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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른디귿 Jan 09. 2021

술 한 잔 할래요?

 

<이미지 출처:pixabay>


 술을 즐겨하진 않지만 날이 쌀쌀해지거나 겨울이 되면 신기하게도 내 몸이 알코올을 원한다. 체온과 무드를 높이기 위해 한 잔, 두 잔 마시는 술은 참 달다. 기분도 좋고. 어렸을 땐 주종을 가리지 않고 속된 말로 무식하게 먹었다. 이런저런 실수도 해 보고 머리 끝까지 마시고 위액 정도는 토해 보고 나서야 '아, 나는 술이랑 어울리지 않는 사람이구나.'를 알게 되었다. 다행인 게 첫 사회생활을 할 때 깨우쳤으니 지금은 실수하지 않고 적당히 즐기며 내가 원할 때 마실 수 있게 되었다. 그때의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아마 아직도 부어라 마셔라 하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술은 분위기를 주도한다. 그 분위기를 내가 조율할 수 있다면 그 보다 좋은 순간이 또 있을까. 술과 낭만은 본인이 하기 나름이다. 그 좋은 순간은 이미 김육(조선시대 효종 영의정)과 이백(당나라 시인)은 알고 있었다. 


    자네 집에 술 익거든 부디 날 부르시소

    내 집에 꽃 피거든 나도 자네 청해옴세

    백 년 덧 시름 잊을 일을 의논코자 하노라


 김육의 '자네 집에 술 익거든' 시조이다. 술도 시간과 함께 익어가고 친구도 세월과 함께 늙어간다. 그 시간을 공유하고 의논할 수 있는 술과 친구가 있다니 얼마나 행복한 순간 인지. 훗날 나에게도 늙음이 찾아오는 순간이 오면 곁에 술 한잔 나눌 수 있는 좋은 벗 있다면 참 좋겠다. 인생의 희로애락을 겪어 무상이 뭔지를 알게 되는 나이에 내 모습을 생각하면 약간 서글프지만 꽃이 피고 지는 순간에 인생을 논할 수 있는 친구가 있다 생각하니 좀 멋지다는 생각도 든다. 인연을 소중히 하며 늙어가야겠다.

 

    꽃밭 가운데서 한 병 술을

    친구 없이 홀로 술을 마신다

    잔 들어 밝은 달을 맞이하고

    그림자 바라보니 셋이 되었다


 술과 낭만을 사랑한 애주가 이백의 '월하 독작'에서 그려내는 혼술의 경지에 오르는 듯하다. 달과 달이 내어준 그림자와 내가 함께 마시는 술이라니. 이보다 낭만적인 순간이 있을까. 외로운 것과 고독한 것은 엄연히 다르니. 타임머신이 있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당나라로 날아가 월하 독작하는 이백의 그림자가 되고 싶다. 요즘은 밤에도 조명이 많아 진짜 달빛을 보지 못한다. 시골에서 나고 자란 덕에 다행히도 달빛을 기억한다. 은하수가 흐르는 하얀 밤하늘, 달빛에 부서지며 반짝이는 별빛, 보지 못 한 사람들은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그때는 어린이였을 때이니 술맛을 상상도 못 해 봤지만 그때 술맛을 알았다면 참 기가 막힌 경험이 되었을 텐데. 지금은 그런 배경이 주어지지 않는 환경이기에 무지 아쉽다. 


 카페인이 혈관을 타고 흐르는 수액처럼 우리 몸에 들어올 때 눈이 저절로 감기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적당한 때에 마시는 알코올은 식도를 타고 단전까지 흐른다. 몸 안으로 쏴-하게 퍼지는 알싸함이 행복을 가져다준다. 무라카미 하루키 [만약에 우리의 언어가 위스키라고 한다면]에서  ‘위스키는 놀람과 경탄보단 위안과 진정에 가깝다’라고 했다. 주종을 떠나 자기에게 위안과 진정을 가져다줄 수 있는 술 한 잔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행복 요정들은 소소한 삶에서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니. 술은 잘 모르지만 술에 대한 취향을 갖는 것도 참 좋은 것 같다. 덕후의 기질까지는 아니더라도 취향은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니까. 


 엊그제 눈이 참 많이 내렸다. 오래간만에 겨울다운 계절을 왔다. 곧 이 추위도 물러나겠지만 각자 좋아하는 주종 한 잔으로 따듯한 겨울을 보냈으면 좋겠다. 나도 영화 소공녀의 그녀처럼 위스키 한 잔 하고 싶다. 





[술]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취하는 음료. 적당히 마시면 물질대사를 높이는 효과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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