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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영웅 Sep 06. 2017

퇴사

박원순을 팝니다 #0

퇴근길 무심코 서울도서관 방향으로 눈길을 보낸다. 눈길 끝에 잊고 지내던 기억이 시작된다, 행복에 대해 막연하게 생각하던 2014년 6월이.


오늘을 담보 잡아 막연히 내일에 있을 행복을 대출해 살던 적이 있다. 나의 부모님이 그렇게 살았고 선배들도 그렇게 살고 있었기에 나에게도 ‘오늘담보대출’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다. 잘 참는 게 잘 사는 것, 내가 배운 삶의 방식이었다. 물론 지금도 그게 틀렸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다만 그렇게 사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을 때의 이야기다.


서울도서관(구.서울시청)
처음 뵙겠습니다
오늘입니다


오늘담보대출이 너무나
당연한 것이었던 시절의 이야기




2014년 6월, 당시 홍보실 막내였던 나는 한 웹툰 작가와의 만남으로 삶의 궤적이 완전 변해버렸다. 그가 던진 몇 마디 말(그냥 지나가는 말이었고 누구의 인생을 바꾸고자 했던 말도 결코 아니었을테지만)이 ‘오늘담보대출’의 대출이자를 아까워지게 만들고 말았다.


당시의 난 겨우 똥과 된장 정도만 구분할 줄 아는 ‘갓대리’였다. 홍보실은 업무 특성상 언제나, 항상, 매일, 늘 일이 지뢰처럼 깔려 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터질 지 모르는 상황의 연속이다. 특히 그날따라 더더욱 일이 많았던 (내가 진짜진짜 좋아하는)선배가 나를 불렀다. 자신이 내일까지 보고해야 할 게 있어서 대신 인터뷰 지원을 나가줄 것을 부탁했는데 하필 장소가 일산이었다. 이동만 4시간 가까운 일정이라 엄두가 안 난 것이다.


회의장 세팅 중인 막내는 귀척...


인터뷰어는 매일경제와 국민일보였고, 인터뷰이는 곽백수 작가. 곽백수, 내 지친 회사생활을 달래주는 가우스 전자의 작가이기에 흔쾌히 대신 가겠다고 했다. 물론 협찬 기안도 올려야 되고, 보도자료도 써야 되고, 이사님 숙제도 해야 되고, 밀린 딕테이션도 해야 하지만 그래도 그날따라 뭔가 위로가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그리고 택시에서 잠깐 졸아도 되니 그게 또 아는 사람만 아는 꿀맛이었다.


공원에 앉아 인터뷰를 하는데 햇살이 너무 좋아서인지 인터뷰가 술술 진행됐고,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그렇게 자리를 파하려고 하는데, 곽작가가 날도 좋은데 평상에서 맥주나 한잔 하자고 했다. 평소 같으면 얼른 자리를 털고 복귀를 했을텐데 그날따라 또 이상하게 몸이 스르륵 평상으로 갔다.


그렇게 시작된 평상 대화, 마냥 친목을 위한 자리일 것만 같았던 대화는 내 인생을 뒤흔드는 결과를 만들었다. 그는 일반적인 직장생활을 한 적도 없지만 도사 같은 말들을 쏟아내며 나와 기자들의 입에서 끊임없는 탄식이 나오게 만들었다.


아...


기자들은 인터뷰 때보다 더 열심히 자신의 고민을 털어놓고 있었고, 곽작가는 행복에 대해, 그리고 인생에 대해 자신만의 경험치를 나눠주고 있었다. 그러나 난 그들의 대화 속에서 존재감없이 감탄만 하는 관객으로 남아 있었다. 뭔가 입을 열었다간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왜냐고?! 사실 홍보실 취직을 하기 전부터 막연히 브랜딩을 업으로 삼고 싶었다. 운이 좋게도 교수님의 배려로 대학원에서 광고와 디자인을 동시에 공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고 싶은 공부를 마칠 때쯤 아버지가 병석에 누우셨고 그때부터 가고 싶은 회사는 딱 한군데였다.


가장 빨리 합격시켜주는 회사


그냥 취직이 인생의 목표였고 짧게나마 성취욕을 맛봤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로 다시 스멀스멀 내 욕망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인간이란 참 간사하다. 그러나 회사도 남들이 우와 해주는 곳이었고, 팀 선배들도 좋았고, 동기들이랑 노는 것도 즐거웠다. 단 하나,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란 사실 그것만 빼고 모든 것이 만족스러웠다.


처음에는 서툴러서 힘든 거라 믿고 참고 적응하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하면서 승진도 맛봤다. 그런데도 행복해지지는 않았다. 그러던 차에 곽작가와 만난 것이다. 그가 말하는 행복에 내 인생은 없었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대화가 마무리될 무렵 그가 던진 말에 나는 결국 무너졌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차암 몰라~ 지금 자기들 발 밑이 무너져 내리고 있다는 걸 말야. '내일' 있을 행복만 좇는데, 그런데 그거 알아요? 내일은 항상 내일에 있는 거?"


