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칼을 던진 의사
그날은 유독 즐거운 저녁이었다.
오랜만에 큰아이가 먹고 싶어 하던 메뉴가 저녁상에 올랐고,
평소 차분하던 아이는 무척 신나 있었다.
그렇게 행복하던 저녁,
식탁 위에서 ‘쨍그랑’— 유리컵이 깨졌다.
손에서 피가 났다.
대충 본 상처는 예사롭지 않았다.
피가 계속 흘러내렸다.
남편은 이미 맥주를 한잔 마신 터라
집에 남은 두 아이를 두고
내가 큰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향했다.
운전을 못하는 나는 택시를 탔다.
하지만 가까운 병원에서는 “꿰맬 의사가 없다”라고 했다.
그 시간, 꿰매줄 의사가 없다는 말에 눈앞이 캄캄했다.
여기저기 전화를 돌렸다.
“지금 가면 꿰맬 수 있나요?”
4곳은 거절.
한 곳만 “오세요.”
그 병원으로 향하는 택시 안.
계속 흘러내리는 피를 보며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응급실은 붐볐다.
겁 많은 아이는 낯선 분위기에 덜덜 떨었다.
그런데 의사는 놀라울 만큼 차분했다.
“괜찮아. 금방 끝날 거야.”
어루만지듯 말하며,
상처를 능숙하게 꿰매주었다.
“손이라서 잘 안 아물 수 있어요.
정형외과 가서 소독 잘 받으시고 실밥 제거하세요.”
아이도 나도 긴장했던 밤이었는데
의사의 다정한 설명에 사르르 녹았다.
며칠 뒤, 동네 병원에 갔다.
의사는 시큰둥했다.
“이걸 여기서 하래요? 어휴~”
내쉬는 한숨에
불쾌했지만 참았다.
하지만 불쾌함이 극으로 다 닿은 날
'실밥 제거 날'
이 되어 병원을 다시 찾았다.
겁 많은 아이는 눈물부터 글썽였다.
의사는 퉁명스럽게 말했다.
“빨리 끝내게. 움직이지 마.”
아이는 더 무서워했다.
“무서워요…”
두어 번 시도 끝에 실패.
그러자 의사는 얼굴 옆 트레이에 있던
면도칼을 던졌다.
“난 이거 못 해! 바빠 죽겠는데!
야, 너는 내가 한가해 보여?”
그 말과 동시에
의사는 문을 쾅 닫고 나갔다.
나는 기가 막혔다.
아무리 아이여도, 환자에게 ‘야’라고 부르다니.
게다가 면도칼이라니.
간호사는 “오늘은 진료비 안 받으신대요…”라며
말했다.
“이보세요 선생님 치료를 한 게 뭐가 있어서 선심 쓰듯 그냥 가라고 하는 거죠?? 진료비 받으시고요
얻다 대고 환자를 향해 면도칼을 던져요? 의사 면도칼 그렇게 던지는 용도예요?”
간호사는 얼굴도 들지 못하고
“죄송합니다…”만 반복했다.
아이는 옆에서 덜덜 떨었다.
나는 온몸이 땀에 젖은 아이를
점퍼 지퍼를 끝까지 올리며
외쳤다.
“의사가 무슨 벼슬이야!”
우리 아이가 4살 때쯤 입원 당시
혈관을 못 잡아 너무 고생을 했던 적이 있다.
그 후부터 병원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는데
그런 아이에게 실밥 제거란
정말 온몸은 땀으로 적실만큼 두려운 일이다.
그렇게 씩씩대며 병원을 소란스럽게 만들고 나왔는데
엘리베이터에 함께 탄 아주머니가 말했다.
“나 아까 봤어요. 옆에 치료받고 있었거든~
그 원장 진짜 못됐어요.
여기 소문났어요.
대학병원 교수도 저렇게 안 해.”
순간, 화가 풀렸다.
내가 미친 게 아니었구나.
그러고 보니 응급실의 의사들도 더 바쁜 와중에도
성의껏 치료를 해주었는데
그 병원 리뷰를 보니 원장이 불친절함이 중간중간 보였다.
나와 보니 맞은편에 정형외과 간판이 보였다.
이전에는 몰랐는데 이 병원도 동네에서 오래 운영되고 있었다.
병원도 제법 컸다.
앞전 병원보다도 두 배 이상 차이는 규모.
나는 이렇게 큰 병원인데 안 해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인상 좋은 원장님은 아이를 보자마자
“아이고~ 어쩌다 그랬을까~
너 많이 불편했겠다. 손이라서 ~”
나는 그 말이 너무 감사했다.
그리고 감동 포인트.
내가 진료실 들어서자마자
“응급실에서 꿰매고 소독은 다른 병원에서 받았는데 혹시 실밥제거만도 치료해 주시나요?”
했을 때
“그럼요~ 간단해요~ 걱정 마세요~”
그러더니 아이에게 자꾸 말을 거셨다.
“학교는 재밌니? 넌 요새 뭐가 제일 신이나?”
아이는 쑥스러운 듯했지만 조곤조곤 답을 했다.
“끝!!”
원장님의 그사이 실밥제거를 하시고 밴드까지 깔끔히 붙여 놓으셨다.
“정말 감사합니다.”
의사가 되려면 정말 많은 노력을 했을 것이다.
그 이상한 의사는 우리를 환자로 본 것이 아닌
귀찮고 돈 안 되는 존재로만 생각했기 때문에
하찮게 여겼던 것 같다.
그 하찮음이 오롯이 느껴진 나 역시
그가 의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노력은 나처럼 생각하는 사람 때문에 물거품이 되는 것.
반대로 성의껏 치료를 해주신 원장님 모습에서
그 보기 어렵다는 겸손을 보게 되었다.
그 후, 나는 누군가 나에게 잘하는 정형외과를
묻는다면 자신 있게 원장님을 추천한다.
나부터 우리 가족이 9명에 주변 지인들에게 전달..
(나=우리 가족만 9명=?)
입소문이 나는 것은 순식간이다.
진심을 다하는 마음 하나는
생각보다 더 많은 것을 얻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