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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만 고양이 Mar 28. 2023

작은 나의 우주 1

너와의 첫 만남

영하 18℃, 김 서린 창문으로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집 안의 따스한 온기는

마음의 보호막이 되어준다.

나의 겨울은 찬 바람이 아닌 따뜻함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호빵과 군고구마, 사랑하는 사람과 꼭 잡던 손의 따스함,

이불속 서로의 온기가 느껴지는 포근함

그리고 언제나 내 곁에 기대고 잠드는 우리 강아지 까미가 그랬다.     


추운 겨울,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나에게 찾아온 강아지 까미는 너무 작고 가벼웠다.

낯선 어린 생명이 내 품에 안겼을 때 우리는 서로 어쩔 줄 몰랐다.

손에 힘이 들어가면 부서질까, 힘을 빼면 놓칠까, 이 아이도 느꼈으리라

편하게 자신의 몸을 맡기기에는 내가 서툴다는 걸.

눈이 크고 마른 체구에 꼭 원숭이같이 생긴 검정 푸들을 홍대 작은 애견샵에서 만났다.

 

나는 개를 무서워했지만 신혼 초 신랑의 잦은 외국 출장으로 혼자 밤을 지새우는 날이 점점 늘어나

강아지 한 마리 키워 보는 건 어떨까 싶어 한 번 보러 온 마음이었다.

생각보다 다양한 종류의 강아지들이 있었고 일제히 반갑다며 꼬리를 흔들어 우리를 반겼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이 아이가 있었다.

발랄한 아이들 사이에 까맣고 제일 작았던 이 아이는 고개도 들지 않고 무서운지 벌벌 떨며 움츠리고 있었다.

사장님은 한 마리씩 소개를 해주며 인기 있는 강아지부터 보여주셨다.

이리저리 쇼핑하듯 구경하며 한참을 고민하니 사장님의 시선이 멋쩍은지

남편은 마음에 드는 강아지가 있냐고 물었다.


사실 그는 강아지 키우는 것을 반대했다.

할 일이 많을 텐데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남편 집에는 큰 개가 있다. 아버님이 술김에 시장 노상에서 작은 믹스견 강아지를 사 오셨다.

지금은 크기가 커져서 우렁찬 소리로 짖어대면 꽤 무섭다.

그때마다 그 아이를 통제하던 남편을 믿고 키워볼 용기를 낸 것도 사실이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개의 뒤치다꺼리는 모두 시어머니의 몫이었다.      


나는 강아지 하면 떠오르는 하얀 바둑이를 생각하고 있었기에

많은 강아지들 앞에 서니 선뜻 선택하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자꾸 까만 작은 푸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의 마음은 이미 결정 됐지만 괜히 남편을 떠본다.

“저 포메는 어때?”

그는 내 마음을 알았는지

“검정 푸들도 귀여운데, 왠지 정이 가지 않아? 자긴 어때.”

그렇게 우리는 검정 푸들을 품에 안았다.

아직 2개월, 커다란 눈에는 엄마와 떨어져 혼자가 된 걸 아는지 슬픈 눈이었다.

이 아이는 빨리 누군가가 엄마가 되어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집은 16평 남짓한 작은 아파트라 활발한 강아지는 답답하겠다 싶기도 했다.    

  

홍대에서 30분 정도 차를 타고 가야 하는데 혹시 차 안에서 멀미는 하지 않을지 걱정이 돼서

최대한 강아지가 편할 수 있도록 안아야지 생각했지만 너무 작고 말라서 어떻게 안아야 할지 몰랐다.

몸은 굳고 손에는 땀이 차올랐다. 그렇게 40분을 가니 죽을 맛이었다.

남편에 대한 기대는 일주일도 안 가서 깨졌다.

안 키운 나보다 아는 것이 더 없었다.


집에 오자마자 남편이 조심스럽게 침대 위에 올리라 해서 나는 그렇게 했다.

긴장된 근육을 풀며 귀여운 아기짐승을 물끄러미 쳐다봤다.

이 아기도 좀 편해졌는지 침대 위에 시원하게 오줌을 싼다.

놀란 나는 황급히 내렸지만 이미 이불에는 지도가 그려졌다.

이제 시작이구나.

‘앗! 배변 교육부터 시켜야겠다.’

인터넷을 열심히 뒤져 패드를 이곳저곳 여기저기 왕창 깔아놨다.

다행히 누굴 닮아 이리 똑똑한지 신기하게 패드 위에만 가서 싼다.

그리고 한 번에 다 싸지 않고 자주자주 찔끔찔끔거렸다.    

  

우리 외에 다른 생명체가 그것도 검은 짐승이 집 안으로 돌아다니니

남편과 나의 신경과 시선이 온통 이 아이에게 간다.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라는 옛말을 가끔 남편에게 장난처럼 했는데

두 번째 검은 짐승이 돌아다닌다.

하지만 기분 좋은 긴장과 불편함이다.

대답을 바라고 묻는 건 아니지만

“넌 어느 별에서 왔니? 너는 형제가 몇이야?”

...

“여기가 이제 너희 집이야. 나는 엄마고 쟤는 아빠야.”

...

“우리랑 앞으로 평생 살 거니까, 잘 지내보자.”

...

나는 끊임없이 실없는 소리를 해댄다.


얼굴을 갸우뚱거리는 모습이 내 말을 더 잘 듣기 위한 제스처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자꾸 쳐다보고 만지니 귀찮은지 슬그머니 자리를 뜬다.

굳이 쫓아가 눈을 마주치니 싸우자는 의미도 알아들어 피하는 거라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다.

나는 강아지의 언어를 하나씩 배워가며 아들처럼 자주 안아주고 자주 말 걸어주자 마음먹었다.

눈까지 까만 이 남자아이의 이름을 남편은 까미라 지었다.

나는 촌스럽다며 불평했지만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고

빨리 이름을 불러주고 싶어 급히 내린 결정을 나는 지금도 후회한다.

더 멋진 영어 이름도 좋았을 텐데 하면서 말이다.

로미오나 테디라고 말이다.



  

                              개는 자기 자신보다 당신을 더 사랑하는 유일한 생명체이다.


                                                            -  josh Billing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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