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우 스튜디오 오프비트 대표
A topping of your life, like a cherry on top! 스스로의 한계를 극복하고 자신만의 속도로 삶을 살아가는 태리워커(Tarry Worker)들의 마지막 한끗을 완전하게 해주는 토핑 같은 볼캡을 만듭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영감과 동력을 얻을 수 있는 라이프 리프레시먼트 스테이션(Life Refreshment Station) 태리타운의 디렉터 오스틴이 다양한 분야의 태리워커를 만나 없으면 왠지 모르게 허전한, 얹었을 때 비로소 나를 완전하게 해주는 토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눕니다.
최근우 사진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예기치 않은, 특별한 순간들을 기록하는 사진가. 정박으로 흘러가는 인생 사이사이 불쑥 끼어든 엇박의 순간들을 이야기하는 비주얼 스토리텔러.
연차: 10년
학력: 대졸 (사회학, 신문방송학, 비주얼스토리텔링)
경력: 스튜디오 오프비트 대표
MBTI: ENFJ (E와 I의 사이)
e-mail: studio@offbeat.kr
SNS: 최근우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chalkak___
최근우 페이스북 www.facebook.com/gnugdo.choi
스튜디오 오프비트 인스타그램 www.instagram.com/studio__offbeat
스튜디오 오프비트 유튜브 www.youtube.com/studio__offbeat
헬로오스틴의 크루로서 늘 카메라 뒤에서 인터뷰를 기록하던 그를 오늘은 카메라 앞으로 불러 앉혔다. 자기소개만으로 한 시간을 거뜬히 쓸 수 있는 그란 걸 너무 잘 알기에 여차하면 끊을 생각으로 자기소개를 청했다.
최근우: 저는 사진을 하는 사람이지만 비주얼 스토리텔러라는 말을 쓰고 있어요. 이미지가 존재하려면 어떤 서사가 전제돼야 하는데, 그걸 잘 이해하고 담아낼 수 있어야 사진을 제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제 작업은 서사를 읽는 것이라고 할 수 있죠. 사람들이 그 서사를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단서를 담아내는 거죠. 이를 위해 단순히 셔터만 누르는 게 아니라 클라이언트와 논의도 많이 하면서 당위성과 맥락을 찾는 것을 즐기는 편이에요.
오스틴: 기획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작가이자 포토그래퍼라고 보면 될까요?
일단 재빨리 끊어본다.
최근우: 정확합니다. 잘 찍은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항상 그 안에 좋은 기획이 전제돼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기획을 클라이언트가 완벽히 가지고 오는 경우도 있지만, 어떻게 찍으면 좋을지에 대한 공백이 있을 때 거기 개입하는 걸 좋아하죠. 그런 걸 잘하고 싶고요. 물론 포토그래퍼의 입장에서 기획에 관여하는 건 사실 더 오래 걸리기도 하고 피곤할 수도 있지만, “이렇게 찍어주세요.”와 “어떻게 찍으면 좋을까요?”는 전혀 다르잖아요. 저는 후자를 만났을 때 너무 즐거워요.
역시나 쉬이 끊기지 않는다. 그러나 사실 이게 바로 그의 매력이자 진정성. 그저 단순히 말만 길거나 휘황찬란한 사람이라면 이 인터뷰에 앉히지도 않았다. 이제 그의 말잔치가 시작된다!
오스틴: 지금 인터뷰하고 있는 공간, 스튜디오 오프비트(STUDIO OFF-BEAT)는 어떤 곳인가요?
최근우: 오프비트(off-beat)는 ‘엇박자’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요. 이 스튜디오는 삶에서 일어나는 ‘예기치 않은(not expected)’, ‘특별한(unconventional)’ 엇박들을 잘 기록하고 싶다는 정신을 담은 공간이에요.
예사롭지 않은 기운이 느껴지는가? 그는 공간의 이름부터 자신의 작업까지 모든 것이 하나의 고리로 연결된, 그 어떤 브랜드 기획자보다 촘촘하고 정밀한 워커이다.
