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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마음을 닦다.

보호와 참여 사이, 나를 지키는 방식에 대하여

"신발을 빨면 내 손도 깨끗해진다."

수업 중 이은대 대표님의 말을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짧은 문장이었지만 묘하게 마음을 울렸다. 마음 깊은 곳을 건드리는 듯 했다. 순간 채팅창에 이렇게 쓰려다 멈췄다.

'맞는 말이네... 그런데 나는 고무장갑 끼고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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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신발을 빨거나 설겆이를 할 때 늘 고무장갑을 낀다. 손이 상하지 않게 보호하기 위해서다. 물과 세제에 오래 손이 닿으면 피부가 거칠어지고 튼다. 장갑을 끼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내 손을 아끼는 습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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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시간에 들은 한 줄 문장에 생각이 퍼져나갔다.

'고무장갑을 낀 손이 물에 닿지 않는데, 손이 깨끗해진다고 할 수 있을까?' 질문을 노트에 적었다.

고무장갑을 낀 손은 물의 온도를 피부가 직접 느끼듯이 감지하지 못한다. 거품의 질감도, 닦이는 감촉도 전해지지 않는다. 그저 고무의 두께를 사이에 두고 신발을 '닦고 있다', '그릇을 닦고 있다.'고 표현할 뿐이다. 닦고는 있지만 닦는 느낌은 없다. 깨끗해지고는 있지만 과정의 생생함은 사라진다. 손끝의 감각이 차단되는 느낌은 '내 손은 깨끗해지지 않은 깨끗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직접 더러움을 느끼지 못한 채 깨끗함을 얻는다는 건, 마음이 닿지 않은 친절이나 정성이 빠진 노력과도 비슷하게 생각됐다.



생각은 좀 더 깊어졌다. 나는 관계에서도 종종 고무장갑을 낀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흔들리지 않기 위해, 조심이라는 이름의 장갑을 낀 채 사람들을 대한다. 무심한 척, 괜찮은 척, 단단한 척하면서 감정을 감싸곤 한다. 그렇게 하면 덜 다칠 수 있지만, 동시에 덜 느끼게 된다. 내 마음의 고무장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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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각자의 장갑을 끼고 산다. 어릴 때는 맨손으로 세상을 만졌다. 차가운 물, 거친 흙, 따뜻한 손의 감촉을 그대로 느꼈다. 하지만 그러한 순수한 태도는 손을 아프게 한다. 우리는 조금씩 장갑을 끼게 된다. 조심, 예의, 거리두기, 체면 같은 이름으로 손을 덜 상하게 하려 노력한다. 그런 노력이 세상과의 거리두리이다. 어쩌면 어른이 된다는 의미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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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는 또 하나의 습관이 있다. 장갑을 끼기 전에 손을 씻고 말린 후 장갑을 낀다. 장갑 안에 물기가 남아 있으면 습진이 생기기 때문이다. 장갑을 벗은 뒤에도 비누로 손을 씻고 깨끗이 말린다. 고무 장갑을 다 쓴 뒤 고무 장갑 안에 물을 넣어서 빨아주고 뒤집어서 물기를 완전하게 마린 뒤 다시 뒤집어 놓는다. 어릴 때부터 몸에 밴 습관이다. 이런 나의 습관을 되돌아 봤다.

'나는 장갑을 벗은 뒤에도 장갑 속까지 빨아서 말리고 손을 씻는 사람이다.'

위생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마음을 정화하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장갑을 끼고 있다고 해서 손이 완전히 깨끗한 건 아니다. 장갑 속에는 땀이 차서 습기가 돌기 마련이다. 손은 물에 닿지 않았지만 갇혀있었기 때문이다. 장갑을 벗고 손을 씻을 때마다 '이제야 자유로워졌다'는 해방감이 든다.

삶도 마찬가지다. 감정을 보호하기 위해 두르는 장갑은 잠시 나를 지켜주지만, 오래 두르면 숨이 막힌다. 사람에게 다가가지 않으려 하고, 감정을 숨기며 '내 마음을 지키는 방식'이라 합리화할 때가 있다. 마음이 무감해지게 된다. 깨끗하지만 차가운 사람이 되어간다.



7년 전, 회사 동료가 나에게 건넨 말이다.

"요즘 표정이 없어진거 같아..."

본래 리액션이 좋다는 피드백을 받았던터였다. 마음에 고무장갑을 끼고 벗지 않던 시기였다. 나는 손을 지키려다 마음을 닫았다. 고무장갑 속에서 생긴 나의 땀 분비물이 고여 쾌쾌한 냄새가 나듯...고무장갑 속으로 숨어서 나를 보호한다고 생각했지만 동시에 내 안의 부정적인 감정으로 내 손은 망가져가고 있었다. 고무장갑을 벗지 않는 닫힌 태도가 세상을 느끼지 못하게 만든다는걸 알았다.



그렇다고 맨손으로 살 수는 없다. 인생은 세제와 같아서, 매번 맨손으로 만지기엔 자극이 강하다. 강한 자극에 견디려면 장갑이 필요하다. 장갑이 감각을 가두지 않도록 할 일을 마치면 장갑을 벗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벗은 장갑도 빨아야 한다. 고무장갑을 빨다보면 자연스럽게 갇혀 있던 손도 씻게 된다. 장갑을 벗은 뒤 손을 씻고 말리듯 마음을 정리하게 된다. 나를 지키는 또 다른 방식이다.



고무장갑을 낀다는 건 회피가 아니다. 지속을 위한 자세다. 손을 보호해야 내일도 신발을 빨 수 있고, 마음을 지켜야 내일도 사람을 믿을 수 있다. 문제는 장갑이 아니라, 장갑을 낀 나의 태도에 있다. 내가 왜 장갑을 끼는지, 언제 벗을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 성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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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안다. 깨끗해진다는 건 물과 세제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의 문제라는 걸. 신발을 빨면 손이 깨끗해지는게 아니라, 정성을 들이는 마음이 깨끗해지는 행위다. 고무장갑을 끼고 있더라도 정성껏 닦고 있다면, 그 역시도 마음의 세정이다. 손이 아니라 마음이 닦이는 것이다.



때로는 눈에 보이지 않는 감정의 먼지를 닦아내야 한다. 닦는 과정에서 마음이 시리고 손이 아플 수도 있다. 고무장갑을 쓰고 고무장갑 안까지 닦는 일을 피하지 않는 사람만이 다시 깨끗한 마음으로 세상을 만질 수 있다.



오늘도 나는 싱크대 앞에 서서 고무 장갑을 낀다. 주방을 정리 한 뒤 고무장갑 속까지 빨아 뒤집어 말린 뒤 내 손도 말린다. 젖은 마음도 함께 말린다. 보호와 참여 사이에서 나는 나름의 균형을 찾아간다. 어쩌면 인생이란 다치지 않으면서 느끼는 법, 지키면서도 사랑하는 버을 배우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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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무장갑을 낀 손으로 신발을 빨며 깨닫는다. 세상에는 더러운 것도, 깨끗한 것도 없다. 그저 닦으려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닦으려는 마음이야말로 나 자신을 가장 깨끗하는 만드는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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