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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Mar 09. 2023

"편집자에게는 진행력이 중요해요"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_1부

A topping of your life, like a cherry on top!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는 태리워커(Tarry Worker)들의 마지막 한끗을 완전하게 해주는 토핑 같은 볼캡을 만듭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영감과 동력을 얻을 수 있는 라이프 리프레시먼트 스테이션(Life Refreshment Station) 태리타운(Tarrytown)의 디렉터 오스틴이 다양한 분야의 태리워커를 만나 없으면 왠지 모르게 허전한, 얹었을 때 비로소 나를 완전하게 해주는 토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이연실 이야기장수 대표

전장을 진두지휘하는 장수(將帥)처럼 책 만드는 과정을 총괄하는 북 디렉터. 할머니 될 때까지 눈사람 만들듯 손수 일을 굴려가고 싶다는 장수(長壽) 편집자.


연차: 16년차
학력: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경력: 문학동네 편집팀장 > 문학동네 임프린트 이야기장수 대표
MBTI: ENTP
SNS: @promunhak


오스틴: 자기소개 한번 깔끔하게 해주세요(웃음).


이연실: 저는 출판사 이야기장수의 대표로 있고요. 이야기장수는 문학동네의 임프린트예요. 임프린트가 낯선 분들한테는 이렇게 설명하면 바로 이해하시더라고요. 하이브에 어도어가 있는 것처럼 문학동네에 이야기장수가 있는 거죠(웃음). 저는 이야기장수의 편집자이고, 편집자를 북 디렉터라고 표현하는데요. 고개 숙이고 교정, 교열만 보는 사람이 아니라 책 만드는 모든 과정을 총괄하고 감독하는 사람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오스틴: 첫 책부터 편집을 총괄할 순 없을 것 같아요. 경험이 없으니까. 편집자는 일을 어떻게 시작하나요?


이연실: 흔히 책임편집이라고 부르는데, 그걸 하기까지 3년 정도가 걸려요. 보조편집을 하면서 선배들이 일을 어떻게 장악해 가는지 배우죠. 그래서 출판사 들어와 3년을 어떻게 견디느냐가 되게 중요해요. 그 후에는 자율권을 갖고 편집을 감독할 수 있는 권한이 많아지죠.


오스틴: 장악이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작가와의 커뮤니케이션을 주도해야 한다는 의미인가요?


이연실: 그것도 맞지만 책 만드는 과정 전반적으로요. 편집자가 재밌는 게 혼자서 하는 일은 아무것도 없어요. 원고는 작가한테 나오고 디자인은 디자이너가 하고 마케팅은 마케터가 하죠.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다리가 되는 사람이다 보니 편집자는 책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고, 각 단계에서 뭘 조율해 줘야 할지 파악하는 게 중요해요.

그래서 저는 후배 편집자를 뽑을 때 뭐가 제일 중요한지 물으면 ‘진행력’이라고 해요. 일을 장악하고 굴려갈 수 있는 능력이죠. 교정, 교열이 서툴다면 그건 선배들이 같이 봐줄 수 있어요. 근데 진행력이 없으면 누가 시키기 전까지 가만히 있잖아요. 작가가 원고 줄 때까지 가만히 있으면 책은 절대 안 나오고요.


오스틴: 진행력이라는 표현이 익숙하면서도 낯선데요. 사실 편집자라고 하면 교정, 교열을 하거나 작가의 스트레스를 받아내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연실: 저도 그런 줄 알고 들어갔다가 냅다 반성했죠(웃음).

오스틴: 문학동네 편집자로서 유명한 작품을 많이 내셨는데?


이연실: 김훈 작가님의 <라면을 끓이며>라는 작품이 있고요. 가장 기뻤던 건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의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예요. 2015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는데, 그전에 아주 싼 값에 계약을 했거든요(웃음). 그리고 김이나 작가님, 하정우 작가님, 김보통 작가님, 이슬아 작가님… 이분들이 다 제 훈장이죠.


오스틴: 편집자에 따라 책이 달라지니까 작가들한테 선택당하는 일도 있지 않나요?


