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그래도, 알람시계

빨강 브루노 플립 탁상시계

by 피터

아날로그 시계 좋아하세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내가 갖고 있는 5~6개 아날로그 빈티지 손목시계 애찬이다.

내가 쓰는 일기 같은 글이 한 권의 책으로 발간된다면,

<아날로그 시계 좋아하세요?>는 p.000에서 읽으실 수 있다.

손목시계는 출근할 때,

출근복을 다 갖춰입고 맨 마지막의 착장으로 선택된다.

패션의 완성이라고 하기엔 뭣하고, 오늘도 필요한 일을 하기 위해 적당한 시간에 출근한다는 상징같은 표식이랄까. 출근해봐야 해오던 일들의 연속이란 걸 알기에, 그래서 어쩌면 지금 손목시계를 찬 시간만큼은

다른 특별한 시간을 기대하는 그런 마음.

이상하게도,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하는 일이 많지만, 아날로그 시계가 가진 초침 분침 시침에는 다른 시간을 확인하고 싶은 욕망이 담긴다.


시간이야 늘 끼고 사는 핸드폰을 보면 그만. 기상 알람시간도 핸드폰으로 맞추면 되는데,

굳이 탁상알람시계가 필요할까?

빨강 브루노 탁상 알람시계는 당근에서 거래했다.

손바닥 크기인데, 매 초마다 플립 형태로 초가 흘러가는 것을 보여준다.

플립 방식의 에너지 효율이 낮아서인지 배터리 소모가 빠르다.

AA 건전지 2개가 한 달을 못 버티는 것 같다.

자꾸 건전지를 갈아줘야하니 귀찮은 시계지만, 초가 넘어가는 플립 모양을 보면서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멍 때리고 고민만 하다 초 넘기는 걸 보고 있으면 뜨끔하다.

아, 이렇게 살다가 고만고만하게 인생 끝나겠지.


건전지가 빨리 닳아, 알람 설정은 꺼뒀다.

디자인이 참 예뻐서 알람도 꽤 큐트할 거 같지만, 알람소리는 띠디디디 띠디디디,

사람 잠 깨우는데 특화된 전혀 배려하지 않는 큰 소리가 난다.

즉, 이 녀석은 외모는 곱상하지만

잠 깨우거나 그럴 때는 군대 기상소리 같은(일어나기 싫지만 기상해야 하는) 정확한 역할을 해낸다.


배터리 소모 빠른 것만 빼면, 여러모로 알람시계다운 탁상시계다.


ps. 핸드폰 시계가 정확하니 더 이상 아날로그 시계는 필요없지만,

그 불필한 것들이 왜 필요한 지에 관해 딱 하나 설명을 덧붙인다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뭔가 새롭고 다르고 흥미롭고, 어쩌다 다른 시간을 기대할 때는 다른 시계가 필요하니까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