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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0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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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은 짧고 나는 소설쓰기를 했다. #3




여자는 혼잣말을 내뱉으며 창으로 향했던 시선을 거두었다. 일기를 쓰려고 펼쳐둔 노트에는 아직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후... 나직한 한숨을 쉬고 쉬 오지 않는 잠을 청하기 위해 알코올의 힘을 빌려보기로 한다. 여자가 요즘 즐겨 마시는 것은, 조금 큰 잔에 얼음을 가득 채우고 보드카와 깔라만시 토닉워터를 1:5 비율로 섞는 보드카 토닉이다.



보드카 토닉을 만들 얼음을 꺼내기 위해 냉동실 문을 열었다. 차가운 공기가 훅 끼쳐와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가을이라는 계절이 피부에 와닿는다. 유행 지난 오래된 냉장고의 삐걱대는 얼음 트레이를 앞으로 끌어당겼다. 너무 쉽게 나오는데 싶었더니 역시 얼음이 담겨있어야 할 트레이는 텅 비어 있었다. 마지막으로 얼음을 먹은 게 언제였더라? 새로 물을 채워 넣는 걸 잊어버린, 보드카 토닉은 좋아하지만 게을렀던 과거의 자신을 잠깐 탓한다. 냉동실 문을 탁 소리 나게 닫고 여자는 요즘 무언가 자책할 일이 많아졌다고 생각하며 냉장실 홈바를 열어본다. 홈바에 얌전히 들어앉은 반쯤 남은 보드카병을 몇 초간 바라보았다. 하지만 이내 고개를 두어 번 흔들었다. 얼음이 없는 보드카 토닉을 잠깐 상상해버린 것이다. 얼음 없는 보드카 토닉은 역시 끔찍하다.


그렇지만 잠이 오지 않는 밤이다. 일찍 잠들어 평화로운 꿈의 나라로 가는 건 일찌감치 잘못된 계획이다. 여자는 꾸역꾸역 책상 앞에 앉아본다. 아까 쓰다 말았던 일기를 다시 이어 쓰기 위해서다. 초등학교 때 쓰던 일기처럼 오늘 날씨는 맑음이라고 써야 하나 고민하며 키보드를 피아노 건반처럼 두드려본다. 방안을 울리는 키보드 소리로는 대단한 글이 나오는 것 같지만 모니터에는 의미 없는 글자가 나타났다가 사라진다. 


'오늘ㅁㅇㄴㄹㅁㄴㅇㄹㅁㄴㅇ라ㅣㅁ너읾너ㅇ|.........' 


타닥타닥 키보드 자판 소리가 제법 듣기가 좋았다. 작년 블랙프라이데이 때 이십만 원 가까이 들여 사 둔 기계식 키보드다. 여자가 가진 아이맥과 어울리지는 않지만 레트로 콘셉트이라 마음에 들어서 장바구니에 담았다 뺐다를 반복하다가 마침내 구매한 키보드다. 그때 결제하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제법 합리적인 구매를 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엉덩이로 힘차게 의자를 밀어내면서 일어났다. 나갈 채비를 해야겠다. 역시 보드카 토닉에는 얼음이 있어야 한다. 편의점에 얼음을 사러 가기에 나쁘지 않은 시간이다.








{미지근한 매거진}에서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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