이연실: 그럼요. 예전에도 편집자의 일은 비슷했던 것 같은데, 작가들이 편집자를 책 나오는 중간 단계의 사람으로 여기는 경향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근데 요새는 젊은 작가들이 어떤 편집자와 같이 해서 이런 책이 나왔다고 호명을 많이 해주니까 편집자의 일에 대해 호기심을 갖는 분들이 많아졌어요.


오스틴: 저도 잘 몰랐는데, 책을 내면서야 편집자가 가르마를 잘 타줘야 일이 된다는 걸 경험했어요.


이연실: 작가가 아무리 원고를 잘 써도 편집자가 책의 물성을 잘 못 만들고 세상에 내보내는 과정을 제대로 못하면 아까운 원고가 되기도 해요.

오스틴: 문학동네라는 따뜻한 울타리를 벗어나 독립을 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나요?


이연실: 고민이 많았죠. 동기니까 잘 알겠지만 저 대학 때 소설 쓴다고 내내 고개 숙이고 다니던 애였잖아요(웃음). 출판사에서 딱 1년만 일하고 그 연봉으로 다시 소설을 쓰려던 생각이었는데, 편집자가 너무 재밌는 거예요. 그래서 쭉 하게 됐어요.

계속 이 일을 하고 싶은데 업계에서는 편집자의 정년을 45세 정도로 봐요. 물론 더 할 수도 있지만 대형 출판사에선 그 정도 나이가 되면 편집자들의 관리자가 되거나 임원이 돼요. 아니면 1인 출판사로 독립을 해야 하는데 그 무엇도 저한테는 맞지 않았어요.

계속 실무를 하고 싶고, 그래서 할머니 편집자가 되고 싶은데, 임원은 너무 재미없을 것 같고 1인 출판사로 독립하기에는 두렵기도 하고 답답할 것 같았어요. 만약에 내가 돈이 없어서 내 작가의 책 광고를 못하면 가슴이 터질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문학동네의 임프린트 제도를 활용하게 된 거죠. 편집자한테 전권을 주고 회사를 차려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고 키워보라는 기회잖아요.


오스틴: 하고 싶다고 회사에서 다 시켜주진 않을 것 같은데?


이연실: 맞아요. 제안서가 어마어마하게 들어오거든요. 준비 기간을 좀 갖고 하라는 이야기도 있었죠. 제가 문학동네 임프린트 대표 중에 최연소일 거예요. 좀 이른가 하는 생각도 들었죠. 그런데 가장 힘이 있을 때, 30대에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마흔 되기 직전에 결단을 내렸어요. 마음먹었을 때 달려들어야 할 것 같고 유예기간을 갖고 싶지 않았거든요.

오스틴: 이야기장수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거예요? 요즘 브랜드들은 영어를 많이 쓰잖아요. 아니면 그럴듯한 느낌을 주는 이름을 내세우는 편인데, 이야기장수는 뭐랄까 되게 레트로해요.


이연실: 일단 한글로 짓고 싶었어요. 물론 세계적인 출판사를 만들고 싶지만(웃음). 제가 문학동네에 오래 있었는데, 문학동네라는 이름이 되게 좋았어요. 그래서 정직한 한글이었으면 좋겠고 쉽게 불렸으면 하는 마음이었어요. 직관적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오스틴: 내부 반응은 어땠나요?


이연실: 반대가 어마어마했어요. 출판사 이름이라기엔 토속적이잖아요. 특히나 제가 같이 작업한 작가들 중에는 MZ세대, 트렌디한 분들이 많잖아요. 문학동네 대표님이 온갖 힙한 작가들 다 모아놓고 이야기장수가 웬말이냐 하셨죠(웃음).

다른 이름도 물론 생각해 봤지만 이야기장수가 저를 힘나게 하고 신나게 하더라고요. 마지막으로 문학동네 창립자이신 사장님께 여쭤봤는데, 네가 하고 싶은 거 하라고 하시더라고요. 문학동네도 처음에 반대가 많았대요. 동네 문학 할 거냐, 어린이 책 만드냐, 그런 얘기들을 들었던 거죠.


오스틴: 창작과 비평, 문학과 지성사 같은 지성미 넘치는 이름들을 짓던 시대니까요.


이연실: 맞아요. 근데 사장님도 그냥 문학동네라는 이름이 좋더라고, 그리고 결국은 그 이름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의 문제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난 좀 더 재밌는 이야기를 잘 파는 사람으로 포지셔닝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근데 사람들이 재미있어하더라고요.