최근우: 엇박자라는 건 자칫 부정적인 뉘앙스를 주기도 하지만 특별함에 더 가깝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삶은 항상 정박대로 흘러가는 것 같지만, 넓게 펼쳐놓고 보면 수많은 엇박의 연속이거든요. 그때마다 어떤 결정을 하고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삶이 무궁무진하게 바뀌는 것 같아요. 저는 사진을 찍는 것은 어떤 브랜드나 누군가의 삶의 일부를 기록하는 행위라고 생각하는데요. 그 과정에서 엇박의 순간들을 담은 사진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요. 예기치 않은 특별한 결정으로 새로운 일을 시작한다거나 변화를 추구할 때처럼요. 또 길을 걷다 강한 이끌림에 의해 담게 된 풍경들, 3월에 내린 폭설 같은 걸 찍었을 때요. 그래서 사진은 어쩌면 이 오프비트라는 개념을 가장 즉각적으로 담을 수 있는 유일한 매체인 것 같아요.
오스틴: 글이나 그림으로도 엇박의 순간을 기록할 수 있지 않나요?
최근우: 그건 경험이 끝난 후 머릿속에서 정제되어 나온 결과물이잖아요. 근데 사진은 경험의 순간을 찍는 것이기 때문에 흔들린 상 그 자체가 엇박을 완벽하게 대변할 수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사진은 삶에서 일어나는 여러 정박들을 기록하지만 엇박을 가장 온전하게 담아낼 수 있는 매체 같고요.
그의 언어 속에는 운율이 있다. 그가 만약 사진이 아닌 랩을 선택했다면 펀치라인 킹은 그의 차지였을 것이다. 특히 언어유희를 통한 사물을 비틀어 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최근우: 평소에 질문하는 걸 좋아하는데, 질문을 하려면 비틀 수밖에 없거든요. 우리 사회는 체면을 중시해서 사람들이 모였을 때 각자가 갖고 있는 개성을 발현하기 어렵잖아요. “왜 꼭 그래야 하지?”, “이렇게 해도 되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사람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도 머릿속에 있는 좀 더 창의적인 생각들을 꺼낼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중국에서 초등학교랑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모든 수업에 브레인스토밍이 있었어요. 하나의 주제에 대해 떠오르는 생각들을 과감하게 던져놓고 압축시켜서 교집합을 만들어가는 과정이 되게 좋았거든요. 그렇다고 해서 대단한 반항심이나 에고, 정신이 발현된 것이라기보단 나름의 위트였어요. 비틀어진 시선이나 시야를 가지면 세상이 좀 더 즐거워 보일 수 있잖아요.
믹스앤매치를 통한 위트, 역시 태리타운의 조력자이자 크루로서 이런 멤버를 또 어디서 구할 수 있을까?!
대화가 너무 거룩해지는 것 같아 인터뷰를 세속적으로 끌어내리기로 했다.
오스틴: 위트는 여유에서 나오는 건데, 지금 작가님은 여유로운 상태인가요? 돈이요, 돈.
최근우: 저는 상당히 여유가 없는 사람이에요. 가장 여유로웠을 때는 자아가 없던 초등학생 때와 자아가 폭발하던 대학생 때였죠. 대학교 다닐 때 에고가 얼마나 강했냐면 <원피스>에서 루피가 “나는 해적왕이 될 사람이다.”라고 하잖아요? 그것처럼 “나는 사진왕이 될 사람이다.”라고 싸이월드 대문에 써놓고 그랬어요.
순간 부끄러웠지만 티를 내진 않았다. (그러나 티가 났을 수 있다.)
최근우: 어린 마음에 그랬겠지만 진심이었거든요. 내가 하고 싶은 사진을 가장 자유롭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었어요. 대학생 때 저를 카메라 들고 다니는 사람으로 모두가 알아봐주기 시작했어요. 학교에서 뭔가 찍으러 가면 다들 환영해주고 제가 찍은 사진들이 누군가한테 선물이 되기도 했죠. 그런데 반대로 자유롭고 자연스러웠던 곳을 벗어나 사회에 나오게 되면서부턴 여유를 느껴본 적이 없어요.
오스틴: 프로의 세계에 진입했기 때문이군요.
최근우: 선택에는 책임이 따르잖아요. 제가 선택한 일에 대해 책임지기 위해 발버둥치는 단계에 있는 거죠. 물론 좀 괜찮았다거나 잘한 것 같다고 생각되는 일들도 있었지만, 여유를 느낄 만한 겨를은 없었던 것 같아요.
