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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 Sep 06. 2021

하고 싶은 일이 잘 되지 않아도; 작사가라는 꿈

작사 학원 다니면 나도 될 줄 알았지



몇 년 전쯤에 작사가가 되고 싶어서 알아보다가 무작정 작사 학원에 등록을 하고 다닌 적이 있다. 나는 진취적이거나 발 빠른 행동력을 가진 사람이 전혀 아니었는데, 작사가가 돼보고 싶다는 마음의 끌림에 바로 작사 학원이란 곳을 찾아갔다.     



평소에 음악을 좋아하고 글을 읽고 쓰는 것도 좋아하고, 문장이나 단어 모으기도 좋아하고 또 워낙 감성적인 사람인지라 시도 좋아하니까 작사가는 마치 환상의 짝꿍처럼 나와 잘 맞지 않을까 해서 배워보기로 결정했었나 보다.

작사 학원을 다닌다는 기분에 아이들이 소풍 가는 거 마냥 매일 들떠있고 행복해했던 기억이 난다.

소심하고 내향적인 성향을 가진 내가 선택한 나름의 큰 도전이었다.    


          

그때 당시엔 요즘처럼 작사 학원이 많지 않아서 그냥 단순히 집이랑 거리가 그리 멀지 않은 학원으로 선택해서 다녔었다.

커리큘럼은 대략 8개월 정도였고, 4개월씩 끊어서 입문 / 고급반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기본 수업과 더불어서 그 사이사이 현업 작사 작곡가분들과 직접 만나서 조언을 들을 수 있는 특강인 멘토링 수업도 주어졌다.



평소 동경하던 작사 작곡가분들을 만나니까 무슨 신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그분들 주위에 반짝이는 정체모를 빛에 눈이 부셨다. 멋져 보였다. 그분들의 가사를 참 좋아했었는데 내 눈앞에서 직접 보고 얘기를 나누니까 그분들의 능력이 많이 부러웠고, 그들처럼 되고 싶었다.    



 나는 꽤 소심하고 낯가림도 있는 편이라 친해지기 전까진 먼저 다가가는 걸 어려워하는 사람이다. 그런 내가 먼저 다가가서 궁금한 질문들도 많이 하려 노력했다. 남들 눈에는 적극성이 부족해 보였을 수도 있겠지만 나름 최선을 다했던 기억이 난다. 겉으로는 티가 안나도 속으로는 아주 분주했다 열정이 넘쳐서.


수업 이외에는 개인적으로 작사가분들이 쓴 책들도 찾아보고, 다른 사람들의 경험담들 같은 정보들도 자주 찾아봤다. 에세이나 잡지 보면서 트렌디한 단어도 수집하고 다른 가사들도 분석해보기도 했었다. 그만큼 절실했고 이루고 싶은 꿈이자 진짜 진심으로 해보고 싶었던 일이었다.     

 


가이드 음악을 수없이 반복해서 들으며 곡 분위기를 파악하고 글자 수를 따고 어감에 맞는 단어를 찾는 작업에 때론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즐거웠다. 피드백을 받을 때면 좋은 평과 좋지 않은 평, 어떤 말을 더 많이 듣게 될지 항상 긴장이 되었다. 좋지 않은 평을 무조건 듣기 싫었던 게 아니라 내가 재능이 없다는 걸 증명해 보일까 봐 그게 겁이 났었다. 차라리 아예 작사가님이 나에게 먼저 ‘당신은 작사랑 안 맞는 것 같아요’라고 확실하고 냉정한 답변을 해줬으면 하기도 했다. 그런다면 상처는 받겠지만 마음을 빨리 접는 게 더 쉬울 것만 같았다.    


     

스스로가 보기에 내가 워낙 평범한 인생을 산 탓인지 살아온 경험의 폭도 좁고, 재미나고 특이한 경험을 많이 해보지 못해서 상상력도 많이 부족하다고 느껴졌다. 개인적으로는 가사 속 캐릭터와 상황 설정하고 스토리를 만드는 게 좀 어려웠다. 그러다 보니 작사 연습을 하면서 가사에 쓸만한 아이디어나 에피소드, 단어를 떠올리는 데에 있어서 한계에 많이 부딪혔다. 좋은 가사가 떠오르지 않을 때마다 엄청난 자괴감도 함께 몰려왔었다. 다른 사람들이 쓴 참신하고 멋진 작사를 보고 들을 때면 나는 왜 대체 저런 생각이 나오지 않는 건지 주눅도 들고 속으로 열등감까지 생기기도 했다. 아무래도 내가 진심으로 좋아하고 잘하고 싶은 일이었기에 더 욕심이 났었나 보다. 나의 기대치에 스스로가 못 미치니까 더 괴로웠다.

사람 마음이 그렇듯 내가 하면 어려운 거 같은데 남들이 해놓은 건 쉬워 보인다는 게 참 아이러니하다. 당연히 타인의 비하인드를 모르기에 그렇게 느껴지는 거겠지만.


어쨌든 작사를 하면서 느낀 깨달음은 역시 창작은 고통이라는 거다.


           

학원 수업과 더불어 현업 작사 작곡가분들을  만나 조언을 듣는 멘토링 수업이 나의 의지를 다지는데 좋은 계기인 건 분명했지만, 한편으로는 작사가가 되지 못한 지금에 이르러보니 나에겐 희망고문이었을 뿐이구나 싶다. 내가 꿈꾸고 바라던 작사가가 꼭 되어서 어느 가수의 곡에 내 이름을 한 번이라도 올려보고 싶단 생각이 아주 간절했지만 나는 결국 데뷔를 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학원은 끝까지 다녀보고 싶었기에 학원 수료를 마무리했으나 나는 딱 거기까지였다.



