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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토리 Mar 12. 2022

ep.33 : 산책이 있는 삶

또 다시






매일 산책하는 사람들은 자연이 돌연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2월에 들어서면서부터 이미 봄은 존재했다.
흙이 부풀어 올랐고 나무줄기의 색이 바뀌었다.
벌레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고양이들의 소요가 길어졌다.
동그란 물방울들 입안에서 굴리듯 지저귀는 새가 숲에 새로 왔다. 
봄은 단서들을 한껏 뿌리고 다녔건만,
도시의 건물안에서는 감지하지 못했을 뿐이다.

한정원, <시와 산책>중





작년에 그래서 어땠더라. 잘 기억나지 않는다. 정말로 기억을 못한다기 보다는 특별히 인상적인 기억이 없었던가? 출구가 없는 깊은 땅굴을 스스로 파고 들어가는 것 같은 기분이 드는 한 해였다.

좋아하는 것들이 더이상 좋아지지 않고, 기분은 늘 평균선 아래에 머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지루하게 반복되는(그렇지만 날마다 조급했던) 일상을 견디지 못해 가끔 뭔가 배워보겠다고 온라인 비대면 강좌들을 수집하듯 등록하기도 하고. 시작도 못할 취미를 눈이 빠져라 검색하기도했다.

역시 나는 루티너리한 사람은 못되는건가? 자책을 하기도 하고.

새로 배운 운동을 함께 하자는 친구의 잔소리를 4개월 째 듣고 있으면서, 두어번의 상담을 다녀오고도 결국 등록하지 않았던 까닭은 역시 겨울이어서라고 핑계를 대어본다.


창문을 열면 부쩍 새소리가 신이 난 듯 들려온다. 화단의 화분흙을 덮어 둔 지푸라기들을 까치들이 너도나도 물고서 어디론가 날아가는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작년에 심은 사과나무에 솜털에 감싸인 새순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어떤 세계의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결정을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이라는 글귀를 어딘가에서 보았다.

행복과 기쁨은 이 순간 그것을 원하는 사람에게 이유없이 찾아오는 거라고 했다. 불현듯.

끝까지 완주하지 못할 계획을 세우고나니 조금 들뜬 기분이 든다. 매일이 다짐으로 반복되더라도.



늘 그랬듯이 계절은 바뀌어서 봄이 왔고 나는 봄의 세계로 들어갈 것이다.

어두운 겨울은 벗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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