선가 마주한 듯한 기시감이 드는 이 멘트. 어릴 적 내가 어떤 날이나 행사를 기다리며 간절한 마음으로 엄마에게 묻던 말이다. '엄마, 소풍 몇 밤 자면 가는 거야?' '내 선물은 몇 밤 지나야 도착하는 거지?' 이 질문이 등장했던 시점은 반드시 내게 간절하고도 소중한 순간이 임박했을 때였다. 그리고 그토록 기나긴 밤들을 버티는 유일한 위로는 마법의 주문과도 같았던 엄마의 한 마디였다. "다섯 밤만 자면 금방 올 거야." 엄마는 집에 언제 오냐는 질문을 시작으로 돌고 돌아 부드럽게 원하던 질문에 도달했다. "그렇구나... 아 맞네, 아들 밥은 잘 챙겨 먹었어?" 엄마들은 아들과의 심리전에 타고난 전문가임에 틀림없다.

이제는 엄마보다 훨씬 키가 커버린, 아니 어쩌면 덩치만 커졌을 뿐 여전히 엄마의 집 밥을 그리워하는 아들을 걱정하시면서도 엄마 자신의 하루를 재잘거리는 목소리가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어린 시절 나를 둘러싼 것들이 문득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장이 이렇게 작았었나, 아버지의 등이 이렇게 좁았었나, 미끄럼틀을 타고 내려오던 길이 이렇게나 짧았었나 하는 것들. 하지만 오랜 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것 또한 분명히 존재한다. 내가 서른이 되어도, 마흔이 되어도, 더 오랜 시간이 흘러 지금의 엄마 나이를 훌쩍 넘어선 할아버지가 되어도 엄마는 내게 물어볼 것이라는 사실. 우리 아들, '밥'은 먹었냐고.


엄마의 허리 즈음에도 정수리가 닿지 않았던 작은 아이. 밥을 항상 든든히 먹어야 한다며 하나뿐인 아들을 보살펴주던 엄마. 이제 그녀는 내게 아이처럼 몇 밤을 자야 집에 오냐고 간절하게 묻는 여린 소녀가 되어 있었다. 지금의 내 나이보다 한참 어린 나이에 엄마가 된 소녀. 지금도 그때만큼이나 충분히 어여쁘고 아름다운 소녀에게, 이제는 내가 더 끈질기게 물어봐야겠다.


"오늘 하루 밥은 잘 챙겨 드셨어요?"



매거진의 이전글 365일을 매일 같이 열심히 살 수 없어 일기를 썼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