물론 능력 부족이었지만, 워낙 소심한 성격 탓에 더 많은 기회를 잡아보려 노력하지 못한 내 자신이 미웠다. 그래도 뭘 해도 될 사람은 된다는데 난 그 될 사람이 아니었단 사실도 믿고 싶지 않았다. 더군다나 내가 가진 강점들과도 잘 맞을 직업 같다는 확신과, 노력하면 잘 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인해 더 상처를 입었던 것 같다. 허세로 선택한 꿈은 아니었으나 현실과 이상의 갭은 컸다. 누구보다 원했던 꿈을 이루지 못해 한동안 속상함에 잠도 제대로 못 이루다가 어느 순간 결국 내 길이 아니었나 보다 하고 못내 괜찮은 척 마음에서 그냥 싹 접어버렸다.     



나처럼 데뷔하지 못한 다른 수강생들 중에는 데모곡을 더 많이 주고, 데뷔 기회를 좀 더 준다는 소문이 난 다른 학원으로 가서 작사가의 꿈을 다시 키워보겠다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나는 부담도 되고(수강료도…ㅠㅠ) 재능이 없다는 자책감과 좌절감에 자신감이 바닥까지 떨어져 버려서 그 뒤로 다시 도전하지 않았다. 아마도 너무 속상해서 내가 스스로에게 아주 소심하고 뒤끝 있는 행동을 한 것 같다.   

김이나 작사법이란 책에서도 김이나 작사가님은 꿈이 간절할수록 오래 버텨야 한다고 했는데 난 어쩌면 쉽게 포기해버렸던 거다.

실패는 사람을 참 옹졸하게도 만드는 것 같다.


                


작사를 배우고 있다 하면 언제 데뷔하냐는 질문을 수없이도 받게 될까 봐 민망해서 그땐 작사가를 준비하고 있다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혹시 나중에 잘 돼서 입봉 하게 된다면 그때 주변 사람들에게 서프라이즈로 알려야지 하고 비밀로 해두었었는데 결국 나는 작사가가 되지 못했고,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나만 아는 비밀로 되어버렸다. (지금 생각해보니 참 다행이다 싶다..ㅠㅠ)     



이제야 속 시원히 이렇게 글이라도 남기게 돼서 후련하면서도 한편으론 아직까지 미련이 조금 남아있는 건지 글을 쓰면서도 뭔가 다시 씁쓸한 감정이 올라왔다.(하,,)

그래도 그때의 나는 작사에 진심을 다했으니까 아직까지 좋은 추억으로 간직하고 있다. 작사가가 되지 못하면 작사가 지망생으로 꿈을 키웠던 과정들은 아무 쓸모가 없을 것만 같았는데, 생각보다 이런저런 도움이 되었다. 나도 모르게 라임을 맞추는 버릇이 생겨서 시를 쓸 때 도움도 되었고, 트렌드를 읽는 습관도 생겼다. 특히 글을 쓸 때도 작사처럼 약간 싸비(후렴구)에 힘을 주듯 시선을 끄는 문장 하나쯤 쓰려고 노력하는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비록 작사가가 되진 못했지만, 작사가 지망생으로 살며 꿈을 꿨던 경험을 앞으로도 소중하게 잘 간직해야 할 것 같다.

   


(이건 TMI지만 나는 여전히 그 당시 작사 수업자료들 하나도 안 버리고 그대로 다 보관하고 있다.. 이거슨 미련이겠지...)                         


포기할 줄 아는 것도 용기
밀고 계속 나아가는 것도 용기
어떤 선택이 맞는 건지는 그 시점에는 잘 알 수 없다




< 작사 학원 수료한 사람이 써보는 팁 아닌 팁 >  

        


1) 작사는 글이 전부라는 건 오해

음악이 먼저고 글이 그다음. 곡과 가사의 합이 아주 중요 중요하다     

가사에도 기승전결이 어느 정도는 필요하기 때문에 소설이나 시나리오 쓰는 걸 좋아해도 꽤 도움이 될 것 같다는 개인적인 생각이 든다(특히 발라드나ost)



2) 곡 해석 + 입에 착착 붙는 어감의 참신한 단어까지 선정해야 함  

가사에 임팩트 있는 단어나 문장 꼭 필요함     



3) 작사가 우스워 보이기도 하겠지만 생각보다 발로 쓸 만큼 쉬운 상대는 아니라는 거 결코 쉽지 않다는 ㅠㅠ 무에서 유를 만든다는 건 어렵다 참… 노래를 듣다가도 저 정도는 나도 쓰겠다 하지만 직접 해보면 생각처럼 또 그렇지 않을 수도.



4) 따로 인맥이 있지 않는 한, 학원 다니면서 데모곡 주어졌을 때 기회를 잡지 못하면 힘들다ㅠㅠ     

인맥이든 직업이든 취미든, 음악이나 엔터 관련 업계 그 언저리 주변에 계속 머물러야 기회가 오지 않을까 생각함. 공식적인 공모전으로는 기회도 별로 없을뿐더러 한계가 있음



5) 노래를 잘 부르든 작곡이나 피아노를 잘 치든 기타를 잘 치든 악기 하나 할 줄 알면 더 도움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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