오스틴: 아무리 내가 원하는 이름이라고 해도 사람들이 반대를 하면 이걸 회사나 브랜드의 이름으로 정하기가 쉽지 않은데, 그렇게 밀어붙이다니 엄청난 용기인 것 같아요.


이연실: 사실 꿈도 꿨어요. 작가님들도 엄청 반대를 했거든요. 어느 출판사에서 나왔냐고 물었을 때 이야기장수라고 하기가 좀 그런 거죠(웃음). 근데 또 그러시더라고요. 마음에 걸려서 계속 생각이 나더라고, 그 중독성만은 정말 압도적이라고요. 그럼 됐다, 내가 그 이미지를 잘 만들 수 있겠다 싶었어요.

오스틴: 이야기장수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을 때는 ‘장사하는 사람’ 말고 ‘장군’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어요.


이연실: 사실 다 담겨 있어요. 오래 사는 장수(長壽)의 의미도 좋고, 파는 사람이라는 뜻도 당연히 좋았죠. 또 손 수(手) 자가 들어가는 것도 좋았어요. 장수라는 단어가 되게 멋있다고 생각했어요.


오스틴: 저는 사실 초반에 이야기장수로 할 거란 얘길 들었을 때 이러다 말겠지 했어요, 솔직히. 중간에 바뀔 줄 알았죠(웃음).


이연실: 또 누군가가 막아낼 것이다(웃음)?


오스틴: 어느 날 페이스북을 봤더니 이야기장수로 공개를 하셨더라고요? ‘아뿔싸, 저질렀구나’ 했죠(웃음). 그런데 그걸 보고 재밌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연실: 어떤 거였죠?


오스틴: 뭘 해도 상관없다? 사실 실패한다면 어차피 사람들이 모를 테니 다시 트렌드에 맞는 이름을 정하면 되는 것이고, 이 이름으로 성공한다? 그럼 신화가 되는 거죠.


이연실: 너무 좋은 말이다(웃음).


오스틴: 저도 그 생각으로 태리타운을 지었거든요(웃음). 사실 이름 고민이 너무 많아서 도메인만 몇 개를 사뒀는지 몰라요(웃음). 그런데 결국 제가 가장 담고 싶었던 이야기가 반영된 이름으로 결정하게 되더라고요. 그게 조금은 개인적인 이야기여서 걱정도 했지만.


이연실: 그게 맞나 봐요. 일단 자기가 좋아야 되는 것 같아요.

오스틴: 이야기장수라는 이름을 택한 배경에는 어떤 책을 만들지도 포함돼 있을 것 같은데, 어떤 작가를 찾고 있죠?


이연실: 이야기장수는 대중적인 책을 쓸 준비가 되어 있고, 그렇게 할 수 있는 작가의 책을 만들어요. 아무리 글을 잘 써도 고등학생이 못 읽을 정도의 책은 안 내고요. 독자들을 폭넓게 만날 수 있는 작가님의 책을 만들죠.

저는 에세이 편집자로서 가장 성공했지만, 이야기장수가 첫해에 가장 성공한 건 소설이거든요. 이슬아 작가님의 <가녀장의 시대>요. 이야기장수는 장르에 관계없이 대중들과 만날 수 있는 작가들, 그리고 그걸 두려워하지 않는 작가들의 책을 만들어요.


오스틴: 대중적이라는 건 허들이 낮아야 한다는 건데, 이야기장수는 이름부터 허들이 낮아요(웃음).


이연실: 맞아요(웃음). 저는 책도 문장도 그런 걸 좋아해요. 잘 읽히고 꼬여 있지 않은 것들요.


오스틴: 그게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어설프게 아는 사람들이 있어 보이고 싶어서 어렵게 쓰잖아요. 저 같은 애들. 그런데 쉽게 잘 쓰는 사람들은 이미 경지에 오른 사람들이죠. 이렇게 보면 이야기장수는 경지에 오른 사람들만 갈 수 있는 거네요?


이연실: 그렇습니다. 고수, 준비된 고수들이요(웃음).

오스틴: 책을 만드는 사람은 무인도에 갈 때 들고 갈 한 권의 책으로 뭘 고를지 궁금해요. 본인 책을 가져갈 건가요?