발 밑이 무너져 내린다...
발 밑이 무너져 내린다...
발 밑이 무너져 내린다...


저 말이 귀를 타고 목구멍을 지나 심장에 꽂혔다. 막연한 내일을 위해 오늘을 포기하고 살아가는 내가 과연 ‘내일’은 행복할 수 있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오늘 당장 행복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었다. 그러나 막상 가정, 학교, 회사로 이어지는 안전한 시스템 안에서만 살아왔기에 그 시스템을 벗어나는 것이 두려웠다. 나는 온실 밖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시스템을 벗어나는 두려움’과 ‘행복한 오늘을 만난 기쁨’의 크기를 비교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결국 퇴사하기까지 7개월이 걸렸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알아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함께 일하는 선배들과 동료들과의 이별을 준비하는데도 시간이 필요했다. 가장 아쉬웠던 것은 4층에서 700원짜리 커피 한 잔에 동기들이랑 상사 욕하며 노닥거리는 그 시간에서 나만 빠지는 것이 속상했다.


용기가 없어서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지
 알아내는데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질척(?)거리며 퇴사를 하고 프리랜서로도 살아보기도 하고 10명 남짓한 스타트업에 들어가 브랜딩부터 퍼포먼스 마케팅, 홍보, 조직문화 설계라고 쓰고 잡부라고 읽으면 딱이더라 등 창업자들의 배려 덕에 하고 싶은 건 다 해볼 수 있었다. 그렇게 회사의 성장을 온몸으로 느끼며 전율을 맛볼 수 있었다.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라면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애매모호하고 막연한 목표 설정은 위험하단 것, 그리고 이러한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는 이루고자 하는 목표들을 구체화 해보고 이를 위해 사소한 작은 행동이라도 행해야 한다는 것. 행동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아무리 큰 목표라 할지라도 그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고 그 작은 행동 속에서 행복을 맛볼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내일에 있을 행복을 담보로 오늘을 희생하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방지책이었다. 자신이 행하는 작은 행동 속에 기쁨이 없으면 목표설정을 의심해 볼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행동하지 않고 얻어지는 것은 없었다




그렇게 돌고 돌아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그간의 경험을 바탕으로 나만의 색깔을 담은 브랜드를 만들어 가고 있을 때 지금의 사장님, 박원순 시장을 만나게 됐다. 그리고 그를 점점 알아갈수록 아쉬운 마음이 한 켠에 자리 잡았다. 어쩌면 세상이 그의 단면만 보고 있거나 정확하게 보지 못하고 있는 것만 같아서.


나도 안다. 그가 지금 예전 같은 상종가를 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사장님 알라뷰 그러나 이런 시기에 과감히 사장님의 손을 잡은 것은 내가 그에게서 찾은 것을 사람들에게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세상에 그를 제대로 보여주고 난 다음에 사람들이 그에 대한 평가를 내렸으면 하는 마음이다. 이것은 거만함 보다 절실함에 가깝다.


그래서 나는 요즘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지만 박원순을 리브랜딩 하고 있다. 마라톤도 함께 하고, 인터뷰도 진행하면서 박원순이란 사람이 가진 욕망을 세상에 보여주고자 한다.

 


자신의 브랜드에 색을 입히고 사람들에게 회자되게 만드는 것, 결국 러브마크를 만드는 것은 브랜드 디렉터에게는 짜릿하고 황홀한 경험이기에 꼭 해내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브랜딩이라하면 디자인 베이스의 분들이 활약을 하는 분야이기에 나같이 이미지보다 글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단기간에 성과를 만들어내기가 쉽지 않다.


쉽지 않겠지만 이는 앞에서 말한 ‘오늘의 행복’을 이루기 위해 거쳐야하는 하나의 과정이기도 하다. 박원순을 위한 일인 동시에 행복한 신영웅이 되기 위한 일이기도 하다. 그를 통해 세상에 내 역량을 점검 받고 싶다고 말하는 것은 너무 솔직한 것인가? 


이러한 맥락에서 앞으로 '박원순을 팝니다' 연재를 통해 앞으로 박원순이란 프로덕트를 리브랜딩하기 위해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무엇을 보여줄 것인지 등을 과감히 밝히고 시작해보고자 한다. 쉽게 말해서 패를 까고 한판 쳐보겠단 이야기다.


패를 까고 한판 쳐보겠단 이야기다





<나의 욕망 리스트>
-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기
-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브랜드를 만들기
- 비정규직을 굳이 없애지 않기(뭬야?)
-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질 수 있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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