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끔 광화문에 갔다 아니 갔었다. 주로 영화를 보거나 서점에 들르기 위해서.
그건 나의 이십대에 누렸던 가장 큰 행복이었다. 서대문 근처의 회사에서 일할 때가 있었는데, 가장 좋았던게 광화문과 안국동이 지척에 있다는 것이었다. 스폰지 광화문 그리고 시네큐브. 아트선재의 시네코드. 혼자 조용히 영화를 보고오기 가장 좋은 곳. 내 청춘의 감성이 고스란히 담겨있던 곳.
그 곳들을 생각하면 어쩐지 여름이 떠오른다. 영화를 본 뒤의 여운을 느끼고싶어 근처 카페에서 멍하니 앉아있곤 했다. 그리고는 매미소리와 여름의 나무가 가득한 그늘진 길을 골라 걸으며 일부러 멀리 있는 정류장까지 간 뒤 버스를 타고 집에 오던 시절. 시간을 사치롭게 썼던 시절.
이십대를 지나 삼십대로 흐르던 그 시절 감상했던 많은 영화 중 여름이 오면 생각나는 영화가 있다.
몇몇 영화가 있지만 그 중의 하나는 '바닷 마을 다이어리'이다.
영화는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영화로 그 서사는 나름대로 복잡하지만 영화는 시종일관 잔잔하다.
그게 그 영화를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다. 영화보다는 책으로 먼저 접했는데, 총 9권짜리 만화책으로 그림으로 그린 에세이 같은 느낌이 드는 따듯한 만화로 아마 마지막으로 서점에서 구입했던 단행본이 아닐까싶다.
계절을 느끼며 그 풍광과 자연스러운 라이프를 보여주는 영화를 꽤 좋아하는 편인데 이 영화가 그렇다.
영화나 소설 속에서 주요한 씬으로 음식에 관한 것을 디테일하게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기도 하고.
여름이면 매실을 수확하여 매실주를 담그고, 함께 국수를 삶아 먹으며 동네 식당에 들러 전갱이 튀김으로 식사하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장면이 가득한데 그 안에는 특히 내가 가장 부러워하는 삶, 바로 자매의 삶이 많이 녹아들어있다. 할머니가 되어서도 함께할 자매를 가진다는 것. 그건 정말 선천적인 행복이다.
영화의 주인공 스즈는 선천적인 이유와 후천적인 노력을 함께 지녔기에 자매를 갖게되지만,
태어나보니 자매가 없던 나는 할머니가 되어서도 작고 소중한 것들의 아름다움에 함께 감탄할 수 있는 자매같은 친구들을 만들었다. 내가 가질 수 있는 후천적인 행복이다. 세상에 당연히 가지게 되는 것은 없으니까 친구들이 내 친구인 것도 당연한 일은 아니다.
남들 눈엔 예쁜 쓰레기일 뿐인 사소한 것들을 함께 보며 기뻐하고, 계절의 변화를 느끼고 함께 경탄하고 노래할 수 있으며 맘 아픈 일이 있을 때 함께 울어줄 수 있는 친구들과 우리는 서로의 후천적 자매가 되어주기로 한다. 여자의 우정이란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는 글귀의 주어가 되는 대상은 정말 그저 되는대로 행복하기만 했을까?
아마도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행복하게 살려고 늘 노력했던 동화 속 주인공처럼 늘 나중나중까지 행복하기 위해서 오늘도 열심이었다.
-Fin.-
덧.
영화를 보고나면 이곳에 굉장히 가보고 싶어진다. 슬램덩크의 배경이기도 했던 곳이다. 가마쿠라.
이젠 가보기 힘드려나..싶어서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