오스틴: 어떻게 하면 그 책임을 다할 수 있는 걸까요?
최근우: 처음 사진을 하기로 마음먹었던 모종의 이유에 가까워지는 거죠. 사진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상태요. 근데 아시다시피 모든 태리워커들이 일에서 자유로울 순 없잖아요. 먼 미래에는 여유를 찾을 수 있도록 열심히 허슬링하는 중이에요(웃음).
인터뷰를 하며 제법 라포를 형성했다 싶어 조금은 언짢을 수도 있는 이야기를 던졌다.
오스틴: 작가님이랑 대화하다 보면 관념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언어가 많아요. 잘 모르는 사람이 보면 시쳇말로 ‘컨셉질’이나 허세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거예요. 저 역시도 처음에는 그랬고요.
익숙하다는 듯 미소를 한 번 지어보이고는 마치 준비라도 한 듯 한 숨에 말을 쏟아낸다.
최근우: 키워드로 답하자면, 첫 번째는 ‘아버지’이고 두 번째는 ‘선택과 책임’이에요. 5학년 때까지 상해에 있다가 한국에 돌아왔는데 문화 충격을 받았어요. 짝꿍이 수학 시험에서 85점을 맞고 눈물을 흘리는 거예요. 삶은 이런 걸 수도 있겠구나, 다들 이렇게 열심히 사는구나 싶었어요.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다시 중국에 가게 됐어요. 갑자기 오프비트였죠. 이번엔 아버지랑 둘이 가게 됐는데, 가자마자 아버지가 선언을 하셨어요. “지금부터 네 삶은 너의 것이니 모든 결정은 스스로 해야 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도 너에게 있다.” 처음에는 어안이 벙벙했지만 주변을 둘러보니 이해가 됐어요. 그때 갔던 대련이라는 도시는 한국이랑 워낙 가까워서 소위 도피 유학생이 많았어요. 태생이 나쁘다기보단 부모님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해서 탈선한 친구들이었죠. 그때 아버지가 제게 선택과 책임을 강조하신 건 저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느꼈어요. 그러니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삶에 대한 결정을 해왔던 것 같아요.
오스틴: 재밌네요. 같은 상황에서 모두가 그런 생각을 하진 않거든요.
최근우: 제가 성인이 되고 나서 누나한테 이 얘기를 했더니 아버지가 바빠서 케어를 못해주니까 알아서 잘하라고 한 거라고, 그건 방임이었다고 하더라고요.
오스틴: 저도 방임에 한 표. 저희 어머니도 그러셨거든요. 환갑이 지나셔서 고백하시더라고요.
최근우: 선택에 대한 억압이 배제돼 있었다는 게 핵심이에요. 스스로 결정하라고 해놓고 이건 안 되고 저건 된다 그러면 책임 의식을 온전하기 갖기 힘들거든요. 근데 저희 아버지는 지금까지 제가 어떤 결정을 하더라도 반대하신 적이 없어요. 사진 일을 하면서 책임을 다하려는 간절함이 생긴 것도 주변 사람들이 반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에요.
오스틴: 반대까진 아니더라도 걱정은 없으셨나요?
최근우: 걱정도 직접적이 아니라 은유적이었어요. 예체능을 하면 극소수만 살아남을 수 있다거나 공부를 제법 잘했는데 왜 어려운 일을 가려고 하느냐는 정도였죠. 그러나 이내 “너는 살면서 계속 카메라를 잡고 있겠구나”라고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어요. 그때 저도 사진을 하겠다고 선언한 이상 잘하는 모습을 계속 보여드리면서 걱정을 끼치지 않아야겠다고 생각했죠. 제 행동의 원동력은 간절함이고, 그 간절함은 주변의 소중한 사람들이 나로 인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게 시발점이었어요.
오스틴: 결국 책임감으로 귀결이 되네요. 잘 되는 사람은 이유가 있는데, 책임감인 것 같거든요. 책임감은 사람을 나태하지 않게 만들고 뭔가를 이뤄내게 하죠. 태리워커들을 만날 때마다 매번 느끼는 게 다들 멋대로 사는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책임감이 뛰어난 사람들이에요. 이 책임감이 어떻게 형성되는지 알면 태리워커를 풀 수 있는 열쇠가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오스틴: 싸가지 없지만 일 잘하는 사람과 착하지만 일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누구랑 같이 일하실래요?
