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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의 회복, 킨츠기 방식으로

2025년 8월 6일. 저녁 7시 30분, 나는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또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여보세요, 지안이냐!" 아버지가 나를 반기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목소리는 명랑했지만 기운은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왜 받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전화가 온줄도 모르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텔레비전 소음이 들렸다. 아버지는 낮에 밖으로 운동 나갔다가 햄버거 하나 사먹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건강도 안좋으면서 햄버거 같은 거는 왜 먹냐고 나는 잔소리 했다. 아버지는 아이처럼 말했다. "시간도 애매하고 그다지 배도 고프지 않아서 그냥 롯데리아 햄버거 작은거로 해결했지, 뭐. 그거 먹어도 괜찮다...."

세 번째 심장 수술은 위험하다는 병원 의사 소견을 들은 뒤로 아버지는 부쩍 기운이 없어졌다.

병원에서 검진 결과 설명을 듣고 나오면서 아버지는 혼잣말로 말했다. "이제 나 시한부인거네.." 함께 병원 문을 걸어 나오다가 그 말을 들은 나는 아버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 우리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누가 안대요?!! 내가 무슨일이 생겨서 아빠보다 먼저 갈 수도 있는거고, 세상 사람이 다 병원에서 치료법 없다고 해서 죽는것도 아닌데 왜 말로 그런 약한 소리를 한대요!!" 아버지는 기죽은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아래로 깔았다.

킨츠기 또는 킨츠쿠로이는 일본에서 유래한 도자기 수리 기법으로 깨진 도자기 조각을 밀가루 풀이나 옻칠로 이어 붙이고 깨진 선을 따라 금가루나 은가루로 장식해 아름답게 장식 및 보수, 수리하는 공예이다. 이것만 보면 간단해 보이지만 2~3시간은 기본이며 10시간 넘게 작업하는 경우도 있다. 킨츠키는 깨진 도자기를 버리지 않고 새로운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일본의 와비사비 정신을 반영한다.

킨츠기 자체는 일본에서 만들어진 도자기뿐만 아니라 중국, 한국, 베트남 등 다른 나라에서 제조된 도자기에도 구분없이 사용되었다. 어떤 물건을 오래 사용하여 못 쓰게 될지라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마모되거나 부서지는 것도 하나의 역사로 받아들이고 계속 사용한다는 점에서 철학적인 차이점을 보인다.



킨츠기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붙이기 : 깨진 도자기 조각을 밀가루 풀이나 옻칠로 이어 붙인다

메우기 : 꼼꼼하게 틈을 메우고 완전히 굳혀 이음새의 살을 만든다.

살 만들기 : 사포질로 이음새를 다듬는다.

칠하기 : 옻 접착제로 메워진 이음새에 붉은 천연 안료를 칠한다.

장식하기 : 이음새에 금가루나 은가루를 뿌려 장식한다. 이 과정을 마키에 라고 한다.

여기까지는 쉬워 보이지만 옻이나 금분의 발라짐, 이음새의 틈 등 여러 요소로 공예가의 전문성을 판단하기 때문에 공정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매우 깐깐하다

도자기에 어울리는 장식을 센스있게 고르고, 과하지 안헥 뿌려야 된다. 꼭 금,은분이 아니더라도 도자 소재에 맞는 가루를 사용해야 한다. 장식이 도자기의 아름다움을 해치면 옻칠로만 작업을 마친다.



낮 1시 30분(한국시각 2시30분), 한국 시간이면 점심시간을 훌쩍 넘겼을 시각이었다.

아버지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신호는 가지만 받지 않았다. 짧은 메시지를 남겼다.

"중국 잘 돌아왔어요. 안부 전화 한거에요"

한 시간 쯤 흘렀다. 카톡에 1 숫자는 사라지지 않았다. 다시 페이스톡을 걸었다. 여전히 받지 않는다. 잠시뒤 다시 보이스톡을 걸어봤지만 신호만 갈 뿐 받지 않았다.

덜컥 불안해졌다. 엄마에게 보이스톡을 걸었다.

"엄마! 아빠가 전화를 안받아요" 엄마는 아빠가 오전에 외출했다고 말했다. 점심 약속이 있는거 같다고 했다. 밖에서는 보이스톡이 와도 잘 들리지 않는다고 했다. 더군다나 귀가 잘 들리지 않는 아빠는 더 못들을 수 있다는 엄마의 말이었다.



저녁 7시 30분, 나는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또 받지 않았다. 다시 걸었다.

