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젋은 보호자가 꼭 동행하라고 하더라....형섭이는 지금 한국으로 들어오기 어려운가봐... 너도 못오면 내가 혼자 아부지 데리고 병원 가야지..." 엄마 전화였다. 팔순이 다된 엄마 혼자 아버지와 병원에 가게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엄마와 통화를 마치고 한 시간 뒤쯤 오빠 전화가 왔다. “이번에는 너가 한국 들어가라… 내가 당장 한국을 갈 상황이 못된다…” 아버지 심장 수술 후 6개월마다 받는 정기 검진 결과가 안좋다는 얘기였다. 젋은 보호자가 와야 한다고 했다고 했다.
해외에서 근무하고 있는 나로써는 항상 부모님 병원 문제나 사소한 집안 일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곁에서 돌보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지난 8년 동안 아버지 수술로 병원 입퇴원을 반복하는 일은 오빠 몫이었다. 9년 전, 오빠네가 해외 이주를 결정했을 때만 해도 그저 새언니와 조카들 유학 정도로 생각했었다. 기러기 생활을 9년째 해하던 오빠마저 아에 호주로 건너가기로 했다. 오빠의 빈자리가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2025년 7월 16일
출장 일정을 당겨서 비행기 일정을 변경했다. 나는 한국으로 들어갔다. 인천 공항에서 택시를 타고 한국 집으로 갔다. 더운 날씨 소나기가 쏟아졌다. 엄마와 아버지는 이미 주차장 입구에 나와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궂은 날씨인데도 나를 맞이하는 부모님의 얼굴 표정이 활짝 피었다.
7월17일 오전 9:00 강남 세브란스 심장 내과에서 아버지는 심장 초음파 검사를 다시 하기로 했다. 나는 아버지와 오전 8:25분 강남 세브란스 병원 응급실 옆 대형 회전문 안으로 들어섰다. 널직한 복도에는 출근하는 직원들과 소수의 방문자와 환자가 보였다.
심장 초음파 검사실에 도착하니 우리가 첫 환자였다. 아직 간호사들도 출근 전이었다. 잠시 뒤 간호사 한 명이 나와서 전등 불을 켜고 기계 전원을 켰다. 아버지는 안내데스크 옆에 서 있는 키오스크로 다가가서 환자번호를 누르고 접수번호를 뽑아와 안내데스크 앞 벤치에 앉았다. 오랜 병원 출입으로 아버지는 키오스크 기계를 여유롭게 다뤘다.
8시 40분 즈음 주변을 돌아보니, 어느새 텅비어 있던 대기실 벤치는 만석이었다. 검사 순서를 벤치에 앉아 대기했다. 아버지는 나에게 말했다.
"내가 증상이 없단 말이지... 근데 뭐가 안좋다는건지....담당 교수가 젊은 사람으로 바꼈어... " 아버지의 목소리에는 한숨과 넋두리가 섞여 있었다.
검사 순서 번호표를 쥐고 있던 아버지는 대기표를 당신 무릎 위에 맥없이 내려 놓았다. 001번이었다. 9:00 간호사가 아버지를 호명했다. 젊은 간호사는 아버지를 심장 초음파 검사실로 안내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의사 가운을 입은 젊은 의사가 아버지 이름을 말하며 “김창호씨 보호자신가요?”라고 물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서며 맞다고 말했다. 젊은 교수였다. 아버지 상태에 대해서 설명해주었다. 세 번째 수술 결과를 장담할 수 없고 수술 부위가 이전과는 다른 부위가 나빠졌다고 했다. 아버지 같은 케이스를 처음 본다고까지 했다. 자세한 건 오늘 검사 결과를 보고 내일 영상 자료를 보여주면서 설명해 주겠다고 했다. 주치의는 아버지의 세 번째 수술을 만류하는 듯했다. "성공 확률이 50%:50%입니다. 연세가 높아서 수술 후 일년을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주치의의 설명을 듣고, 나는 벤치로 돌아와 앉았다. 긴 한 숨이 나왔다.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제서야 나는 환자로 보이는 어르신과 동행한 보호자들이 보였다. 혼자 병원에 주로 다녔을 아버지와 바쁜 중에도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에 동행했을 오빠 모습이 떠올랐다. 할아버지 어르신은 아들로 보이는 흰머리 중년 보호자, 할머니 어르신은 딸로 보이는 중년 여성 보호자가 같이 와 있었다. 부모님이 연세가 높아지시면서 건강 문제로 병원에 들락거리는 일이 많아진다. 우리 가족의 문제만이 아니다. 곁에서 돌봐드리지 못하다 보니 실감하지 못했다. 아픈 환자도 힘들고 보호자도 힘든 여정이다. 그간 수고했을 시간을 모르고 오빠에게 투덜 거렸던 일이 미안해졌다.
종종 부모님의 건강 문제를 '언젠가 생길 일'로만 생각했다. 멀리 떨어져 사는 현실에 익숙해져 버렸다. 그러나 막상 위급하거나 중요한 순간이 왔을 때, 보호자로써 곁에 있는 일은 단순한 동행 의미 이상이었다. 환자가 느끼는 정서적 안정 뿐만 아니라, 의료진과의 소통, 결정 과정에 영향을 끼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 동안 나 대신 짐을 짊어져 온 오빠와 엄마의 수고가 느껴졌다. 가까이 있는 가족이 감당해야 하는 병원 동행, 반복되는 검사와 입퇴원 절차, 의료 결정의 무게는 생각보다 크고 지치는 일이란걸. 직접 그 자리에 서 보기 전에는 알기 어려운 고단한 일이다. 이번 경험은 함께하지 못한 시간에 대한 미안함과 동시에 앞으로는 의식적으로라도 시간을 내어 부모님과 가족에게 마음을 전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했다.
아버지의 남은 시간과 건강은 지금 곁에 있을 때 더 값지게 챙겨야 겠다. 멀리 있는 자식이라는 핑계로 한국에 있는 오빠에게 아버지 병원 일을 미뤄뒀었다.
"오빠, 이번에 내가 해보니까. 오빠 많이 힘들었겠다... 수고했어"
나는 그동안 수고한 오빠에게 감사를 전했다.
#자이언트인증라이팅코치김지안작가
#닥책모
#김지안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