최근우: 그 둘과 같이 일하겠어요(웃음).
오스틴: 한 명만 택해야 한다면?
최근우: 후자가 더 낫다고 생각해요. 사진은 서비스업이거든요. 기술은 제가 커버할 수 있지만 인성은 그럴 수 없어요. 저한테는 괜찮지만 클라이언트에게까지 인성이 발현되면 용납할 수 없을 것 같아요.
오스틴: 저한테 이 질문이 들어오면 뛰쳐나갈 것 같아요. 저는 둘 다 싫어요(웃음).
뼛속까지 시린 과거가 떠오르면서 몸이 저절로 부들, 떨리고 있었다.
최근우: 그래도 인성이 좋은 게 낫지 않나요?
오스틴: 인성이 좋은 사람과 그냥 만나면 즐겁지만 같이 일하면 미치죠. 저는 오히려 후자가 안 좋은 것 같아요. ‘다음엔 괜찮겠지’ 하고 기대하게 만들거든요. 근데 그 기대를 매순간 무너뜨려요. 더 잔인한 건 그래도 나쁜 사람은 아니니까 욕하는 내가 쓰레기처럼 느껴진다는 거예요(웃음).
최근우: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인성이나 실력을 떠나 잘못인 것 같아요. 잘못한 거예요. 책임 의식이 없는 걸로 귀결되니까요.
오스틴: 좋아하는 일이 있고 잘하는 일이 있다면, 둘 중에 뭘 하시겠어요?
최근우: 저는 제가 잘하지 않으면 좋아하지 않아요. 사진을 좋아하게 된 것도 나한테 가능성이 없지 않다는 걸 발견했기 때문이거든요. 취미와 특기는 다른 개념이지만 저한테는 그게 잘 분리되지 않았어요. 고등학교 때 잠깐 음악을 하고 싶었던 적이 있는데, 밴드부 보컬 오디션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어요. 대학교에 가서도 떨어졌고요. 그리고 깨달았죠. ‘나는 여기까지인가보다.’ 그때부터 노래에 대한 흥미가 급격히 사라지고 음악을 듣는 데 대한 만족도가 높아졌어요. 동시에 나는 뭘 잘할지 찾아서 거기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오스틴: 사진은 왜 좋아하게 된 거예요?
최근우: 저는 이타적일 때 즐거움을 느껴요. 내가 하는 일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때인데, 사진이 딱 그렇잖아요. 저는 사진을 일로써 서비스 제공자로서 하고 있지만, 그냥 내킬 때마다 찍어줄 수도 있거든요. 이게 너무 즐거운 거예요. 또 내가 이걸 어느 정도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 다른 것들은 눈에 별로 보이지가 않았어요. 어느 정도까지만 좋아할 수 있는 거죠. 취미와 여가 활동 정도로만 남지 내 삶의 중요한 일부가 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제가 “일할 때 사진 찍고, 놀 때 사진 찍고, 쉴 때 사진 찍는다”는 말을 자주 하거든요. 연초에 아이슬란드를 다녀왔는데, 쉬러 간 것도 있지만 찍고 싶은 사진을 원 없이 찍으러 간 것이기도 했어요. 저한테는 이 두 가지가 성립돼야 진정한 여가가 되거든요.
또 이야기가 한없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이럴 때는 얼른 꺼내와야 한다.
오스틴: 그럼 가장 찍어보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최근우: 제 결혼식을 상상해본 적이 있어요. 카메라를 들고 입장하면서 앞에서 박수 치고 호응해주는 사람들을 다 찍을 거예요. 아주 천천히. 그리고 입장이 끝나면 카메라를 동료한테 건넬 거예요. 그리고 죽기 전에 내 눈 앞에 있는 사람들을 찍고 싶다는 상상을 해본 적 있어요. 되게 소설 같은 이야기들인데 그런 엇박의 순간들을 찍고 싶어요.
오스틴: 남을 기록해준다는 건 내가 항상 빠져있다는 거잖아요? 그 공간에는 함께하지만 그 사진 속에는 내가 없으니 아쉬울 것 같아요.
