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영면 10주기에 떠오른 기억
기일이다. 그러고보니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벌써 10년이 지났다. 아침부터 기분이 쳐지는 것은 그냥 새벽부터 내린 비 탓일 게다. 그가 남긴 것은 그렇게 많지 않기에, 그 흔한 추억조차 별로 없기에. 그러나 가장 부정할 수 없는 하나를 남겼다. 바로 이름, 평생을 시달리게 만든 나의 부담스러운 그 이름이다.
나는 원래 ‘효석’으로 태어날 예정이었다. 아버지는 아들의 이름이 탐탁치 않았다. 서른 일곱, 당시로선 얼추 늦은 나이에 본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그리고 그리 되었다) 자식의 이름을 현석, 원석, 영석, 민석, 동석, 유석, 훈석, 기석이라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털털거리며 흘러가는 듯 짓고 싶지는 않았나보다. 그렇다고 그렇게 오래 고민한 것도 아니랜다. 출생신고를 하러 가는 도중에 조수석에 놓인 영웅문*을 보고 즉흥적으로 지었단다.
게다가 엎친 데 덮친 격, 설상가상, 거익태산, 전호후랑, 병상첨병이라고 성씨는 신. 성도 이름도 하나같이 과하다. 갓(god)과 히어로(hero)를 한데 부어 놓으니 콜라 위에 뿌린 초코 시럽 마냥 혀를 오그라들게 만든다. 그나마 뉴히어로(new hero)로 불리는 게 덜 힘들게 느껴졌다. 그.나.마.
좋은 뜻을 가진 이름인데 뭐가 괴롭냐고? 만약 그대가 비아냥과 기대가 뒤섞인 채 무엇이든 잘 해야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에 평생 시달렸다면? “야, 영웅답게 행동해야지. 이런 걸로 삐져?”는 내 사춘기 시절 발작 버튼 중 하나였다.
그렇다보니 어릴 때 나의 정체성과 소속감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사촌들 사이에서 나만 미운 오리 새끼였다. 백조가 되는 결말 따윈 없다. 그저 그 많은 주석(錫)들 사이에 낀 불순물 같았다. 그게 싫어서 그들에게 영웅이 아닌 효석으로 불리길 원했고, 결국 지금도 그들은 나를 효석이라 부른다. (이로 인한 오해가 빚은 해프닝도 한 두개가 아니어서 대학동기인 사촌형은 이제 그냥 영웅으로 부르기도 한다.)
이제야 고백하는데, 나는 진짜 영웅 대신 효석으로 살고 싶었다. 그 이름이 내게 더 잘 어울리고 편안하기에. 그저 신논현역 교보문고 앞 횡단보도에 쏟아지듯 건너는 사람들 속에 묻힌 채 그렇게 길 건너는 사람이고 싶었다. 이런 상황이다보니 홍보실에서 근무할 때는 퇴근하고 집에 돌아와 벨트를 풀면 접힌 살보다 부담감이 더 빨리 흘러내렸다. 태생이 I인데, 영웅이란 이름 때문에 등 떠밀린 채 사회적 자아는 E, 그것도 슈퍼 E가 되어 있었다.
‘효석이’는 여전히 ‘영웅이’에게 눌린 채 살고 있다. 효석의 나태함과 치졸함, 또는 변태적 기질이나 세속적 욕망 같은 것들은 영웅을 만나러 온 사람들로 인해 불빛을 빼앗긴 채 계속 자리를 못 잡고 있다. 효석은 영웅에게 말한다.
“야, 나 진짜로 나태하고 치졸한 변태(pervert)로 살고 싶어. 하기 싫은 건 싫다고 말하면서. 근데 사람들한테 이제 와서 효석이로 불리는 건 억울해. 그래서 말이야, 이렇게 기억됐으면 좋겠어. 변태 같은 영웅으로, 내가 아닌 너로 말이야. 그리고 이것이 나의 변태(transformation)의 시작일 될거야.”
* 홍콩의 소설가 김용의 3부작 무협 소설 사조영웅전, 신조협려, 의천도룡기를 일컫는 명칭. 1986년에 고려원에서 '영웅문'이라는 이름으로 번역 출간되다가, 한국이 베른 협약에 가입한 2000년대에는 김영사가 정식 라이센스 번역판을 출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