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말을 이제야 다시 생각합니다.
첫째 아이는 늘 좋은 언니였다.
상냥하고 참을 줄 아는 아이.
동생과 터울도 좀 있어서, 동생을 누구보다 기다렸던 아이였다.
그래서일까. 둘째가 태어났을 때 아이는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좋아했다.
아기를 안고 웃고, 작은 손을 쓰다듬으며 환하게 웃던 모습이 아직도 선하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건 어쩌면 아이가 감당하고 있던 무언가의 시작이었다.
둘째가 집으로 온 지 일주일쯤 됐을까.
첫째가 유치원에서 수두에 걸려 왔다.
병원에서 격리가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이가 말했다.
"엄마, 내가 할머니 집에 가 있을게. 너무 걱정하지 마."
나는 7살 아이의 그 말이 너무 기특해서, 고맙다는 말과 함께 아이를 할머니 댁으로 보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아이는 어쩌면 그 말을 하면서도
“아니, 엄마랑 같이 있고 싶어”
“그냥 내가 집에 있어도 돼?”
라는 물음에 대한 나의 대답을 바랐던 건 아니었을까.
할머니 댁에 간 지 사흘 만에 아이의 온몸에 알 수 없는 발진이 올라왔다.
병 때문이 아니었다.
둘째가 태어난 상황에서 엄마와 떨어져 있는 것이,
작은 몸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였던 것이다.
아이는 말이 아니라 몸으로 그걸 말하고 있었다.
아이를 다시 집으로 데려왔다.
남편이 급히 데리고 왔고, 나는 아이에게 잘 설명한 뒤 방 안에서 격리를 하며
둘째와 첫째를 오가며 돌봤다.
그러자 아이의 발진은 거짓말처럼 가라앉았다.
그 이후로 첫째는 동생을 누구보다 예뻐했다.
동생에 대한 스트레스를 특별히 드러내지도 않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우리 아이는 동생을 잘 받아들이고 있구나.’
하지만 그건 아이가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고,
사춘기가 되자 그 감정은 마침내 터져 나왔다.
"엄마, 동생이 말하는 소리만 들어도 짜증나."
"같이 있기가 너무 싫어."
"나 혼자 살고 싶어."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이 아이는 늘 참다가, 꾹꾹 눌러두다가, 한꺼번에 터뜨리는 아이였다는 걸.
방학이 시작되자, 아이는 학원도 캠프도 가지 않겠다고 했다.
수학 공부도 혼자 해보겠다고 했다. 모르는 부분만 엄마가 도와달라고 했다.
동생이 방학을 시작하기 전, 엄마와 단둘이 보내는 시간을 원했다.
첫째 날, 우리는 미용실에 갔다.
웨이브를 넣은 머리를 하고 거울 앞에서 웃는 아이는, 정말 오래간만에 본 얼굴이었다.
"엄마, 이 머리 너무 마음에 들어."
둘째 날엔 네일아트를 하러 갔다.
자신이 원하는 디자인을 찾고, 길이에 맞게 예쁘게 완성된 손톱을 보며 또 웃었다.
셋째 날엔 쇼핑을 하며 점심도 먹고, 카페에도 들렀다.
아이의 표정은 점점 더 환해졌다.
그날 집에 돌아와선 동생의 영어 숙제를 도와주고,
스스로 수학 문제집을 꺼내 풀었다.
나는 아이가 책을 읽거나, 악기를 연주하면서 스트레스를 해소하길 바랐다.
하지만 그건 내 바람이었다.
아이에게 필요한 건, 엄마와의 시간,
스스로 원하는 걸 선택하고 표현할 수 있는 자유였다.
아이의 방식으로 기분을 전환시켜 주면
그게 곧 아이에게 맞는 스트레스 조절이라는 것을
지금에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