"여보세요, 지안이냐!" 아버지가 나를 반기는 목소리로 인사했다. 목소리는 명랑했지만 기운은 없었다.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왜 받지 않았냐고 물었다. 아버지는 전화가 온줄도 모르고 있었다. 전화기 너머로 텔레비전 소음이 들렸다. 아버지는 낮에 밖에 운동 나갔다가 햄버거 하나 사먹고 들어왔다고 말했다. 건강도 안좋으면서 햄버거 같은 거는 왜 먹냐고 나는 잔소리 했다. 아버지는 아이처럼 말했다. "시간도 애매하고 그다지 배도 고프지 않아서 그냥 롯데리아 햄버거 작은거로 해결했지, 뭐. 그거 먹어도 괜찮다...."

세 번째 심장 수술은 위험하다는 병원 의사 소견을 들은 뒤로 아버지는 부쩍 기운이 없어졌다.

병원에서 검진 결과 설명을 듣고 나오면서 아버지는 혼잣말로 말했다. "이제 나 시한부인거네.." 함께 병원 문을 걸어 나오다가 그 말을 들은 나는 아버지에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게 무슨 소리야! 아빠! 우리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누가 안대요?!! 내가 무슨일이 생겨서 아빠보다 먼저 갈 수도 있는거고, 세상 사람이 다 병원에서 치료법 없다고 해서 죽는것도 아닌데 왜 말로 그런 약한 소리를 한대요!!" 아버지는 기죽은 듯이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을 아래로 깔았다.



나는 아버지가 미워서 고등학교 졸업식, 대학교 졸업식, 대학원 학위수여식 모두 아버지가 참석 못하게 했었다. 졸업식장 까지 찾아온 아버지를 만나지 않았다.

어린시절 아버지의 여러차례 사업 실패는 가족 모두를 힘들게 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아버지도 잘 살아 보려고 이런 저런 시도를 했을 터이다. 생각처럼 잘되지 않았고 사람 좋아하는 성격에 사기도 당했다.

나는 아버지가 죽을 병에 걸렸다는 걸 알게 된 10년 전에야 아버지와 화해했다. 장난치기 좋아하던 아버지는 이제 장난칠 기운 조차 없어 보인다. 두 번의 심장 수술을 거치면서 체중은 빠질대로 빠져서 60kg 도 안된다. 내가 좀 더 빨리 아버지와 감정의 앙금을 털어 냈다면 이렇게 후회되진 않을 터이다. 나는 아버지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며칠 간병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하게 됐다. 부모 자식 간의 오해를 풀고, 현실을 터놓고 이야기 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나도 잘 살아 보려고 발버둥쳤었다..." 아버지는 사실 더 없는 딸바보였건만, 나는 나이 사십을 훌쩍 넘기고서야 인정했다. 아버지는 본인 건강이 큰 문제인데도 해외에 나와 살고 있는 나를 걱정한다. 한국에 자주 들어가지 못하지만 전화라도 자주해서 아버지를 웃게해야 겠다.



깨진 그릇을 다시 붙이는건 불가능 하다고 알고 있었다. 유튜브 쇼츠를 보는데 "킨츠기"에 대한 영상이었다. 깨진 그릇을 아름다운 그릇으로 재탄생하는 일본의 도자 기술이었다. 깨진 그릇을 다른 아름다움으로 승화시키는 킨츠기 기법.

나는 한 때 아버지를 미워했다. 부녀지간은 깨진 관계였다. 나는 자식 사랑이 지극한 아빠를 알아주지 않았다. 아버지가 아프면서 나는 부모님의 그늘이 크다는 걸 느끼게 됐다. 아버지의 첫 번째 심장 수술이 있을 때, 급히 한국으로 귀국해서 병원 중환자실로 향했다. 눈빛은 이미 몽롱한 상태의 아버지에게 나는 말했다. "아빠! 저 왔어요! 아빠 강한 사람이자나! 아빠 살 수 있어..." 눈물을 흘리지 않겠다고 다짐했건만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다. 아버지는 내 손을 꼭 쥐었다. 나는 알 수 있었다. 우리 아버지 사시겠구나!

아버지는 어느새 심장 수술 한지 7년 반 정도 지났다. 그간 두 번의 심장 수술과 항생 치료를 반복하면서 병원 입퇴원을 반복했다. 다시 건강 상태가 나빠졌다. 더 이상의 외과 수술은 어렵다는 병원측 의견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버지에게 자주 전화해서 통화하고 아버지 면역력이 떨어지지 않도록 살피는 일이다. 그리고 한가지 기도...

날카로운 깨진 단면을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사포질한다.


그릇이 깨져버렸다해서 버릴 것이 아니라, 다시 새로운 그릇으로 살려내는 일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가공 과정을 거쳐 이전과는 다른 모습의 아름다움을 전활 수 있다. 나와 아버지의 관계도 깨지고 부서진 관계가 아니라 복원된 모습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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