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앗긴 것이 아니라 함께 쓰고 있는 것
방학 실감이다. 방과 후 수업, 도서 목록 등 달력에는 한 달간 계획을 적어놓고 간식부터 부지런히 챙기게 되는 방학이 시작되었다. 평소라면 하던 공부를 멈추고 아이 등교 시간에 맞춰 바쁘게 움직일 아침일 텐데. 한 달째 7시가 훌쩍 넘어서까지 느긋하게 책상에 앉아 있을 수 있어서 좋다. 방학이라서 조금 더 가능한 여유다.
아침 설거지를 하고 둘째 등원 시키고 문 활짝 열어 가볍게 청소기 한 번 밀고 나면 오전 집안일은 끝이다. 모락모락 핫초코와 커피 한 잔씩 들고 아이와 함께 책을 읽는다. 머그잔이 비어갈 때쯤 읽던 책을 잠시 덮고 아이는 문제집을 들고 나온다. 찬찬히 문제를 풀어가며 학기 동안 배운 내용을 복습해 본다. 이어 점심시간이 다가오면 식탁에 나란히 앉아 노트북을 펼친다. 유튜브를 켜놓고 영어동화 보면서 점심을 먹는 일이 요즘 일과이고 낙이다. 얼마 전 새로운 채널을 하나 발견했다. 아주 짧은 패턴회화를 반복해서 보여주는데 승부욕 자극하는 놀이 겸 말하기 연습에 좋아 20분 영상 보는 것을 매일 루틴에 추가했다. 장면마다 표현되는 영어 문장을 아는 사람이 먼저 말하는 눈치게임을 하는데 승리한 사람에게는 편의점 찬스가 주어진다. 짧은 시간 동안 밥풀 튀는 격렬한 전쟁이 벌어진다. 나름 재미있게 영어 공부도 되고 기억력 상승에도 좋다. 밥이 코로 들어가는지 입으로 튀어나오는지 모를 몰입감까지 꽤 흥미진진하다. 일부러 아직까지는 아이의 코 묻은 용돈을 한 푼도 건드린 적 없고 늘 내 주머니가 털리지만 이런 패배라면 얼마든지 기분 좋게 쏠 수 있다. 어제는 아이스크림 오늘은 과자 한 봉지. 먹을 거 하나씩 손에 들고 낄낄대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참 행복하다.
이제는 안다. 소소한 일상에서 깨닫는 기쁨은 크고도 깊다는 것을. 그랬다. 순수한 어린 시절에는 굴러가는 낙엽만 보아도 깔깔대며 웃을 만큼 온 세상이 즐겁고 신나는 것 천지였다. 그랬던 세상이 변했다. 때론 무덤덤함으로 맞서 싸워야 했고 적당히가 통하지 않았다. 떼를 써도 소용이 없고 마냥 웃을 수만은 없는 세상에서 안간힘으로 버텨내야만 하기도 했다. 정신없고 냉정하고 빠르고 무섭고 치열한 곳에서 감정도 표정도 감춰버린 채. 웃음기를 잃고 점차 웃는 법도 잊어버린다. 가짜 웃음으로 얼버무려진 하루하루가 괜찮은지 괜찮지 않은지도 모르고 그저 흘러간다. 살면서 간혹 작은 기쁨이 찾아오더라도 눈치채지 못한다. 순수하게 느낄 여유마저 놓친다. 어쩌면 그 여유란 것을 내 마음 안에 편히 들여놓지 못한 건지도 모르겠다. 변한 것은 세상이 아니라 나였음을 미처 알지 못했던 건지도.
스무 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진짜 어른의 뜻도 제대로 모르면서. 커서 어른이 되면 돈도 많이 벌고 하고 싶은 거 갖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줄 알았다. 공부 안 하고 시험도 안 보고 부모님의 간섭 없이 자유롭게 뭐든 다 할 수 있는 줄 알았다. 나중에 내가 커서 다 해줄게 엄마. 했던 그 말을 지금 내 아이가 나에게 그대로 하고 있다. 그 순수한 마음을 신나는 세상을 진심으로 오래오래 지켜주고 싶다.
