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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오늘 Jun 14. 2024

쓸개 없는 엄마의 아름다운 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시끄럽다.


“ 반딱 반딱 다근별 아름답게 디추네

  음쪽 하늘에서두~ 즘쪽 하늘에서두~

  알움답게 디추네에에 ~~ “


더 놀고 싶다는 아이의 투정에 모른 척 등지고 돌아누워 잠든 척하고 있는 엄마와 아무리 흔들어 깨워도 일어나지 않는 엄마 등에 매달려 노래를 부르는 세 살 아들.

우리의 밤은 당신의 낮보다 시끄럽고, 다정하다.






한 번도 불러준 적 없는 노래를 아이가 흥얼흥얼 부르는데 차마 모른 척할 수 없었던 나는, 결국 아이 쪽으로 몸을 돌려 기립 박수를 보내고 엄마가 깨어있단 사실에 신이 난 아들은 흔들흔들 율동까지 더 해 노래한다. ”바아안딱 바아안딱 다아그은벼어어얼!“ 이곳은 서쪽 하늘도 동쪽 하늘도 아니지만, 아이를 바라보는 내 눈에… 그런 나를 바라보는 아이 눈에… 반짝반짝 별이 내려와 아름답게 비춘다. 이 시기가 아니면 들을 수 없는 발음에 작고 가냘픈 목소리… 가능하다면 아이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과 노래들을 기록해두고 싶다. 그래서 홈캠을 설치하는 것일까. 아쉽게도 우리 집에는 홈캠이 없고, 분신처럼 늘 곁에 두는 휴대폰은 이상하게도 아이가 노래를 부르거나 생각도 못한 말을 하는 순간에는 저 멀리 찾을 수 없는 곳에 있는 것인지… 참으로 미스터리한 일이다.


5월 말 미루고 미뤘던 담낭(쓸개) 제거 수술을 했다. 임신 기간 내내 명치가 아프고 구토를 자주 했는데 그때는 그냥 그게 입덧인 줄 알았고, 출산 후에도 과식을 하거나 감기약이나 영양제를 먹었을 때 식음 땀이 나면서 견디기 힘들 정도로 몇 시간씩 명치 통증이 이어졌는데… 이 역시 입덧으로 인해 위가 망가져서 그런 줄로만 알고 위 내시경만 열심히 받으러 다녔더랬다. 그러다 건강검진을 통해 알게 된 담낭염을 동반한 담석증. 한참을 미루고 미루다 지난 5월 말, 드디어 수술을 했다.


평소 명치 통증이 너무 심했던 터라 수술에 대한 두려움은 전혀 없었는데, 3박 4일 동안 아이와 떨어져 지낼 생각을 하면 자다가도 절로 눈물이 났다.

5월에 접어들면서 나는 아이에게 내 몸에 일어난 일들을 아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해 줬다.

“ 양치 안 하면 이에 뭐가 생기지?”

“ 벌레!”

“ 그 벌레는 어떻게 없앨 수 있어? “

“ 치카치카 양티!“

“ 맞아~ 엄마 배에도 벌레가 생겼대~ 근데 뱃속은 엄마 스스로 양치를 할 수 없으니까 의사 선생님 만나서 벌레 떼내고 올 거야.”

“ 오~~ 엄마 대단해! 배에 벌레가 어떻게 들어갔어? “

물론, 대화가 원활하게 흘러간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틈날 때마다 나는 병원에 가야 하는 상황을 아이에게 설명해 줬다.


