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캠핑 머그컵을 위한 변명

그나마 한 손에 자연을 쥐었으니까

by 피터

늦은 밤 유튜브를 열면 '부시크래프트'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깊은 숲에서 강에서, 혼자 야영하는 영상을 만난다. 도시의 분주함, 팍팍함에 지칠 때일수록, 알고리즘은 더 영리하게 '자연인'의 삶을 자꾸 보여줬다.

혹시 남에게 도시에 미련 갖는 내 속 들킬까 봐, 두 귀에 에어 팟을 꽂고 묵묵히 혼자 부시크래프트한 삶으로 들어가는 날들이 있다.


대부분 주인공들은 사람의 목소리로는 아무 말하지 않는다. 대신 대형견 한 마리가 파수꾼처럼, 친구처럼 서성대거나, 낙엽을 밟아 바스락대거나, 낚시하러 간 강물이 늘 흐르는 소리를 내거나, 잠들기 전애 땔감 타는 소리만 타닥타닥. 저마다 바쁜 사람들이 내는 고집스러운 소음이 사라진 곳에, 자기 역할을 간직한 딱 그만큼의 적절한 소리가 남았다.


용량 초과의 삶 저 편에,

스스로 허락 가능한 만큼의 삶도 있다고,

이야기했다.




최근 머그컵 하나를 샀다.

그동안 일회용 컵이면 오케이! 던 사람이 굳이 머그컵을 들였다. 컵 하나 사려고 여러 쇼핑 사이트를 기웃거리다, 빈티지한 진녹색 캠핑 컵이 눈에 들어왔다. 한 패션업체의 협업 상품에는 "어느 화창한 날, 프랑스 섬 생뢰(saint leu)에서의 캠핑"을 주제로 디자인했다는 상세 설명이 붙었고, 구매 버튼을 꾹 눌렀다.

배춧잎 석 장을 넘은 가격에 대해서는 어떤 변명이 필요했다.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나 자신이 의도한 대로 삶의 본질적인 사실만을 앞에 두고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월든, 소로

아직 숲으로 들어갈 용기는 없어, 도시에 자연을 사들인 소비자의 변명은 이렇다.

"내가 굳이 캠핑 컵을 산 것은 나 자신이 의도한 대로 살지 못하는 본질 앞에서, 잠시나마 현실을 속이고 싶었기 때문인지도"

-캠핑 컵 구매자


어떤 소비행태에 대해 필요한 설득 혹은 적당한 변명을 덧붙이는 걸 '나만의 작은 사치'라 부르던가.

이제 도시인은 출근 준비를 하며 캠핑 컵에 드립백을 내려 마시고, 카페인 흡수 뒤에는 두 배 정도의 물을 마셔야 건강하다며, 정수된 물을 컵에 받아 벌컥 마신다. 한 손에 머그컵을 쥐고 적당한 때에 필요한 소비를 했다며 흐뭇해한다.


임무를 완수한 캠핑 컵은 주방 위 어수선한 물건들 사이에 놓여, 다시 지친 도시인을 위로할 시간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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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 숲을 배경으로 놓인 캠핑 컵이 도시와 어울리나요? 도시는 자연을 끌어들이길 원하지만, 자연이 허락하는 건 딱 캠핑 컵만큼의 분위기 혹은 용량 일지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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