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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운트 May 23. 2022

어디에선가 빛을 쏘아올리고 있는 동지들에게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 마리나 벤저민


"잠을 이룰 수 없게 되면 잠과 사랑에 빠진다. 어쩌면 결핍의 정도와 그에 돌아오는 사랑의 크기는 반비례 관계일지도 모른다. 나는 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궁금하다. 그렇다면 잠도 나를 사랑해줄까?" - 본문 중에서



불면의 시간은, 경험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성격의 것이겠죠.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인 수면욕이 제대로 충족되지 않을 때 느껴지는 불안함과 고통, 슬픔 등을 머리가 베개에 닿기만 해도 숙면하는 '쿨쿨이'들이 어떻게 알겠어요. 건강과 심리 등 여러 가지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고 그래서인지 유난히 수면과 관련된 사업이 번성하고 있지만 잠, 밤, 불면에 대한 관심은 그 역사가 오래된 데다가 어쩌면 앞으로도 풀기 힘든 문제가 아닐까요. 24시간 깨어 있기를 요구받는 현대인들의 수면 부족 상태를 탁월하게 그린 구병모 작가님의 소설 《상아의 문으로》가 생각나기도 했습니다.





영국의 작가 마리나 벤저민의 에세이 《나의 친애하는 불면증》은 오랜 시간 겪고 있는 불면증으로 지새우는 밤에 써내려간 다양한 생각들을 담고 있습니다. 원하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통째로 주어진 그 시간을 때로는 무기력하게, 때로는 예민하게 깨어 있으면서 마주하는 공상과 성찰이 위트 있으면서 차분하게 이어지는데요, 천일 밤 동안 이야기를 쉬지 않는 《아라비안나이트》의 셰에라자드 같기도 하네요.



마리나 벤저민은 불면증에 걸린 상태를 밤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는 외로운 섬으로 표현합니다. 또한 편안하고 친밀한 공간인 방과 침대가 가장 낯선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절망하기도 하지만, 그 불면의 밤을 견디어냈던 수많은 예술가와 신화 속 인물들을 호명하며 묘한 연대와 위안을 받기도 하죠. 아마도 홀로 깨어 있지 않으리라는 믿음 때문일 거예요. 그래서 마지막에는 '빛의 칼로 어둠에 무수한 구멍을 내는 불면의 노래를 기꺼이 부르겠다'고도 하는데요, 혹시나 비슷한 경험과 생각을 가지신 분들이라면 크게 공감하실 만한 에세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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