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캠퍼스, 이런저런 생각
지독하고 지겹게 더웠던 여름은 슬금슬금 물러나고 제법 가을스러운 날씨가 이어지고 있다. 입추가 지났기 때문에 절기상으로 가을이 맞지만 점심 때는 여전히 뜨겁고 땀이 줄줄 흘렀다. 아직도 여름이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이다. 지금 물러나면 내년까지 한참을 기다려야 하니 아쉬움이 남아 그러는 것이라 짐작했다.
몇 년 만인가, 기록을 찾아보니 20년도 2학기가 내 마지막 대학생활이었다. 2년의 휴학 후 8월에 약대시험을 응시하고 자격요건인 4학기 수료를 만족하기 위해 복학했던 것으로 기억한다(오래된 일이라 확실하진 않다). 그때만 해도 당연히 동기들이 학교를 다니고 있었고 당연히 여자동기들은 나보다 학년이 높았다. 남자 동기들은 대부분 국방의 의무를 이행하고 있었고 각자의 목적을 위해 휴학을 하는 경우 또한 드물지만 몇몇 있었다. 더불어 나는 당시 학교에 간 날보다 가지 않은 날이 더 많은 불성실한 학생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과사람들을 마주칠 일이 현저하게 적었다. 2학기를 마친 나는 뜻하던 약대를 진학하지 못했고 더 이상 입대를 미룰 수 없었다. 10월 입대였지만 1학기 휴학신청을 내고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1학기에 학교를 다녔으면 더 빨리 졸업할 수 있었겠지만, 그해 반년동안 다양한 사람도 만났고 전에 못했던 경험을 했기 때문에 휴학했던 나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
그렇게 2022년을 꼬박 군대에서 보내고 23년 4월에 전역해 몇 개월 동안 또 학원에서 아이들을 상대한 뒤 9월에 이르러 학교로 돌아갔다. 20년 2학기가 마지막이었으니깐 3년 만에 복학한 것이다. 동기들은 남자 여자를 가릴 것 없이 대부분 졸업했고(내가 아는 한에서는 그렇다) 몇몇은 대학원에 진학에 지금 내가 듣고 있는 수업의 조교로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나름 친하게 지냈던 동생도 있고(내가 생각했을 때), 서먹서먹한 사이의 동생도 있어서 반가우면서 난처한 입장이다. 알면서도 모른 채 하고 지내고 있는 중이다. 휴학하는 동안 꾸준하게 그들과 관계를 유지해서 복학하고 난 뒤 연락해도 어색하지 않게 할 수도 있었겠지만 당시의 나에게 학과 사람들과의 관계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약대를 가고 나면 볼일 없을 사람들이라 생각하고 소홀했던 나의 오만도 있었다.
그래서 학교에 아는 사람 하나 없이 수업을 들으러 다니고 있는 17학번의 내가 있다(심지어 원래는 15학번이다). 친구들을 만나면 이 나이 먹도록 졸업하지 못한 나를 놀리기도 하고 동시에 부러워하기도 했다. 나는 취직을 해 경제적 독립을 일궈낸 그들이 부러운데 말이다. 물론 그들이 내 대학생활의 어떤 점이 부러운지 짐작이 된다. 그들도 아침마다 회사로 출근하는 삶 이전에 1교시를 듣던 때가 있었고 회사 대신 캠퍼스를 거닐기도 했다. 미래에 대한 걱정을 미뤄두고 젊음을 소비하기도 했고 다음날 머리가 깨질 듯 아플 걸 알면서도 연이어 술을 마셨다. 물론 우린 여전히 젊고, 취직을 했어도 미래에 대한 걱정이 늘면 늘었지 사라지지 않았고, 체력에 부쳐도 쉬는 날이면 머리가 깨지도록 술을 먹는다. 대학생활이 그립다기 보단 돌아갈 수 없는 지나온 20대를 그리워하는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대학교는 젊고 겁 없던 20대 초반의 대명사다. 친구들 더러 학교 가서 다시 전공 공부할래 물어보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거다. 학생 신분으로서 청춘을 구가하던 그 순간들이 그리운 거지 공부가 그리운 건 아니다. 나도 그렇다. 하지만 기왕 대학을 다시 다니게 된 김에 듣고 싶었던 교양과목들을 찾아 들어보고 졸업하려고 한다. 이번 학기에도 전공과는 무관하지만 흥미가 가는 수업들을 시간표에 넣어놨고 기대 이상으로 만족하고 있다. 성적을 잘 받는 것과 별개로 강의 자체를 즐기고 있다.
돌아온 캠퍼스는 공사 중이던 건물들이 진작에 완공돼서 위용을 뽐내며 서있었고 원래 있던 기숙사 건물을 허물고 새로운 기숙사동이 들어오기 위한 기반 작업을 하고 있었다. 우리 과 건물은 여전히 낡고 오래됐으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기존의 강의실에는 의자와 책상이 붙어있는 일체형 책상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분리형의 책상과 의자로 싹 바뀌어 있었다. 과사 직원분이 말씀하시는 걸 보아하니 여름방학 동안 바꿔놓은 듯했다(과사 직원분은 예나 지금이나 여전히 같은 사람이었다). 이 교체에 대해서 나는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 양이 어마어마했을 텐데 그것들을 전부 빼내고 새로운 책상과 의자를 집어넣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군대에서의 작업이 떠올라서 남일 같지 않았다). 아직 캠퍼스 대부분의 강의실에는 이 불편한 일체형 책상을 쓰는 곳이 차고 넘치는데 누군가의 판단과 고생 덕분에 보다 편한 환경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게 됐다. 또 강의실 양쪽으로 굉장히 커다란 모니터를 천장에 이어놨는데 강의실 크기를 생각하면 이 정도 크기의 모니터가 필요할까 싶지만 덕분에 뒷자리 학생들이 혜택을 볼 수 있으니 이것에도 감사를 표하고 싶다.
학교의 상징 중 하나인 정문 근처의 연못은 공사에 들어가 내가 알던 모습은 없지만 졸업 전에는 보다 깔끔한 모습으로 다시 볼 수 있길 기대하고 있다. 정문에서 대운동장으로 이어지는 길은 벚나무들이 빼곡히 줄지어 있어 봄이면 벚꽃들이 화려하게 핀다. 일주일이 넘을까 말까 한 기간만 확 피고 낙하해 버리기 때문에 무척 귀한 장면이다. 벚꽃이 양옆으로 가득한 거리 또한 연못의 재건과 함께 내가 기대하고 있는 것 중 하나이다. 봄비는 벼농사의 밑천이라지만 일주일정도만 양보해 주면 하는 바람이다. 일 년을 기다렸는데 얼마 못 피고 비에 져버리면 아쉬울 것이다. 미련을 숨기지 못하는 여름처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