최근우: 저는 제가 찍은 사진을 사람들이 소중히 할 때 그 사진이 존재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그 사진을 찍은 순간에는 제가 들어있다고 말하곤 해요. 그래서 그런 아쉬움은 별로 없어요.
오스틴: 작가님은 두 개의 페르소나가 있는 것 같아요.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로서 그리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포토그래퍼로서. 근데 후자의 만족도가 되게 높다고 느껴지거든요. 지금 둘의 비중은 어떻게 되나요?
최근우: 현재는 99 대 1로 포토그래퍼로서의 작업이 많죠. 작가로서는 수익 활동을 거의 안 해봤어요. 전시도 자발적이었고, 매거진에 사진을 연재하는 것도 제가 먼저 제안했던 거예요. 점차 밸런스를 맞춰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오스틴: 작가로서의 활동이 점점 많아지겠군요.
최근우: 지금까지는 누군가 찍고자 하는 메시지가 있을 때 그걸 이미지화하는 작업들을 주로 해왔어요. 근데 제 이야기가 아니라 누군가의 이야기를 잘 포장하는 역할을 계속하다 보면 하고 싶은 말이 엄청 생기거든요. 매개자에서 발화자로 전환하는 시점이 올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오스틴: 비주얼 스토리텔러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유이기도 하겠네요.
최근우: 그렇죠. 매개를 잘하고 싶다는 의미도 있지만 내 이야기를 잘 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뜻이니까요. 두 가지가 밸런스를 잘 맞춰야 사진으로 롱런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러려면 영향력 있는 사진가가 되어야겠죠.
오스틴: 밸런스를 맞추기 위한 준비는 어떻게 되어가나요?
최근우: 여러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 점점 구체화되고 있는데, 작년에 제주도에서 오스틴과의 대화도 큰 울림이 있었어요.
작년 여름 태리타운 가오픈을 마치고 피곤해 죽겠는데도 동이 틀 때까지 수다를 떨었었다. 그의 이야기를 한참 듣던 나는 그에게 ‘사진기를 든 오케스트라의 지휘자’ 같다고 말했던 기억이 났다.
최근우: 제가 인물들을 찍을 때마다 박자와 엇박을 수집하는 작업을 하고 있잖아요. 이 사람의 박자와 엇박이 무엇인가를 토대로 그를 이해하고 그의 이야기를 표정에 담아드리려고 하거든요. 이런 작업을 하는 페르소나를 많이 알려서 많은 사람들과 오케스트라를 형성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전시 끝나고 했던 시도 중 하나가 사람들의 박자와 엇박을 매개로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모임들이었어요. 제 예상보다 참여하신 분들의 만족도가 높더라고요. 제가 그런 대화를 나누고 누군가의 이야기를 끌어내는 걸 되게 좋아하는 걸 깨달았죠. 그래서 제 사진들의 서사나 제가 가진 재능을 나누려고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어요. 오프비트라는 개념으로 점철된 채널인데,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보느냐보다는 제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펼칠 수 있으면 된다고 생각해요.
오스틴: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게 사람들이 듣고 싶은 이야기일 때 더 힘을 받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여기에 대한 확신이 있나요?
최근우: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거나 들어야 할 때가 온 것 같다는 확신이 조금 있어요. 요즘은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들이 만연해 있는데, 긴 서사를 담은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한번 해보고 싶은 거죠. 물론 자아도취가 되면 안 되기 때문에 명분과 당위성, 실천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오프비트를 주창할 때 메트로놈의 박자를 6가지로 나눠놨는데 여기에 대한 음악을 아는 분께 부탁해서 만들었어요. 제 전시를 본 어느 음악감독께서 영감을 받아서 만든 음악을 선물로 주신 적이 있는데, 저 역시 너무 감명을 받아서 이번에 부탁을 하게 됐죠. 이렇게 조금씩 준비를 해왔어요.
오스틴: 혹시 롤모델이 있나요?
최근우: 여러 가지 형태의 롤모델들이 있어서 한 명으로 단정 짓고 싶진 않아요. 각 분야에서 사진으로 예술 치료하시는 분도 있고, 북촌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면서 로컬 사업을 하시는 분도 있어요. 저는 다른 사람들의 사진을 많이 보려고 하지 않아요. 대신 제 사진이 잘 찍은 걸로 알려지기보다 사진에 찍힌 사람에게 좋은 사진으로 기억되는 게 더 중요한 것 같거든요. 남들이 찍은 사진보다 내가 찍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더 크죠. 그래서 사실 롤모델도 사진 찍는 사람들보다 자기 삶에 진정성 있는 사람들이 더 많아요.
