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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 있다는 것은 흔적과 그림자를 남기는 일

"의사가 뭐라고 하드나?"

아버지는 웃옷을 벗고 양반 다리를 하고 방바닥에 앉아있었습니다. 가슴 가운데 세로로 절개한 수술 자국이 선명합니다. 켈로이드 피부라서 부풀어 오른 붉은 살점이 울퉁불퉁합니다. 저는 수술자국에 시선을 오래 머물지 못하고 아버지 옆에 있는 약봉지를 정리했습니다. 왼쪽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아버지 오른쪽 귀에 가까이 대고 말했습니다. 이미 여러차례 말했던 터입니다.

"더 이상 수술은 너무 위험하대요....."

아무말 없이 아버지는 수건을 집어 들고 몸을 일으켜 방 안쪽 욕실로 힘없이 들어갔습니다.

안방 문을 닫고 나왔습니다. 한 시간쯤 지났을까요. 늘 켜져 있는 안방 TV 소리가 들리지 않았습니다. 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어두운 방.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왼쪽 다리를 오른다리 위에 꼬아 놓고, 왼팔은 접어서 이마를 짚었습니다. 분명 아버지가 깨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창문에서 새어 들어오는 불빛에 비친 아버지의 그림자가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아버지는 심장 수술을 이미 두 번이나 받았습니다. 세 번째 심장 수술은 20대도 장담할 수 없다고 의사는 말했습니다. 정기 검진 결과를 젊은 보호자와 함께 와야 한다고 해서 급히 출장 일정을 당겼습니다. 한국행 비행기 티켓을 변경해서 빨리 한국에 들어왔습니다. 수술도 안되고 치료 방법은 더 이상 없다는 병원측 얘기를 듣고 아버지는 말이 없었습니다. 담담해 하던 아버지 표정에 나도 마음이 먹먹해졌습니다.


살아 있다는 것은 흔적과 그림자를 남기는 일입니다.

아버지의 가슴의 깊은 상처, 방 안의 적막, 그리고 창문에 비친 무거운 그림자까지. 모든 것이 아버지가 살아온 시간과 고통의 증거이자,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상처와 침묵 속에도 삶은 계속되고, 우리는 그 그림자까지 끌어안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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