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대리 산책
Walter Granville-Smith (American, 1870-1938)
일면식도 없던 이에게
오래 묵었던 상처에 대해
쉽지 않았던 마음에 대해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건네
듣고 있는 이의 표정이
당황스러웠는지
적잖이 놀랬는지
뭘 이런 이야기까지 건네나 싶을 정도의 표정을 지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말하고 있는 이의 표정이
안심이 되었는지
이해가 되었는지
쉽지 않은 이야기를 건네는 이의 표정을 읽었는지
그 역시 잘 기억이 나질 않지만
듣는 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
풍족하게 살았던 유년기의 이야기
홀로 캐나다로 유학 가서 외로웠던 이야기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 적응하지 못했던 이야기
검정고시를 본 이야기
알바를 한 이야기
동생이 부사관이 되어 멋진 삶을 사는 이야기
요가로 다이어트를 하는 이야기
엄마가 암에 걸려 아파한 이야기
경상도 남자 친구 때문에 힘들었던 이야기
결혼을 꼭 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
어렸을 적부터 부모님의 지지와 사랑을 많이 받았던 이야기
왜 여기에 와 있는지에 대해
말하는 이는
고작 케케묵은 곪아진 상처 하나만 드러냈을 뿐인데
듣는 이의 삶을 다 들여다본 듯하여
미안하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내
달콤한 게으름
-평대리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