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일상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감 Jul 15. 2023

계절

여름, 벚꽃, 노을, 김 서린 안경

지겨운 줄도 모르고 비가 계속 내리고 있다. 맑은 하늘을 본 것이 무척 옛날 일처럼 느껴진다. 무채색의 회색빛 구름이 하늘이 제 것인 마냥 비키지 않고 꿋꿋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비가 한바탕 내리고 난 저녁에는 습기가 좀 덜하고 좀 덜 덥게 느껴질 법도 한데, 오늘은 비가 와도 여전히 덥고 여전히 습하다. 보온 중인 밥솥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불쾌한 습기 때문에 조금만 밖에 있어도 끈적한 땀이 옷을 피부에 척 달라붙게 한다.


매년, 당시의 여름과 겨울은 무척 더웠고 무척 추워서 이보다 더 덥거나 추울 수는 없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으나 올여름에 드는 생각은 작년보다 더 더운 것 같다는 심플한 감상이다. 이번 겨울 또한 이변이 없다면  심플하게 작년보다 더 춥지 않을까. 해를 거듭할수록 계절이 양극화되어 더운 건 더 더워지고 추운 건 더 추워지는, 그러면서 봄과 가을은 짧아지고 있다. 봄의 꽃과 가을의 낙엽을 찾아 즐기던 사람은 아니지만 눈에 보이면 반갑고 없어지면 아쉬웠다. 짧은 순간 확 피었다 물러나는 벚꽃을 나도 좋아한다. 우르르 모여 피어있는 모습이 꼭 해질 무렵의 구름 같았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비가 한바탕 쏟아진 뒤 먹구름과 비를 몰아내고 등장한 수평선에 걸쳐 있는 태양이 하늘을 물들일 때, 고여있는 물웅덩이와 아직 빗물을 머금고 있는 구름이 반사하는 빛처럼 따스하고 예쁜 색감이다. 울적하게 비가 잔뜩 내리고 난 뒤 구름 사이로 쏟아지는 해 질 녘의 노랗고 불그스름한 태양은 기분 좋은 일이 생길 것 같고 희망찬 내일이 기다리고 있다는 암시처럼 느껴진다. 벚꽃에 그 정도 의미까지 부여하진 않지만 요컨대 보고 있으면 기분 좋은 꽃이라는 얘기를 하고 싶었다.


가을이면 노랗고 붉은 낙엽들이 떨어져 보도블록을 가득 메운다. 차갑고 건조한 계절풍이 위쪽으로부터 불어올 즈음이면 낙엽은 건조하게 말라붙어 밟으면 바삭바삭 소리를 내며 잘게 무너진다. 겨울이 오고 있음을 알리는 차임벨이다. 우리는 두꺼운 옷을 입고 있고 하얀 입김을 뱉어내고 있다. 옷장 속에 묵혀뒀던 장갑이나 목도리를 꺼냈을 수도 있고 아버지는 내복을 입고 출근길에 오르실 것이다. 저녁 약속을 위해 가게로 들어가면 난방이 잘된 실내는 밖과의 온도 차이 때문에 안경에 김이 서려 한동안 앞이 보이지 않는다. 민망해진 나는 안경을 벗어 옷소매로 슥슥 닦아낼 것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 열여섯 번째 수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