내 나이는 지금 몇 살이나 되었을까. 내 안에 내가 제대로 커 가는 나이. 웃을 때 웃고 슬플 때 울고 마음을 표현하고 사랑을 나누고 작은 일에도 감사할 줄 아는 넉넉한 마음을 간직한 나이. 인생의 희로애락을 잘 담아낼 수 있는 어른의 시작은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부터가 진짜였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배워가고 있는 중이다. 아이를 낳고 키우는 동안 크고 작은 인생의 참 시험을 치르면서 많이 울기도 그만큼 웃기도 했던 나의 30대. 아련했던 유년 시절을 지나 이제야 폭풍 성장을 준비하는 사춘기쯤 자란 것 같다. 언제 철이 들까 언제 다 커서 멋진 어른이 될까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지는 몰라도 정성 들여 돌보고 먹이고 입히면서 잘 키워볼 것이다. 나는 계속 자라고 있다. 금쪽같은 내 아이들과 함께.
어느 여름날이었다. 비가 그친 뒤 하굣길에 실수로 웅덩이를 밟아 신발 안으로 물이 들어왔다고 축축한 양말을 힘겹게 벗으며 씨익 웃는 딸아이. "그래. 잘 다녀왔어. 찝찝했을 텐데 어서 벗어. 젖은 건 빨면 되지. 우리 똥강아지 씩씩하네." 하고 안아주었다.
언젠가 학교 정문 앞에서 아이를 기다리는데 그날도 비바람이 몹시 불던 날이었다. 아이들이 조그마한 덩치로 가방 메고 우산 들고 삼삼오오 걸어 나오는데 바람이 세차게 몰아치자 여기저기서 터지는 비명소리에 뒤집어지는 우산에 지켜보던 엄마들은 놀라고 걱정되고 귀엽기도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비바람이 부는 날 우산 들고 빗속을 오고 가는 일은 어른도 쉽지가 않다. 이제는 조금 큰 언니가 되었다고 혼자 씩씩하게 다니지만 궂은 날씨에는 아침 배웅부터 여전히 엄마의 당부가 길어지게 된다.
"맨홀뚜껑은 밟지 말고 미끄러우니 뛰지 말고 차 오는지 잘 보고 우산 들고 앞 잘 보고 가고........."
아장아장 걸음마 뗄 때 신었던 첫 신발이 아이의 손보다 작아지고 어느새 동생 신발과 눈에 띄게 비교될 만큼 모든 게 훌쩍 커버린 지금. 언제 이만큼 컸을까. 더럽혀진 신발을 닦고 물감 묻은 옷을 빨고 젖은 장화를 빨아 줄 날이 앞으로 얼마나 될까. 곧 내 발만큼 아이 발도 커지겠지. 매일매일 커가는 아이를 보며 신기하고 기특하고 감사한 마음이다. 아직은 내가 해 줄 수 있는 게 많기에 신발을 씻는 이 시간도 행복할 수밖에. 지금이 지나면 그때가 좋았었다 그리울까 봐. 때론 힘들 때도 있지만 그 또한 나는 행복하다.
마음이 몽글해지는 순간이 언제인지 이제는 안다. 그래. 그 벅찬 행복은 어디에서 오는지 이제는 정말 안다. 유치하고 자그마한 행복이 불쑥불쑥 나타날 때 서로를 바라보며 웃음 지을 수 있고 뜨겁게 감사할 줄 안다. 가끔은 철딱서니 없는 티를 내기도 하겠지만 느리게 진짜 어른이 되어가는 중이다.
방학 이제 절반이 지났다. 이 시간이 지나면 아이도 나도 또 한 뼘 훌쩍 커 있겠지. 방학이라서 누릴 수 있는 아이와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지나면 다시없을 시간들이라 생각하니 또 얼마나 아깝고 소중한지 모른다. 때론 티격태격 잔소리도 있겠지만 또 꽁냥꽁냥 알콩달콩 할 수 있는 지금을. 평소에 하지 못했던 것들을 함께라서 좋은 것으로 꽉 채우는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만의 시간을 빼앗긴 것이 아니라 우리의 시간을 함께 쓰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인생의 성장기를 함께 겪어나가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