오스틴: 요즘 작가님을 행복하게 하는 건 뭔가요?
최근우: 엇박의 순간이 찾아와 그 순간을 포착하고 사진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폭발할 때요. 그리고 내 사진을 통해 누군가 되게 행복해할 때 제일 행복한 것 같아요.
오스틴: 반대로 좌절하게 만드는 건요?
최근우: 좌절의 순간이 그렇게 많진 않은 것 같은데, 가장 힘든 순간은 아마도 내가 찍은 사진이 별로여서 미안할 때?
오스틴: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사진은 어떤 건가요?
최근우: 예전에 기자를 준비할 때 언론사 사진부장님이 같은 질문을 하신 적이 있어요. 첫 번째는 제가 좋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두 번째는 찍힌 사람이 좋아해줘야 하고요. 사진은 필연적으로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대상으로 찍어야만 하는 매체다 보니 그 주인공이 좋아해주지 않으면 찍은 사람이 아무리 좋아하더라도 좋은 사진이 될 순 없는 것 같아요. 세 번째는 첫 번째와 두 번째의 밸런스이고, 마지막은 세상 모두가 좋아하지 않더라도 단 한 사람에게라도 울림을 줄 수 있으면 좋은 사진인 것 같아요. 이것들에 입각해서 평생 작업을 하고 싶어요. 제가 사진을 찍는 원동력이자 초심 같은 거죠.
오스틴: 작가님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토핑은 어떤 게 있을까요?
최근우: 카메라죠. 일할 때는 SONY의 A1이라는 카메라를 제일 많이 쓰고요.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건 FUJIFILM의 X100V라는 카메라인데요. 저는 이걸 항상 메고 다녀서 가방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 차 키와 에어팟이 달린 키 홀더이기도 해요.
오스틴: 사진이 찍히는 고급 키 홀더네요(웃음).
최근우: 무거운 카메라는 일상적으로 들고 다니기 어렵거든요. 대학교 다닐 땐 훨씬 더 큰 것들을 들고 다녔지만요. 약간의 허세도 있었고 내가 사진을 좋아한다는 걸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으니까(웃음).
오스틴: 지금은 그럴 이유가 없죠.
최근우: 맞아요. 그래도 카메라가 항상 곁에 있어야만 하는 사람이라 X100V을 구입했을 때 너무 행복했어요. 밖에 들고 나왔다는 생각조차 안 들게 하는 카메라이기도 하고 예쁘게 찍히니까요. 술자리든 어디든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에 가면 “단체 사진 하나 찍을까요? 건배 한번 해주시겠어요?” 그러면서 항상 이걸로 사진을 찍어요. 핸드폰으론 만족이 안 되거든요.
오스틴: 생각해보니 카메라를 들면 모두가 나를 쳐다보잖아요? 그때 작가님은 단순히 사람들이 나를 바라봐서가 아니라 그들에게 뭔가를 베푸는 게 좋은 거네요.
최근우: 제가 사진을 좋아하게 된 이유들 중 하나가 그거예요. 사진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표현 수단 중에서 호혜성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유일한 매체라는 점이요. 친구랑 좋은 시간을 보내다 사진을 찍어서 보내주면 고맙다고 말하고 끝날 수 있죠. 근데 그림을 그려준다거나 시를 한 편 써준다면 받는 사람도 뭔가 해줘야 할 것 같은 부담이 있을 수 있어요. 그런 면에서 사진은 자유로워요.
오스틴: 반대로 사진의 값어치를 낮게 평가한다는 이야기도 되지 않아요?
