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llo, 2023!
새해가 밝았고, 오늘은 벌써 3일 째다.
첫 하루는 일요일이었으니까 어쩌면 이틀정도를 새 다짐으로 살지 않았을까.
커피를 마셔서 받은 다이어리를 쓰기 시작했다. 3일차.
12월 31일엔 해를 넘기지 못하고 한 해 동안 쌓아왔던 서운한 마음을 터뜨려버렸다. 참으려고 했는데.
내가 원하는 건 '함께'를 '가족'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고 꼭 강요할 거라면 일원 '모두'가 '서로'에게 배려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것. 일방이 아니라. 어째선지 내가 하는 건 당연하고 다른 사람은 아닌건지.
그간 진심을 다해했던 행동이 서운함이란 결과로 파도처럼 나를 덮쳐버렸기 때문에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제 다 관두고 이기적으로 살겠다.
1월 1일에는 단 둘 뿐인 식구인데도 각자의 일상을 보냈다. 그는 조금 더 느슨한 관계를 원하는 나를 배려해주려는 마음이라고 했으나 아마 그도 사이에서 꽤나 괴로웠을 것이다. 보드를 타겠다 해서 스키장 리프트권을 예매해주어 놀다 오라 보내고 나는 일어나 이불을 털고 건조기에 베개를 넣어 솜을 살려둔다. 건조기에서 갓 꺼낸 베개에서 따끈한 냄새가 난다.
새해 첫날 이자 연휴의 마지막 날이니까 포근하게 자고싶었다.
점심이 지나서야 느지막이 챙겨 입고 마감이 얼마 남지 않은 전시를 보러 갔지만, 휴관이었다. 아차.
오랜만의 휴일에 미처 생각지 못했다. 1월 1일은 공무원도 쉴 텐데. 주차권 구입한 게 아까워서 차를 주차장에 두고 근처를 배회한다. 온 김에 SNS에서 뷰 좋기로 유명한 카페에 가볼까 한다. 사람이 많아 자리가 없으면 다른데 가지 뭐 하는 느긋한 마음으로.
카페에는 창가자리가 딱 하나 남아있었다. 운이 좋군.
창밖의 서울 도심 뷰를 즐기며 가방에 넣어온 책을 읽으려는데, 책은 읽히지 않고 귀가 열려버렸다.
앞 뒤 옆 그 옆까지 모두 소개팅 중인 것이다. 어떤 커플은 아직 이름과 직업... 자기소개 중이다.
나를 제외한 대부분이 반듯한 자세로 짝을 지어 마주 보고 앉아 있으니 괜스레 맞은편 빈자리가 쓸쓸해보이기 시작했다. 그런 데다가 이곳 카페라테는 정말 형편없는 맛이다.
서비스로 준 버터 쿠키가 맛있어서 그나마 다행.
'뷰 좋은 카페, 커피 비싼데 맛없음. 소개팅 명소'라고 2023 첫 카페에 대한 인상을 기억으로 남겨본다.
결국 오래 있지 못하고 일어나 나와서 걸었다. 일요일 늦은 오후 해가 길어진 시간은 꽤나 쓸쓸하다. 겨울바람이 불어대는 길을 혼자 걸을 땐 왠지 더. 눈에 보이는 과일가게에서 귤 한 망을 사서 품에 안고 좋아하는 플레이리스트를 들으면서 목적지 없이 한참 걸었다.
월요일이 되고보니 어제 추운 날 얇은 덧신에 구두만 신고 걸었기 때문인지 감기에 걸리고 말았다.
새해의 갓생이라며 호들갑을 시작하기도 전에.
골골대며 출근해서는 등 떠밀리듯 병원에 갔다. 혹시 독감이거나 코로나면 폐가 될까해서.
월요일 오피스빌딩 내 병원에는 직장인들이 한가득이다. 일하기 싫은 직장인들의 외유는 아닐까 잠깐 생각해 본다. 새해 첫 출근 날, 게다가 월요일 오후의 앉을자리도 없을 만큼 사람 많은 이비인후과 대기실에는 간호사가 부르는 이름 외에는 아무런 말소리도 오가지 않는다. 다만 마스크 속으로 간간히 코를 훌쩍이는 소리와 콜록이는 기침만이 가득한데 그게 무섭기만하다.
숨도 조용히 작게 쉬면서 한 시간을 기다려 진료를 받았다. 목과 코감기. 독감도 코로나도 아니었다.
약국에 가서 처방전과 바꾼 약봉투 속에는 대형 핑크색 딸기맛 물약이 담겨있었다.
몽롱한 상태로 회사에 들어가 저녁 업무를 빠르게 정리하고 이른 퇴근을 했다.
집으로 가는길이 유난히 아득한 새해 첫 월요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