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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운트 Jun 02. 2022

위엄과 아름다움을 갑옷으로 걸쳤던 한 노숙인의 이야기

《레이디 맥도날드》, 한은형

몇 년 전, 방송을 통해 소개된, 매일 정동 맥도날드 매장에서 밤을 보내는 여성 노숙인을 기억하는 분들 계실까요. 트렌치 코트를 입고 혹시나 돈이 생기면 고급 커피를 마시며 독특한 어투를 구사하던 그를 '맥도날드 할머니'로 부르며 많은 이들이 관심을 가졌었죠. 대학을 나와 외무부 등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엘리트 여성이 왜 노숙인이 되어 24시간 패스트푸드점에서 긴 밤을 보내게 되었는지 그 이유와 사연에 대해 추측도 난무했고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요, 방송으로 사연이 소개된 몇 년 후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한은형 작가님의 장편소설 《레이디 맥도날드》는 바로 이 '맥도날드 할머니'를 '김윤자'라는 인물로 복원하여 한 여성의 마지막에 동행하고 있습니다. 실존 인물에서 모티브를 가져왔지만 작가의 상상력으로 창조한 일종의 팩션이라고 할 수 있겠죠.




소설의 주인공 김윤자는, 낡고 더러운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신문과 성경책 등이 들어 있는 쇼핑백을 들고, 낮에는 일본문화원에서 (무료 상영하는) 오래된 예술영화를 감상하고, 밤이면 정동 맥도날드 매장을 찾아 앉은 채 밤을 보낸 후 새벽이면 교회의 예배당을 찾습니다. 집과 가족과 일을 가지고 일상을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의 눈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기행이라고까지 보이는 그의 생활은 과연, 손가락질 받거나 단순한 흥밋거리로 소비되어 마땅한 것일까요?



"나는 이왕이면 멋있고 아름다운 게 좋아요. 선생도 그렇지 않아요?" - 본문 중에서



"길에서 자지도 않고 구걸하지도 않고 흐트러지지도 않는다. 동정을 바라지도 않고, 도움을 줘도 탐탁지 않아 하"는 김윤자를 취재하는 다큐멘터리 PD 신중호는 어느새 그에게서 마지막 존엄과 의연함을 지키고자 하는 의지를 발견합니다.



이 소설은 어떤 평가나 동의를 쉽게 구하고 있지 않아요. 그저 한 사람을 귀하게 바라보며 존중하고 사려 깊게 귀를 기울여 그 인물이 스스로 이야기하게 만듭니다. 묵직하고 현실감 넘치는 이 작품을 함께 읽어보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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