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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감 Jan 15. 2021

네 번째 수필

밤거리 - 2020.10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큰 요즘 같은 날은 여름과 가을이 기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아직 물러나기 아쉬운 여름과 이제 자신이 등장할 차례임을 주장하는 가을이 투닥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면 짓궂은 날씨도 너그럽게 봐줄 수 있을 것 같다. 쌀쌀한 밤공기를 견디기 위해 수납장에 박혀있던 긴팔들을 꺼냈는데 긴 시간 동안 곱게 접힌 채 포개져있었던 만큼 다림질이 필요한 옷들이 많다. 몇 달 동안 자리를 지켜온 반팔들과 방금 수납장을 벗어난 긴팔들이 모이니 한적하던 옷장이 제법 시끌벅적하다. 한창 더울 때 사두었던 가을용 외투를 이제야 뽐낼 수 있다는 점은 지쳐가는 여름이 아쉬우면서도 가을이 기대되게 만든다.


해가 무대를 내려가고 밤이 암막을 치면 달은 조명을 켠다. 잠잠하던 네온사인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면 비로소 산책하기 좋은 온도가 되고, 나는 외투를 걸친 채 시원한 밤공기를 뱃속에 밀어 넣으며 걷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붐비던 거리를 지금은 귀뚜라미의 나지막한 울음소리가 채우고 있다. 이 거리가 온전히 나만을 위해 비워있다는 기분 좋은 착각을 하며 익숙한 풍경들을 천천히 눈에 담는다.


점심을 해결했던 덮밥집은 불은 켜져 있지만 손님은 더 이상 받지 않고 내일을 준비하고 있다. 자주 가는 카페는 일찍이 앞 간판을 안으로 옮겨 넣고 문을 닫았지만 대로변의 빵집은 아직도 손님들이 빵을 고르고 있다. 대형 체인점인 그곳은 매일 아침이면 길을 건너기 위해 신호를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군침도는 냄새를 풍겨 사람들의 발목을 붙잡는다. 달콤한 향기에 이끌려 가게로 몸을 돌리면 타야 할 버스를 놓쳐버리기 십상이다. 편의점은 이웃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도 꿋꿋이 자리를 지킨 채 손님들을 맞이한다. 집 근처에 있는 편의점들은 야외에 자리가 마련되어 있어 늦은 시간에도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자리 잡는 것도 한겨울이 되면 못해 먹을 짓이므로 적당히 선선한 지금이 심야의 편의점을 즐기기에 적기이다.


내딛는 발이 무거워지면 천천히 집으로 걸음을 옮긴다. 제법 늦은 시간이지만 귀뚜라미는 지칠 줄 모른다. 밤거리를 물들이는 울음소리는 적적한 거리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바닥과 부딪치는 발소리, 옷자락의 숨소리가 나지막이 들려온다. 익숙하면서도 새로운 풍경을 천천히 눈에 담으며 집으로 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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