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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y 27. 2016

노랑의 선택

돌아보니 우리의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게 이주 혹은 삼주정도가 지나면서 머리 뒤쪽으로 노란색의 반점이 있는 녀석에게 우리는 '노랑'이라는 단순한 이름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정성스럽게 지어주면 너무 정이들어버릴 것 같아서였다.

신기한 건 그때부터였는데, 처음 시작은 휘파람이었다.

휘파람을 잘 부는 J는 '휘 휘-'새된 소리를 내었는데, 그러면 녀석은 똑똑하게도 그 소리를 알아듣고 와서 밥을 얻어 먹곤 하는거였다.

심지어 매일 우리가 퇴근하는 집 앞 작은 골목어귀에서 어디에 있다가 오는지 알 수 없지만, 또 대체 그 소리를 어떻게 알아듣는건지 뿅 달려와 애교를 부리며 밥을 달라고 냥냥거렸다. 

이렇게 똑똑한걸 보면 얘는 집고양이가 아닐런지, 어딘가에 녀석을 잃어버려 슬픔에 빠진 주인이 있지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노랑은 붙임성이 너무 좋았다. 좋아도 너무 좋았다. 밥..때문이었던가?

그렇다해도 무시할 수가 없었다. 어느날부턴가는 심지어 휘파람을 굳이 불지않아도 우리의 발소리라도 알아듣는 듯, 골목 속 그림자에 숨었다가 눈 앞에 쨘! 나타나는 녀석이 너무너무 신기하고 기특해 죽을지경이었으니까.


나중에 알았지만, 이런게 '간택'이라고 했다. 고양이에 대해 우리는 정말 아는게 하나도 없었다.

어릴 적 아빠가 새끼 고양이를 집에 데려온 적이 있었는데, 서랍 밑에 숨어 들어가 나오질 않아서 다시 데려온 집으로 보낸 적이 있었다. 나중에 보니 그러면 안되는 거였더라.

아무튼 어쩌다보니 녀석이 때로 골목 입구에 나타나지 않으면 어쩐지 실망하는날도 생겼다. 우리말고 밥을 더 잘주는 좋은 사람을 만나서 그 집 고양이가 되어버린건 아닐까 하고.

상심도 잠시, 의리 있는 노랑은 조금 늦더라도 정말 신기하게 띠또띠또 도어락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날 때 즈음이면 또 짠!하고 번개같이 나타나 너댓개의 계단을 달음박질해올라 현관앞까지 당도하곤 했다. 우리집은 공동 현관이 따로 없는 다가구 주택의 2층이어서 현관앞 복도는 골목으로 열려있는 구조였기에.

또 어떤 날엔 길가쪽으로 난 작은방 창문에 불이 켜지면 우다다 달려오기도 했다. 우리는 노랑이가 천재라고 생각했다. 익숙해지고나니 우린 노랑을 못만나면 마음이 불편해졌다. 

뭐든 익숙해지면 보인다고 했던가? 그 때까지 관심이 1도 없던 길냥이들이 눈에 들어오고 그 중에서 나의 노랑을 눈으로 찾고 있었다. 나의 노랑이라니!

오늘은 안오겠지싶은 날에도 어김없이 나타나선 사람 마음을 흔들어 놓는 영특한 녀석.


어떤 날 출근길에는 남의 집 담장 위를 한가로이 노니는 노랑을 보느라 지각할 뻔 한 적도 있었다. 막상 노랑은 나를 본체만체했지만.. 그렇게 한달여를 보냈다. 썩 길지도 않은 시간이었다.

여름이었고 8월초라 장맛비가 한참이어서, 폭우가 쏟아지는 날에는 고양이는 비를 싫어한다며 어물쩡 집안에 들여서 하룻밤 재워 내보내기도 해보고. 


이미 마음이 갔는 줄도 모르고 J와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밥과 물만 챙겨줄 심산이었다. 

그 사실을 알기전까진...






낯선 집에 들어왔는데도  또랑또랑한 눈으로 우릴 바라봐주는 더럽지만 귀여운 노랑. 그새 장난감도 사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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