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살아보기 위해 한 이혼

다름을 인정할 수 있는 아량

by 오로라

부부로 살다 왜 헤어지는 것일까?


얼마전 모델 겸 방송인 홍진경의 이혼 사실이 기사로 전해졌다. 그녀는 딸을 고려해 발표만 좀 늦게 힌 것이라며 결혼 22만에 남편과 남이 되었다고 했다. 하지만 이혼 후 아는 오빠처럼 편해진 듯 우정을 되찾았다고 말해 그 의미가 궁금했다.


이혼 사유를 '다르게 살아보고자 했다'는 그녀의 말의 의미를 나름 생각해 보았다. 기사내용엔 구체적인 이야기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만, 그녀는 이혼했지만 남편이나 안사돈간에 여전히 밥을 먹는다는 등 왕래를 하는 것 같아 조금 놀랍기도 했다.


보통 우리 나라 정서상 이혼하면 부부 당사자는 물론 가족간에도 남처럼 지내기 쉽다. 대부분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어려운 사유로 이혼하기 때문이다. 특히, 미성년자 자녀가 있는 상태로 이혼하면 부모 양쪽 비난받기 쉽다. 설령, 협의 이혼을 했더라도 말이다. 그래서 법으로도 미성년 자녀가 있으면 더 신중하게 결정하도록 조정 과정을 거친다. 이혼 후 숙려 기간도 더 길게 잡아준다.



최근엔 이혼율도 증가하고 인식이 달라져 과거처럼 이혼 자체만으로 낙인하진 않는다. 당사자 간에 어떤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고, 각자 헤어지는 편이 더 낫다고 결정한 것이라 여긴다.




다르게 살아보기 위해 했다는 이혼은 어떤 것일까?


결혼한 순간,

누구의 아내와 남편으로 혹은 며느리와 사위, 동서, 시누와 올케 등등 다른 집안의 식구가 된다. 새롭고 낯선 환경의 소속으로 살아가게 된다. 때로는 좋거나 그렇지 않을 수 있다. 행복하다고 느낄 수도 반대의 감정을 경험할지도 모른다. 간혹 결혼한 것을 후회하며 미쳤다고 여겨질 정도로 고통스러울 수도 있다. 마치 미지의 세상으로 떠나는 일이 결혼일 수 있다. 동반자라 부르는 배우자와 주변인들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기분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곳에서의 삶이 괴롭다면 빠져 나와야 한다. 그 방법 중 하나가 이혼이라 생각한다. 탈출에 성공했다면 아니면 자발적으로 출구를 찾았다면 이제 새로운 세상으로 걸어가야 할 것이다. 다르게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런지.





보통 결혼 20년 이상이라면 부모와 자리에서 다시 부부만 남는 시간이 생길 수 있다. 그렇다면 부모의 옷을 벗고 내 옷을 다시 걸치는 시간이 필요하다. 혹시 이혼을 했더라도 얼마든지 이 시기엔 '나답게'살아도 좋다.


다르게 살아 가고자 한다면 남편과 아내, 엄마와 아빠의 자리에서 내려오자. 결혼 전 했던 일을 찾아도 좋고 다시 하고 싶은 일을 해도 좋다. 새롭고 도전적인 일을 찾아 자신만의 여행을 떠날 수도 있다.




초고령화로 기대수명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 이젠 우스갯소리로 재수없으면 100살까지 산다며 장수에 대해 변한 시각이 반영되고 있다. 더 이상 장수가 노인에게 축복이 아닌 시대가 되었다. 누군가에겐 슬픈 일이지만 또다른 이에겐 새로운 인생을 여는 시간이 주어진다.


싫든 좋든 앞으로 대부분 90세 정도까진 살아야 한다.

중년 이후부터 새로운 캐릭터로 재탄생해보면 어떨까?


만약, 기대수명이 90세라면 1/3은 자녀의 인생을, 그 다음 30년은 부모 역할을 하며 산다. 그렇게 60년이 지나면 자녀와 부모 역할에서 벗어나도 좋을 때가 기다린다.


액티브 시니어로서 배우자와 둘만의 시간을 즐겨도 좋고 홀로서기해도 된다. 두 사람이 사이에 문제가 없다면 계속 해로해도 된다. 하지만 사별이나 이혼했어도 얼마든지 다르게 살 수 있어야 한다. 이제부터 새로운 시작이다.


한 때 인터넷상 부캐(부캐릭터)라는 말이 유행했다.



'부 캐릭터( Character)'의 줄임말로 원래는 인터넷 커뮤니티게임부계정을 일컫는 단어였는데, 방송이나 미디어 등에서 '실존 인물이 새로운 캐릭터를 연기하는 것'이라는 뜻으로도 쓰이게 되었다. (출처 : 나무위키)



새로운 인물처럼 남은 인생 후반에는 자기만의 부캐를 가져도 좋을 것이다. 어쩌면 이혼 이후 새롭게 주어진 시간 동안 다르게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닐까?


결혼생활로 미루거나 하지 못한 일을 다시 찾고 가장 의미 있는 자기 인생을 위해 투자하는 경험이 되도록 말이다.




자녀가 성인이 되면 이전처럼 직접 돌보거나 교육하는 시간은 줄어든다. 그런데도 성인 자녀로부터 벗어나기 힘든 예도 있다.


가정당 자녀수가 적은 요즘엔 자녀에 대한 부모의 기대가 높다. 자칫 나이가 들어도 자식을 품에 안고 사는 경우가 있는데 바람직하지 않다. 때가 되면 어미새가 아기 새를 둥지 밖으로 내보내듯이 독립을 도와야 한다. 자녀가 독립하지 못하면 남은 인생은 계속 부모로 머물러야 한다. 캥커루족을 만들 여지를 주지 말아야 한다. 서로를 위해서.


중년기를 인생 2막이라고 부르는데 이젠 고령화로 인생 3막까지 생존할지도 모르겠다. 60부터 90세 혹은 100세까지 새로운 내 캐릭터로 살아가는 것은 의미가 있다.



만약, 우리의 인생이 90년이라고 가정한다면


보통

30년은 누군가의 자녀로

30년은 누군가의 부모로

남은 30년은 어느 누구도 아닌 나답게 살아보자.

신명나게.




인생은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엊그제 2025년이었던 것 같은데 벌써 8월 중순이다.



폭염으로 시름했던 여름을 잊은 지 금방이라 느낄 무렵

'메리크리스마스!'라고 인사할 지도.


만약,

지금 남은 인생의 시간을 이전과 달리 살고 싶다면 나에게 집중하자.


내가 살아 있어야 주변이도 보인다.

당연한 말이지만 실천이 어려운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다.



인생의 남은 30년을 보내는 사람이라면

새로운 캐릭터만큼은 부캐가 아니라

완캐(완전한 캐릭터) 또는

진캐(진짜 캐릭터)로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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