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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방망이, 빌려줄래?

소비자 중심의 정치 커뮤니케이션 필요성

by 신영웅

2017년이다. 산업혁명이 벌써 3세기 전의 일이다. 산업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삶의 영역들이 생산자 중심에서 소비자 중심으로 옮겨갔다. 그러나, 그런데, 왜 하필, 도대체 왜! 대한민국 정당 및 정치 영역은 왜 여전히 생산자 중심인 것일까?

자- 여기서 조심할 점은 소비자 중심이라고 해서 단순히 '고개 숙이고 비굴해져라'란 식의 저자세를 취하란 얘기가 아니다. (꼭 선거 때만 고개 숙이고 그러더라...) 정당 활동을 비롯한 정치 영역도 이제는 서비스의 영역으로 돌아서야 하지 않나 하는 것이다. 그것도 컨시어지 서비스로!


정치도 이제는 컨시어지 서비스


대리인이면 대리인답게 자신의 활동을 쉽고 명료하게, 그리고 친절하게 소비자의 언어로 풀어주고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핵심은 비굴이 아니라 친절이다. 이 정도는 구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정치 및 정당활동을 했으면 한다.

요즘 회사에 친해지고 싶은 형이 있는데 그 형이 회의 때 한 말이 인상적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하루를 곰곰이 곱씹어봤다. 그 형에 따르면, 정당 또는 정당 정치는 도깨비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정확히 실체를 파악하는 노력 대신 막연히 꺼려하고 피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해보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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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흥미롭고 생각해 볼 얘기였다. 물론 무분별한 정치혐오 같은 것들은 분명 우리가 지양해야 한다. 조금 오그라드는 말고 깨어 있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리고 스스로 반성도 함께 해봤다. 그러다 그 생각의 끝에 이런 생각이 따라왔다.


무분별한 정치혐오는
우리가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어쩌면 그들, 정치인들은 스스로가 도깨비가 되고 싶었던 것은 아닐까? 가끔 나타나 도깨비 방망이만 휘두르면 기적이 일어나고 사람들은 도깨비 방망이가 만들어준 금은보화에 열광하고... 그렇게 도깨비들은 묘한 특권에 사로잡혀 자신들만의 세상과 상식을 만들어서 스스로 격리시킨 것은 아닐까? 사실 드라마를 보면서도 공유가 인간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살짝 거북함을 느끼기도 했다.


이제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벗어나서 생활 속으로 들어왔음 좋겠다. 고결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낯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함께 했으면 좋겠다. 쉽게 이야기해줬으면 좋겠다. 내 사상 말고 삶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또 갑자기 이런 생각도 든다. 만약 우리가 가서 정치인들에게 도깨비 방망이 한번 써보고 싶다고 하면 선뜻 내줄까?


내 사상 말고 삶을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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