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좋아합니다
-시계 좋아하세요?
네 좋아합니다.
-애플 워치나 스마트워치는 안 차시나요?
전 아날로그시계가 좋습니다. 전자식이든 기계식이든, 스마트워치란 이름이 붙기 전의 시계들이요.
-왜 그렇죠? 기능은 요즘 것들이 훨씬 많을 텐데요
음, 시계는 시간만 보면 돼서, 시간 말고의 기능들은 필요가 없거든요. 시계는 시간만 말해주면 충분하니까요.
-단순해서 아날로그를 찾는다는 건가요?
물건이 고유한 기능 하나만을 담는 게 단순함이라면, 맞는 말입니다.
-복잡한 거보다 심플한 삶을 선택하는 건가요?
듣기 좋은 말이네요.
-시계가 많나요?
아날로그 손목시계가 5-6개 있어요. 세이코 손석희 전자시계(검색하면 나옵니다), 비행사들이 좋아했다는 스카이라이너, 오리엔트 다이버 시계, 오메가 드빌 쿼츠와 얇은 사이즈의 금장 씨마스터 쿼츠 등등요.
-다양한 편이네요. 시계 수집가인가요.
글쎄요, 수집이 좋아함을 말한다면 맞는 거 같고, 양적인 거라면, 아닌 것도 같고요. 수집이란 단어는 좋아합니다. 나의 취향을 드러내는 거잖아요.
-저 시계들의 공통점이 있나요.
음, 가격대가 비싸지 않다, 구입한 가격으로 하면 2만 원~몇십만 원 사이니까요. 20년 이상된 물건이다, 그런데 여전히 잘 작동한다, 시계다운 단순한 디자인이다, 다이버-씨마스터 등은 바다를 동경하는 시계인데, 다른 공간의 시간은 다를까를 떠올리게 해 주니까.... 금장은 좀 튀네요^^
-금장은 왜 갖게 됐나요?
금장은 왠지 부유해 보여서요. 내가 그렇게 보인다기보다, 금장을 찬 날은 일이 잘 풀리거나 돈이 들어오길 바랄 때 차거든요. 보통 비즈니스 미팅할 때 차는데, 얘기할 때 살짝 시계를 내비치면서 관심과 운을 바라는 거죠.^^
-금장 시계에 원하던 운이 늘 따르던가요.
딱히 그렇진 않아서, 금장에 많은 운을 걸진 않고 있습니다. 미팅을 망친 날, 금장 시계를 봤더니, 이제 운 말고 실력을 키울 시간이라는 얘기를 해주더군요.
-빈티지 시계는 어디서 구입하나요.
종로 쪽에 단골집이 있었어요. 주인이 시계가 좋아 부캐로 하던 일인데 작년에 문을 닫아 아쉽네요. 당근에서도 삽니다. 요즘 당근에 아날로그시계가 많이 올라와요. 옛날 시계가 불필요한 시대라 그런 건지... 일부 인기 모델 말고는 거래는 잘 안 되는 거 같아요.
-매일 번갈아가며 차나요? 시계 루틴 같은 게 있나요.
태엽을 감는 시계나 오토매틱은 매일 밥을 줘야 시간이 맞는데, 그게 귀찮아서 잘 안 차게 되네요. 시계가 살아있나 잠깐 안부를 묻는 사이가 됐어요. 매일 시계 밥을 주는 사람은 정말 부지런하거나 규칙적인 사람일 겁니다. 게으른 타입이 싫다면 매일 시계 밥 주는 사람을 만나면 될 거예요.
2-3만 원대 손석희 세이코 전자시계는 왠지 지적이고 정직하고 검소? 하고 싶은 날 차고요, 아날로그 초침 시계는 수능시계 같아서 무슨 심사나 시간을 재는 날에, 다이버 시계는 일상을 벗어나고픈 날이나 금요일에 가끔 차요. 시계 루틴이 있다면, 같은 날이 아닌 다른 시간을 바랄 때 손목시계를 찾는다는 것. 이게 루틴 맞나요?
-시계마다 삶의 용도가 다르군요.
시계가 단순히 몇 시 몇 분을 확인하는 거라면 이렇게 좋아하진 않았을 거예요. 시계는 상상을 이야기하는 물건의 하나 같아요.
-요즘 시계들은 당신에게 어떤 말을 들려주나요?
계속 안 찰 거면 정리하는 게 어떻냐고(비움 혹은 무소유에 관해), 또 오늘의 시간을 말하기보다는 과거 어떤 시간에 대한 회상(그때 그 특별했던 시간을 기억하는지), 어른의 시간에도 왜 그리 분주하냐고 묻기도 하고,,,, 다행히 내가 나이 듦을 더 불안해할까 봐 그런지 미래의 시간에 대해서는 별로 말이 없네요. 그냥 시간은 정해진대로 흘러간다고, 서두르지 말래요. 째깍째깍 담대하게 가라는데,,, 아 그거 아세요. 시계태엽마다 초침 흐르는 소리가 달라요. 마치 각자의 시간은 다른 소리로 흐른다는 말처럼요.
혹시 외롭거나 힘들면, 어느 아날로그시계에 귀를 가까이 가져가 보세요. 여전히 너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고 말해줄 겁니다.
시공간이란 말이 있습니다.
시간이면 시간이지, 공간은 왜 따라붙을까요.
평범했던 하루를 마치고 나니,
오늘은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만나고 싶어서,
나의 오래된 시계들을 불러
이야기를 나눴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