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좋아하는 서울 순댓국
오 헨리는 단편집에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모피 코트를 사기 위한 여자들의 아양이 시작된다 했는데,
(왠지 양성 평등의 요즘 시대엔 맞지 않는 문장 같네요, 당시의 고전으로 이해하시고)
저는 찬바람이 불면, 따끈한 순댓국을 생각합니다.
행여 반주라도 할까 싶어, 주변 사람들에게 동참하라는 순댓국 아양(?)을 떱니다.
사람들의 소울푸드로 순댓국을 빼지 않습니다
뽀얀 국물에 다진 양념소스가 섞인 고습한 주황색 빛깔. 이 컬러가 참 오묘하단 생각을 늘 했습니다. 제가 꼽는 순댓국 탑티어는 쉽게 설명되는 빨간 국물보다는, 이런 오묘한 컬러의 국물인 경우입니다.
저 은은한 국물 컬러감에 뭔가 비밀 레시피가 있다고 믿게 됩니다.
토렴 된 밥 위에 젓가락으로 골라 올린 싱싱한 새우젓 하나, 툭툭 썬 고추와 대파, 깍두기 하나 얹어 마주치는 느낌이란, 정말!
제가 꼽는 서울 순댓국 4곳은,
광화문 화목 순대국 : 각종 내장 부속과 함께 무조건 반주를 부르는 절묘한 국물 맛, 특히 서브메뉴로 나오는 마늘종 한 종지를 된장에 찍느라 자꾸 리필하게 되는..
양재동 한국 순대 본점(톹랑) : 하도 그 맛을 베끼기해서 한국 순대 본점에 톹랑까지 붙였다는 얘기가..
을지로 산수갑산 : 갈 때마다 줄 서 있던 곳, 그 퀄리티는 저보다 더 아시는 분들이 많을 듯.
눈이 내릴까 말까 하던 날 저녁 8시쯤 약수동을 지나다 그 순댓국집이 떠올랐습니다. 맛의 기억은 참 지리적이라 그냥 지나치질 못합니다.
(원조) 약수순대국. 아, 정말 매력 적인 한 숟갈!
여기도 원조가 붙은 걸 보니, 아무래도 베끼기가 있던 걸까요?
여기저기 훌륭한 순댓국에 관한 다양한 전문가들의 설명은 익히 들으셨을 테고요. 제가 만난 순댓국 탑티어의 힌트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1 식당을 정리할 무렵, 사장님이 종업원의 하루를 조곤조곤 대화로 푸는 곳. 아마도 서 계신 분이 대를 이은 사장님? 같고, 이런 대화가 들리더군요.
"하루 온종일 일하시면 힘드시죠? 자리에 앉아 잠시라도 쉬세요"
"그래도 낼(일요일)은 쉬니까(휴무일), 맘은 편하네요".
즉, 기본 맛에 노사의 수평적 문화가 자리한 곳!!
2 일요일이 휴무인 곳.
이른바 힙플레이스 장사면 주말 손님 장사와 매출을 놓지 못할 터. 일요일 휴무라는 건 동네 단골 장사란 얘기면서, 일요일을 포기해도 지속가능성의 장사가 가능하단 얘기니..
3 당일 밑반찬을 소진하는 곳, 그것도 손님 다 보이는데 두는 곳. 그만큼 싱싱한 재료 준비라는 것이니.
4 주변에 동종 메뉴가 있는 곳. 순댓국으로 한 자리하니까 서로 모이고 경쟁하는 것이니. (우측 해남 순댓국도 또 다르게 괜찮다는 얘기가 있네요. 전 좌측만 가 본 터라) 좌측 위 불 번진 간판이 제 소울푸드인 (원조) 약수 순대국.
5 마지막으로, 연인들의 다정함이 있는 곳.
제 옆 테이블에서 먹던 커플이, 마지막 한 입을 다 먹은 후, 남자가 여자 입술에 깍두기 국물이 살짝 남았다며 손으로 슥 닦아주는데...
누가 계산할지, 이런저런 계산속 말고, 그냥 사람들의 친밀함이 식사 후 묻어나는 곳.
저는 이런 순댓국을 좋아합니다.
이런 힌트가 숨어있는 곳이라면, 순댓국이든 다른 메뉴든, 분명 맛집이 분명합니다.
여러분의 순댓국, 또 소울푸드의 비밀은 무엇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