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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운트 Jul 18. 2022

책을 빚어내는 아름다운 손과 마음들

《책의 엔딩 크레딧》, 안도 유스케


지금 읽고 계시는 책의 제일 마지막 페이지(간혹 앞에서부터 두 번째나 네 번째 페이지)를 보시면, 책의 제목, 지은이 이름, 발간일, 출판사 이름과 발행인, 출판사 주소 그리고 ISBN이라는 열세 자리 숫자 등이 작은 글씨로 적혀 있을 거예요. 인쇄제본소나 디자인 등 다양한 이름들이 있는 경우도 있고요. 그 페이지를 '판권(면)'이라고 합니다. 한 권의 책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정보 페이지라고 할까요. 정체성을 나타내는, 중요한 페이지입니다.


한 편의 영화가 끝난 후 역시 그 영화를 만드는 데 참여한 사람들의 소속과 이름이 빼곡하게 올라가는 자막, 바로 엔딩 크레딧처럼 말이죠. 영화가 끝난 후 관객들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기 마련이지만, 가끔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는 것을 끝까지 보고 있자면, 이 하나의 영화를 위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수고했구나 하는 생각에 감동적이기까지 한데요, 지금 여러분이 읽고 계신 책 역시 독자들은 미처 알기 어렵지만 참으로 많은 이들의 손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안도 유스케의 장편소설 《책의 엔딩 크레딧》은 출판업계의 속사정을 아주 자세하게 다루고 있는데요 독특하게도 '인쇄회사'의 이야기입니다. 작가나 출판편집자 또는 출판사나 잡지사, 그리고 서점이나 도서관 그리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 등을 다룬 책이나 영화, 드라마는 꽤 많지만 인쇄회사의 영업자와 인쇄 기술자, 조판 오퍼레이터 등을 전면으로 내세운 책은 처음 본 것 같아요. 출판, 그 중에서도 종이책 출판은 오래전부터 사양산업이라고 말해지고 책을 생산하는 인쇄업의 어려움 역시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운 현실일 텐데, 과연 화려하지 않고 전통적이며 전문적인 업종의 세계를 그려내는 소설은 어떠할까요?



"지금은 이 자리에서 책을 만들고 싶다. 논리가 아니라 그저 이 일이 좋으니까. 최악의 사태에 대한 각오만은 늘 가슴 한 켠에 담아 두고 탄생을 기다리는 책을 위해 뛰자." - 본문 중에서



우선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사명감을 가지고 있으며 보다 나은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히 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뭉클하기도 하고 감동적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매일매일 해나가는 업무가 그리 대단해 보이지는 않을지라도, 또 알아주는 사람은 없을지라도, 퇴근길 마음에 맞는 동료와 나누는 맥주 한잔, 월급날 가족들과 함께 먹는 치킨, 그리고 내가 만든 책이나 과자를 고르는 사람을 만났을 때의 뿌듯함 같은 것을 느끼기도 하잖아요. 평범하면서도 하나하나 특별한 사람들이 사랑스럽기까지 해요.



무엇보다 출판계의 여러 모습을 자세하게 만나는 재미가 큽니다. 이 글을 쓰는 아운트의 큐레이터는 책을 만드는 편집자이기도 한데요, 저조차도 인쇄소와 제본소 일을 아주 가까이에서 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이 소설을 통해 알게 된 것이 많아요. 물론 일본과 한국의 출판 시스템이 조금은 다르지만, 닮은 부분도 꽤 많아서 낯설지 않기도 했습니다. 정작 책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잘 몰랐다는 사실을 깨닫고 3년 넘게 꼼꼼하게 취재를 해서 이 소설을 썼다는 안도 슈스케의 노력과 마음이 좋은 작품으로 만들어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새삼스럽게 책을 만들고 소개하는 일이 어렵지만, 이렇게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이지, 또 생각합니다. 책을 고르고 읽어주시고 사랑해주시는 분들, 감사합니다. :) 앞으로도 아운트에서 자주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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