이연실: 제가 만든 책은 이미 제가 여러 번을 읽어 봤으니 안 가져갈 것 같아요.


오스틴: 그렇다면 어떤 책을?


이연실: 지금 명백히 가져가고 싶은 책이 한 권 떠올랐어요.


오스틴: ?

이연실: 국어사전요!


오스틴: 요즘은 다 검색해서 보지 않나요?


이연실: 물론 그렇지만 국어사전이 편집자가 가장 많이 보는 텍스트일 거예요. 국립국어원에서 발행한 <표준국어대사전>을 보면 끊임없이 놀라요. 이게 한 단어라고? 이게 붙어 있다고? 이러면서요.

또 사람의 말에 대해 항상 놀라게 되는데, 무인도에 있다면 탈출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아야 하잖아요. 사람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국어사전을 가져갈 것 같아요.

오스틴: 일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뭔가요?


이연실: ‘보고’예요. 지금은 상사가 없지만 그럼에도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보고를 해요. 책을 만들 땐 눈사람 만들듯이 일을 굴려가야 하는데, 뭔가 막혀 있다고 혼자 꿍치고 있으면 망하거든요. 문제를 계속 풀어헤쳐가면서 계속해서 굴려가야 해요.

작가가 뭔가 항의를 해왔다거나 디자이너랑 트러블이 생겼을 때 가만히 혼자 갖고 있는 후배 편집자들이 있어요. 그럼 절대 책이 안 나와요. 주변에 자꾸 나누면서 같이 해결해 나가야 하는데, 그러려면 공유와 소통이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완벽하게 혼자 일하는 프리랜서가 아닌 이상 어느 업종이나 이게 기본 아닐까요?


오스틴: 격하게 공감합니다. 그러면 기왕 일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얘기가 나왔으니 제가 궁금한 게 생겼어요. 만약에 사적으로 중요한 일이 업무와 겹쳤을 때 어떤 걸 우선시하나요?


이연실: 저는 과거나 현재나 늘 업무죠.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떠나갔어요(웃음). 경조사도 잘 챙기지 못하는데, 이런 걸 이해해 줄 수 있는 폭넓은 사람들이 친구로 남아있죠. 관계는 나중에 회복할 수 있지만 일은 이 순간 잘못되면 어떻게 할 수가 없어요.


오스틴: 100% 동의해요. 일은 이렇게 하는 거지!

오스틴: 모든 일이 그렇지만 책도 협업과 케미 같은 것들이 중요한 것 같은데 ‘익숙한 사람들과의 안정적인 협업’과 ‘낯설지만 새로운 영감을 주는 사람들과의 협업’ 중 하나를 고른다면?


이연실: 작가들과 일하는 과정에선 둘 다 좋아요. 근데 사내 마케터나 디자이너들과의 협업에는 전자를 택해요. 브랜드를 만드는 과정을 밖에서도 할 수 있고 문학동네 안에서도 할 수 있는데, 저는 결국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좋더라고요. 그들과 계속 일하는 게 저한테 굉장한 메리트예요. 저는 좀 안정적인 동료를 원하는 것 같아요.


오스틴: 임프린트를 선택한 것도 같은 맥락이네요. 안정적인 도전이 가능하게 하는 제도잖아요. 그럼 ‘나 빼고 다 천재인 팀에서 일하는 것’과 ‘내가 유일한 천재인 팀에서 일하는 것’ 중에 선택한다면?


이연실: 이것은 선택하지 않겠습니다(웃음). 일할 때 나만 천재 같거나 나만 바보 같다면 둘 다 잘못된 거라고 생각해요. 언제나 주변에는 천재와 바보가 공존하고, 그 동료들을 이끌어가면서 혹은 그들에게 도움받으면서 가는 것이지 그 누구도 혼자 천재거나 바보일 순 없는 것 같아요.


오스틴: 잘 피해 가시네요(웃음).


이연실: 휴우(웃음).

오스틴: 자기만의 브랜드를 만들었다는 건 사람들의 소비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기도 해요. 그래서 지금부터는 돈 쓴 일에 대한 질문을 좀 해볼까 합니다. 돈 쓰고 후회했던 경험이 있나요?

(2부에서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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