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kg 생수통을 갈아본 미생들에게
미생을 역주행하다 알았다.
신입 엘리트 안영이가 선배들의 뒤치닥거리를 도맡아하다 정수기 생수통을 가는 장면이었다. 정수기 위에 꽂는 생수통 무게는 18.9리터/ 20kg 정도라고 한다. 그 무게 생수통을 올리다가 힘에 부쳐 바닥에 쏟고 문득 쏟아진 막내 안영이의 안녕하지 못한 현실.
그랬다. 언젠가 나도 막내고 신입이었다.
정수기 생수통은 하나씩 팀별로 있었고, 생수통 배달업체는 주기적으로 10여 통을 배달했다. 정수기 옆에는 교체된 빈 통과 교체를 기다리는 물통이 같이 놓였다.
생수통을 가는 건 막내 몫이었다. 선배는 대부분 갈지 않았고, 같은 신입이면 대부분 남자가 생수통을 갈았다, 여자 선배들은 의도적으로 생수통 좀 갈아줘~~ 하며 지켜보곤 했다, 그 다분한 의도가 가끔 불쾌했는데 한편으로 자기들 신입일 때 남자 선배들이 막내란 이유로 같은 목적을 드러냈기 때문인 것도 같았다, 생수통을 가는데 딱히 젠틀맨 마인드는 없었다, 20kg 생수통을 들어올리고 꽂는데는 오직 '막내', 대부분 남자 막내가 있을 뿐이었다, 그 무게를 드는데 남자인 나도 가끔 근력이 딸려 부르르 휘청일 때도 있었고, 또 내 일에 집중할 때 사소한 생수통 갈이를 시키면 뭥미~하는 심정이 들었다, 생수통을
갈던 긴 새월만큼 내 아래로 여자 신입이 들어왔다, 그렇다고 여자를 시키진 못한 채 생수통 가는 시간은 늘어갔다, 남자는 여자에게 무거운 걸 시키면 안 되는 젠틀맨이라서? 그보단 가끔 남자인 나도 생수통 들다 후달리는데, 여자 근력에 그걸 시키는 건 아닌 거 같아서, 그뿐이었다. 생수통 갈기를 그만둔 건 남자 후배가 들어온 후였다. 20kg 생수통엔 늘 막내의 귀찮음, 가끔의 언짢음, 그러다 설움이 묻어났다.
생수통 갈고 사무실을 돌아보면 선배들은 자기 일에 열심이었다. 뭐 신통찮은 막내가 그깟 생수통 정도는 잘 갈았겠지, 하는 시선과 더불어.
출처_유투브 D라마_미생 중
인터넷 검색 창엔,
여자도 생수통 갈 수 있지 않나요? 란 질문이 보인다. 거기 꽤 많은 댓글들이 달렸는데, 몇 개로 구분되는 것 같다.
-뭐 여자도 들 순 있지만, 2명 이상 같이 하는 걸 추천!
-내 여동생 몸무게 44kg인데 2리터 생수 6개들이 양손에 들고 계단 오르내림(특수 케이스)
-여자도 옮깁니다. 그거 못하면 쇼핑 장보기도 못하죠.
-누구든 먼저 발견한 사람이 가는거죠. 그런 태도를 지닌 여자 신입을 잘 뽑아야
-뭐 들기야 하겠지만 꽂는 건 힘들 듯
-어린애 업고 장보는 엄마들은 수퍼맨인듯
-핸드백도 무거워서 남친이 대신 들어주는 거 아님?
-나도 여자로서, 연약한 척 하거나 무조건 힘 쓰는 건 남자한테 기대는 여자 싫지만, 생수통은 무겁네요ㅠ
생수통을 남자만 가는 건 공정일까 아닐까.
맨날 생수통 가는 남자는 젠틀맨일까 바보일까.
생수통 혼자 번쩍 가는 여자는 대접을 받아야할까 그냥 일하는 걸까.
공정치 않은 경험을 맛보고 나면 나중에 두 갈래로 나뉜다. 비 공정이 공정처럼 되어 같은 패턴을 되풀이하는 쪽과, 나는 겼었지만 좋은 경험이 아니었기에 상식적 공정을 추구하는 쪽. 다행히 세상은 더디지만 후자의 방향을 갖는다, 혹은 갖기를 희망한다.
20kg 생수통에 얽힌 설움, 젠더 이슈 등을 떠나,
생수통을 남녀 구분없이 혼자 말고 둘이 드는 사회가 맞지 싶고,
생수통 정수기를 대신할 필터 정수기로 바뀐 시절이 반가울 따름이다.
언젠가 우리는 다 신입이었다.
남들 마실 생수통 혼자 갈다 우는 미생 말고,
누구나 자기 컵에 고운 물 한 컵 받아 마시는 시대가 낫다.
그러나저러나 미생의 삶이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