최근우: 그렇긴 해요. 그래서 힘든 점도 많죠. 왜냐면 사진은 지금 사양 산업처럼 보일 수 있거든요. 핸드폰이 워낙 좋게 나오고 영상이 대세이다보니 전문가가 찍는 사진이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게 되는 것도 맞아요. 근데 사진만이 할 수 있는 일들도 분명히 존재하죠. 사진이 이타성과 호혜성에서 자유롭다는 걸 깨달았을 때, 저는 이걸 평생 할 수 있겠다는 확신을 갖게 됐어요. 아이슬란드에서 열흘 남짓 동안 엄청나게 많은 사진을 찍었거든요. 카메라를 6대 정도 썼고 셀렉한 사진만 해도 수만 장이 돼요. 그중에 많은 사진들이 같이 간 일행들의 사진인데, 선물해주고 싶어서 찍은 건데 보정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이런 것들을 더 자유롭게 하고 싶으니까 내가 영향력 있는 사진가가 돼서 내 사진들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면 더 마음껏 이타적인 사진을 할 수 있겠다 싶어요.
오스틴: 카메라 말고 추상적 토핑은 어떤 게 있나요?
최근우: 위트?
참고로 그는 평소 아재개그를 즐긴다. 개그 아니고, 아재개그.
최근우: 제 위트는 피자에 얹은 파인애플 같은 거예요.
오스틴: 호불호가 극명한!
최근우: 저는 호에 더 가깝다고 봐요. 그거 때문에 저를 싫어하진 않을 거예요. 다만 분위기가 좀 싸해지거나 누군가 뭐냐고 할 순 있겠죠(웃음). 근데 제 의도는 다른 사람들을 웃기거나 튀고 싶어서가 아니라 뭐든 자유롭게 얘기해도 된다고 말하고 싶은 것에 가까워요. 그래서 뭔가를 계속 비틀어서 상상해보고 위트를 놓지 않으려는 거죠. 근데 로맨스가 섞여있어야 해요.
오스틴: 로맨스요?
최근우: ‘이거 좀 괜찮은데’ 하는 부분이 빠져 있으면 안 된다는 거죠.
오스틴: 카메라와 위트, 두 가지 토핑 중 본인을 더 완전하게 하는 건 무엇인가요?
최근우: 비중은 당연히 카메라이지만, 비주얼 스토리텔링을 더 창의적으로 하고 싶기 때문에 위트 역시 계속 시도해보는 중이에요.
오스틴: 제가 좋아하는 작품 있잖아요. 자동차 두 대. 저한테는 그게 위트였거든요.
최근우: 아이러니하게도 그건 제가 만든 위트가 아니에요. 발견했을 뿐이에요. 사진가는 관찰자이지 만드는 사람은 아닌 것 같아요. 물론 순수 예술로 사진을 하는 분들도 있지만 저는 그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거든요. 발견하기 위해선 위트를 놓지 않아야 해요. 오픈 마인드여야 위트가 보이기 시작하죠.
오스틴: 포착하는 것 또한 창조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같은 걸 봐도 못 보고 지나치는 경우가 더 많거든요. 발견이라는 단어로 본인의 작업을 제한할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오스틴: 마지막 질문입니다. 작가님의 완전도는 몇 퍼센트인가요?
최근우: 상당히 답하기 어려운데, 지금 스스로에게 불만족하는 건 아니지만 부족하다는 생각을 항상 하거든요. 제가 해야 하는 것에 절반도 못 미치는 것 같아요.
오스틴: 숫자로 표현한다면?
최근우: 33%요. 제가 33살이니까. 매년 1%씩 늘어나면 좋겠어요. 빨라지면 더 좋고요.
오스틴: 꼭 100%를 채울 때까지 건강하시길!
최근우 작가에 대한 첫인상은 ‘콘셉트가 집어삼킨 사람’이었다. 얼핏 보면 가짜 같고 진정성이 의심스러울 수 있는 유형이랄까. 그런데 그와 함께 일을 하다 보면 서서히 그에게 스며드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스며드는 것만큼 무서운 게 없다. 그의 아재개그처럼.
아마 이를 가능하게 하는 원동력은 자신이 하는 일을 누구보다 사랑하고, 확신으로 가득 차 있으며, 누구보다 성실하게 해야 할 일을 완성하기 때문일 것이다. 최근우 작가는 콘셉트가 아닌, 책임감이 집어삼킨 사람이었다. 앞으로 최근우라는 필터를 통해 인화되는 인생의 엇박들이 더 기대되는 이유기도 하다.
사진 및 장소: 사진을 연주하는 공간, STUDIO OFF-BEA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