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5

by 도토리



'애들이랑 노는 건 정말 시시해서 그래.'


아직 중학교 2학년인 H는 자기보다 6살이 많은 오빠를 가졌다. H의 집은 가난했지만, 풍요로웠는데 그건 오빠가 서울대생이었기 때문이다. 오빠는 부모님의 자부심이자 H에게는 가장 좋은 친구였다.

오빠는 H에게 수학 문제 잘 푸는 법을 알려주었고, 영어단어를 잘 외우는 법이나 국사시험 잘 보는 법에 대해서도 친절히 알려주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책상 앞에 앉은 H는 풀고 있던 문제집을 펼쳐 둔 채 생각에 잠겼다.

애들이랑 노는 건 정말 유치하고 시시한 일이야. 슬쩍 고개를 돌려 거울을 보니 그리 예쁘지는 않은 얼굴이 보였다. 정말 다 유치해. 밀어두었던 문제집을 끌어당겨 다시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토요일 오후 두 시라는 건 오전 수업을 마친 아이들이 삼삼오오 모여 재잘거리며 떡볶이를 먹으러 다니거나 동네 쇼핑센터에 들러 사지도 못할 갖가지 물건들을 구경하기에 아주 좋은 때 일 것이다. 하지만 A는 지금 책상 앞에서 문제집을 풀고 있다. 함께 하교하던 길에 짝이라서 조금 친해진 A와 A의 친구인 K가 함께 놀자고 했지만 H는 그럴 시간이 없다 오늘의 공부를 끝내야 한다는 이유로 그들과 헤어졌더랬다. 그 둘은 뭔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왜 의아해하는지 H는 알 수 없었다. 계획표대로 사는 게 왜?


그런데 유난히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햇살이 길다. 연필을 쥔 손에 엉긴 햇살이 지나치게 따사로워 문제를 풀 수가 없다. 한 개의 문제를 푸는 데에 몇 번이나 머릿속 미로를 헤맸다. 오늘따라 문제집 속 글자들이 개미처럼 보인다. 이토록 눈에 들어오지 않는 건 어째서일까?


왜 이렇게 해야 하는지 이유는 잘 몰랐다. 친구들이 너는 왜 그렇게까지 공부를 매일 해? 하고 물어오면,

'오빠가 그렇게 해서 서울대에 갔거든'이라고 대답했다. 그럴때마다 친구들은 정말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짓곤했다. H도 딱히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다.


어느 날 오빠가 대학에 입학을 했다. 부모님은 오빠의 입학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셨다. 별 볼 일 없는 집안을 일으킬 하나뿐인 아들의 서울대 입학 소식이기 때문이었다. 오빠는 부모의 지원 없이도 좋은 학교에 덜컥 입학했다. 부모님은 그 이후로 H를 혼내는 일도 칭찬하는 일도 없었다. 오빠는 집안의 태양 같은 존재였고, 가족들은 모두 행성이 되어 오빠 주변을 맴돌았다. H는 자신이 저기 어디 작은 인공위성 정도가 아닐까 생각해보았다. 그저 H는 어느 날 부모님의 마음에 내가 파도가 되어 들이칠 수 있기를... 고요한 시간을 꾸준하게 보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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