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감 있던 열두 살 엄마누나
단풍이 한 잎 한 잎 곱게 물이 드는 가을.
이때만 돌아오면,
잊을 수 없는 추억이 하나 있다.
내가 초등학교 5학년_열두 살
그날은 처음으로 급식을 시작하는
그런 날이다.
그전은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는데,
급식이라는 걸 하다니 맙소사...
너무 신기하고 신이 나서
친구들과 점심시간만 기다렸다.
어쩌면 매일같이 도시락을 안 싸도 되어
엄마가 더 기뻐했을지 모르겠다.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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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날은,
4교시가 체육이라 살짝은 찬바람이 돌아,
운동장서 체육을 안 할 거라 했는데
갑작스레 담임선생님이,
나가자! 해서 운동장서 체육을 하게 되었다.
요것만 끝나면 기다리고 기다리던
급식을 먹는구나!!
주먹을 쥐고는 아이들은 "아싸~~"를 외쳤다.
찬바람이 꽤 싸늘해서 옷소매 안으로
손을 숨겨, 덜덜, 덜덜,
"오늘은 왜 이렇게 추워?" 했다.
선생님은 "뛰자!! 뛰어야 열난다!!"
한 바퀴쯤 뛰고 이제 한 20분쯤 남았나?
웅성웅성 남자애들 소리가 들린다.
"어? 저 꼬맹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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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감적으로 나는 그 소리에 머리끝이 바짝 섰다.
보지도 않았늣데 왠지 내 동생일 것 같은..
먼저 알아차린 친구들이
"하나야 네 동생 같아! 어머!"
멀리서 ,
학교 앞 정문 큰 나무 밑에
쌀쌀한 날씨에
얇디얇은
제일 좋아하는 핑크판다 연두색 반바지를
입고는 나를 찾는 듯 서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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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내 동생 5살이다.
선생님은 나에게 무슨 일이냐 물었고,
모르겠다 했다.
정말 몰랐으니까..
내가 더 궁금했다.
부모님이 어디 계시냐 물으셨고,
일하러 가셨다 했다.
일단 어서 동생에게 가보라 해서
그 널따란 운동장을 한달음에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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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왜 여깄어? 너 여길 어찌 왔어!!"
하며 다그치니
손가락을 만지작만지작,
다리를 베베 꼬우고는.
"뉴나 응아해 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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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동생은 배변훈련이 잘 안 되어,
대변을 볼 때면 힘들어했다.
나는 그것을 잘 알고 있기에,
갑자기 그 어린 나는 가슴에 불덩이가 앉은 마냥 뜨거웠다.
상황이 이해가 안 가고
정리가 안된다..
"가자. 일단 집에 가자."
손을 잡고 기다란 초등학교 길을 걸어가는데 눈물이 그렇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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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추운데.
"너 어린이집에서 어찌 나왔어?
선생님이 가래?
응아 마렵다고 왜 안 했어?"
"말했어~ 군데 떤땡님이 말 안 해 떠
응아 나와서 내가 혼자 집에 간고야."
가는 길에 어찌나 씩씩 대고 갔는지
추위가 싹 가셨다.
"너 집엔 어찌 들어가써?"
"뉴나, 화장실 문 안 잠기잖아 거기로!! 큭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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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을 맞히듯 자신 있게 대답하며 웃는다.
내속을 까맣게 태우고
기발한 아이디어로 집안으로 들어간
제자신이 여간 신기하고 기특한 모양이다.
목에 걸은 열쇠로 문을 따고,
자기가 제일 좋아하는 바지를 찾아
입은 흔적에 난장판.
엄마에게 아빠 사무실로 전활 걸고 얘기했다.
엄마도 아빠도 깜짝 놀라고,
일단 내가 제대로 씻겨 옷 입히고 데려다주고 학교에 가는 걸로..
반갑게 나를 찾아왔을 어린 동생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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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아. 그럴 땐 선생님한테 말해야지
누나학교는 어찌 알고 차도 많은데
위험하게.
다시는 그러면 안 돼. 알겠지?"
"응."
"그래 착하다 내 동생."
내 손을 잡고 서있는 동생을 보고
어린이집 선생님은 깜짝 놀란다.
평소 마음에 들지 않았던 선생님.
어린 나는 붉어진 눈시울로
날카롭게 째린다.
"제동생 나간 거 모르셨어요?"
"어머 어머 어머 어머, "
어린이집이 발칵 뒤집혔다.
그 시절엔 지금처럼 잘 되어있지도 않고
선생님의 차별이 눈에 뜨일 정도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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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학교로 돌아오니
점심시간이 10분 남짓 남았는데
선생님이 내 급식을 챙겨 책상에
올려두셨다.
그러고 모든 관심이 나에게 쏠렸다.
선생님은 급식 뚜껑을 열어주시면
내 등을 토닥해 주셨다.
"어서 먹어라. 배고팠겠다."
친구들은 "식어서 맛이 없지? 급식 어때? "
하며 내 주위를 둘러싸고 재잘된다.
동생이 왜 왔는지 궁금하지만,
물어보지 못하는 눈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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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두 살.
자존심이 그렇게 상했던 날.
식어빠진 급식까지 처량 했던 그런 날.
그래도 동생이 학교에 있는 나를 잘 찾아와 준 것에 감사한 그런 날.
내 첫 급식은 그런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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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이후로,
나는 ‘누나’라는 이름이
얼마나 무겁고 또 다정한 책임인지를 알게 되었다.
바쁜 부모님 대신 동생을 챙기며
떡볶이 한 번,
친구들과 마음껏 먹어본 적은 없었지만
그 시간들이 우리 남매가
우애 깊게 자라날 수 있었던 것 같다.
지금 돌아보면,
그날의 식어빠진 급식은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밥이었다.
동생이 나를 찾아온 그 마음이,
아직도 내 마음 한편을
따스하게 데워준다.
그래서일까.
가을이 오면, 단풍보다 먼저
그날의 냄새가, 그날의 온기가
내 마음을 물들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