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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Oct 20.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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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 #9



"계산하시겠어요?"


머뭇거리는 사이 심드렁했지만 눈치 빠른 알바생이 뒤에 선 남자에게 말했다. 남자의 하얀 손이 계산대 위로 맥주와 핸드폰을 올려놓았다. 여자의 것과 같은 기종의 핸드폰이었다.





여자의 눈이 남자가 계산대에 올려둔 핸드폰을 재빠르게 훑었다. 여자가 찾고 있는 그 핸드폰은 케이스나 장식이 없어서 누군가의 핸드폰과 구분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른 의심은 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도 괜시리 아까 부딪힌 이마가 좀 더 아픈 것 같아 한 번 쓰다듬어보았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남자가 내민 핸드폰도 아무런 장식이 없었다. 그리고 같은 색상. 그래. 그 핸드폰이 남자의 것이 맞다면 말이다.



여자는 마음이 어쩐지 부글부글했다. 억울한 것도 같았다. 이마는 아팠고 핸드폰은 어디갔으며, 심지어 맥주는...하...

여자는 드디어 두 주먹으로 남자의 멱살을 잡았다. 내 이마! 내 맥주우우~라고 소리치면서 언제 기운이 없던 적이 있기나 했냐는 듯 남자의 몸을 들어 공중에 띄웠다가 빠른 속도로 편의점 바닥에 내리 꽃았다. 그런 여자는 스스로가 봐도 뭐 거의 국대급 유도선수였다. 아깐 심드렁했던 알바생의 꽤나 놀란 얼굴을 본 것 같아 더욱 의기양양한 채로. 다음엔 씨름이고 레슬링이고 현란한 기술을 보여줄테다! 


그랬다. 그 찰나 부글부글 끓는 속으로 여자는 말도 안되는 상상을 하고 있었다. 머릿속에선 이미 범인(거의 도둑이라고 생각하면서)을 검거하고 있었던 거였다. 소중한 나의 맥주를 이렇게 낚아챈다고? 오늘의 마무리가 지금 이 장소에 달려있는데?


어쩌면 여자의 속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던 눈빛이 여자가 쓰고있던 붉은 모자의 챙을 뚫으며 남자의 손끝에 붉은 레이저를 쏘아버렸을지도 모른다. 

그래서인가? 남자가 말했다.



"이거 같이 계산해주세요."



뭐라고? 내가 지금 뭘 들은거야? 역시 약간은 놀란듯한 알바생의 얼굴이 스쳤다. 이 남자애도 표정이란게  있구나 생각하면서 여자는 몸을 뒤로 빠르게 돌렸다. 그리고 남자의 얼굴을 확인하고 그대로 멈췄다.


거기에 그 놈이 있었다.










{미지근한 매거진}에서 연재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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