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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운트 Apr 21. 2022

청량하면서도 묵직한 숲 속 같은 소설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 마쓰이에 마사시

마쓰이에 마사시의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는, 비유하자면 커다란 나무들로부터 불어오는 바람 같습니다. 서늘하면서도 청량하고, 잔잔한 여운이 남죠. 나뭇잎들이 서로 부딪히면서 나는 소리, 나뭇가지를 건너 다니는 새 소리도 곁들여져서 잠시 숨을 고르게 합니다. 그러니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요즘, 바람이 잘 통하는 자리에서 읽기에 참 좋죠.



마쓰이에 마사시는 오랜 시간 편집자로 일하다가 꽤 늦은 나이에 바로 이 <여름은 오래 그곳에 남아>로 데뷔하며 문단과 독자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이후 발표한 작품마다 품위 있고 아름다운 문체와 묘사, 밀도 높은 이야기로 남다른 개성과 작품성을 뚜렷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소설은 노건축가 무라이 슌스케와 그 건축가를 존경하고 따르는 젊은 직원 '나'를 중심으로 무라이설계사무소가 매년 여름을 보내는 '여름 별장'에서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시간적인 배경은 1980년대이고요. 고요하고 차분한 분위기에서 '국립현대도서관' 건축에 도전하기 위해 준비하는 이야기가 큰 줄기로 이어지는 한편, 자신의 철학을 굳건히 갖춘 노장과 이제 막 건축가로 첫발을 내딛는 서툴지만 진정성 있는 청년의 관계, 풋풋하면서 아슬아슬한 연애담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이 소설의 백미는 건축에 대한 방대한 지식뿐만 아니라, 음악, 요리, 자연, 역사, 종교, 탐조, 미술 등 다양한 분야를 제대로 즐기는 주인공들의 이야기인데요, 오랜 역사를 거쳐온 건축이 아름다운 종합예술이며 인간의 모든 것과 관련 있음을 새삼 느끼게 합니다.



"해가 뜨기 얼마 전부터 하늘은 신비한 푸른빛을 띠며, 모든 것을 삼킨 깊은 어둠 가운에에서 순식간에 숲의 윤곽이 떠오른다. (...) 유리창을 열고 코를 멀리 밀듯이 얼굴을 내밀고 안개 냄새를 맡는다. 안개 냄새에 색깔이 있다면 그것은 하얀색이 아니라 초록색일 것이다. (...) 가운뎃마당에 있는 큰 계수나무가 안개 속에 가라앉고, 안개 속에 떠 있다." - 본문 중에서



지난번에 소개해드린 마쓰이에 마사시의 <우리는 모두 집으로 돌아간다>와 함께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https://brunch.co.kr/@aund/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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