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책방 편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운트 Sep 29. 2022

물고기가 하늘을 날아다니는 그 시간에

《우리의 밤이 시작되는 곳》, 고요한

이 이야기는 참 낯선 장소와 시간에서 시작되어 익숙한 공간을 떠돕니다. 기꺼이 찾아갈 일 없는 슬픔과 추모의 공간 장례식장, 그곳에서 일하는 두 사람 재호와 마리가 매일 밤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진 장례식장을 나와 어둠과 싸우고 있는 서울 시내를 여행하는 이야기. 이 독특하고 몽환적인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죽음과 삶에 대해서, 만남과 이별에 대해서 새삼 생각해보게 됩니다. 대체로 외면하고 싶은 것들이지만 언제나 우리 가까이에 존재하고 있으니까요.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속 사람들처럼 24시간 불을 켜놓은 맥도날드에서 밤을 지새우고, 쉬지 않고 망치질을 하는 광화문 해머링 맨과 인사를 나누고, 길에 떨어진 하얀 면사포를 머리를 쓰고 골목길을 달리다가 밤하늘을 유영하는 물고기들을 따라잡으려 오토바이의 속도를 높이는 두 사람의 모습은 이 긴긴 밤을 견디는 청춘의 안간힘이기도 하고 안타까우면서도 아름답게 느껴지기도 해요.



"이 시간이 가장 잠이 쏟아지는 시간이야. 새벽 한두 시까지는 참고 버티는 데 세 시가 넘어가면 힘들어. 저절로 눈이 감겨. 졸음을 쫓으려고 맥도날드를 나와 거리를 걸어도 마찬가지야. 졸음을 참고 걷다 가로수에 부딪친 적도 있어." - 본문 중에서



매일 첫차를 기다리며 밤을 보내야 하는 마리와 하얀 뱀과 이별하기 위해 애쓰는 재호, 그리고 그 주변 인물들 모두 매력적이면서 가깝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 모두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힘들어했던 기억 하나쯤은 갖고 있으니까요. 그런 기억이 너무 힘들거나 아픈 것이 아니기를, 그저 그 기억을 밤하늘에 꽃잎을 날리듯 잘 흘려보낼 수 있기를. 함께 이 소설을 읽어보며 같은 밤을 보내면 좋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는 하늘의 푸르름이 스며든 책을 좋아합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