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지리 산책
한 발만 내딛으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벼랑 위에 서 있었어
용기가 없었겠지
그만 한 발 뒤로 물러나 주저앉고 말았어
그저 멍하더라고
아무 생각도 안 나고 속 시원하게 울고 말았어
한 참을 그렇게 있다 보니
얼마나 배가 고팠는지 몰라
어딘지도 모른 채 걷고 또 걷고 하니
낡고 아담한 집이 나오더라고
무작정 들어가 있는 찬들을 먹었지
얼마나 먹었나 먹다 잠든 것 같아
소박한 맛을 내는 음식점이더라고
손님이 오면 오는 대로 안 오면 안 오는 대로
욕심 없이 요리하는 묘령의 여인
하얀 블라우스 검은 플리츠스커트 입는 여인
가느다란 팔목으로 요리할 때 명화처럼 빛나던 여인
오는 사람에게 조용하지만 따뜻한 배려를 주었던 여인
며칠을 머물고 나서던 날
자신도 모든 것이 힘에 겨운 날이 있었다고
세상에 발 딛는 것이 사치처럼 느껴지던 날
모든 걸 포기하고 떠나왔었다고
특별히 뭘 해야만 하는 게 아니더라고
손님이 없어도 식재료를 다듬고 하는 느릿한 시간이
자신이 찾던 가장 만족한 순간이었다고
다시 정신없는 시간 속에 있던 날
귀를 내어 주던 그 공간이 그리웠지
일부러 시간을 내어 비행기 티켓을 샀지
고운 미소로 요리하며 내 이야기를 담아주던 그 여인 거기 있을까
- 달콤한 게으름
저지리 산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