태어나 단 한 번을 엄마와 따로 자본 적 없는 아이가 나 없는 밤들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입원하기 일주일 전부터 아이 걱정으로 눈물짓던 밤들이 무색할 만큼 아이는 씩씩하고 쿨하게 나를 배웅해 줬고, 3박 4일 내내 친정 엄마 곁에서 한 번을 울지 않고, 밥도 잘 먹고 잠도 잘 잤다고 한다. 나 역시, 아이 없이 3박 4일을 잘 보낼 수 있을까… 싶었던 마음은 병실에 들어서는 순간 기대로 변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출산을 하고 단 하루도 온전히 나만의 시간을 가졌던 날이 없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는 있지만, 일 년은 한 시간씩만 놀고 점심 먹기 전에 하원시켰고 최근 3개월 전부터 점심을 먹고 1시에 하원을 하고 있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가고 없는 세 시간 동안 나는 브런치 글을 쓰기도 하고, 청소를 하기도 하고, 도서관에 빌려 온 책을 읽기도 한다. 짧아서 더 꿀 맛 같던 시간들… 오늘부터 3박 4일 나 홀로 이 방에서 마음껏 책도 읽을 수 있고 글도 쓸 수 있다 생각하니 가슴이 콩닥 거렸다. 물론, 수술 후 마취 부작용으로 책은커녕 아이의 안부조차 물어보지 못하고 통증을 호소하며 잠만 자다 돌아와야 했지만… 그동안 나를 괴롭혔던 명치 통증은 물론 3박 4일 원없이 잠만 자서 피로까지 싹 사라진 느낌이라 감사할 따름이다.


담낭염 수술이 끝나고 선생님께서 쓸개에 들어 있던 돌을 선물처럼 전해주고 가셨는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개수에 입이 쩍 벌어졌다. 더 이상 내 몸에 쓸개는 없지만, 전화로 아이가 몇 번이나 묻고 또 물었던 “엄마 벌레 잡았어??” 의 그 벌레를 (물론 벌레 아니고 돌이지만) 집으로 들고 갈 수 있다 생각하니 뿌듯한 마음까지 들었다면 좀 이상한가 풉. 아니나 다를까 나를 본 세 살 아들은 첫마디는 “엄마 보고시포써~~” 가 아닌 “벌레 어디써?“ 였…


엄마 없으면 아무것도 못할 줄 알았던 염려와 달리, 고작 3박 4일 친정 엄마 손을 빌렸을 뿐인데 아이의 식습관은 물론 수면 시간도 딱 잡혀있어서 놀라다 못해 내가 그동안 육아를 제대로 못하고 있었나… 반성 아닌 반성을 하다 이내 서운한 마음까지 들 정도로 아이는 반듯해져 있었다. 친정 엄마가 육아에 훈수라도 둘라 치면 세상이 변했다. 엄마는 아무것도 모른다.

싫은 내색부터 비췄는데… 역시 나이 상관없이 엄마 말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이 나오다보다.


엄마 보고 싶은 내색 한번 없이 잘 지냈다는 말에 기특한 마음 반 서운한 마음 반으로 그날 밤 아이를 품에 안고 침대에 누웠다. 격하게 흥분하며 발을 동동 구르는 아이에게  “엄마 배 아야아야 해서 발로 차지 않게 조심해야 해. 엄마 배 발로 차면 엄마 병원 가야.. “ 말이 끝나기 무섭게 벌떡 일어나 얼굴을 마구 찡그리며 으앙 하고 눈물이 터져버린 아이는 그렇게 한동안 서럽게 꺼이꺼이 울었다. “참을 수가 엄써 멈춰지지가 아나~~”라는 말과 함께 한참을 울던 아이는 “엄마가 나를 두고 갔어 오래오래 오지 않았어! “ ”병원시러!! 엄마 미워!! “를 외치며 내 품에 안겨 울고 또 울었다.


어? 아.. 아….. 그랬구나. 아픈 엄마를 위해… 애쓰고 있는 할머니를 위해… 그리운 마음 잘 참고 씩씩하게 지냈던 거구나. 대견하다 우리 아들… 다 컸네 다 컸어… 아주 잠시 해방감을 느꼈던 마음이 미안하기도 하고 내색 없이 엄마를 그리워했을 아이의 마음이 안쓰러워 나도 따라 울었다. 아이와 나는 그렇게 한참을 서로의 품에서 보고 싶었네 사랑하네 머릿속에 떠오르는 온갖 다정한 말들을 쏟아냈다.

그런 우리를 지켜보던 T남편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질린다는 듯 “정말 피곤하다 피곤해. 한 명도 피곤했는데 이제는 하나 더 늘어 둘이네. “ 했다.


홈캠을 설치할 걸 그랬다. 모두가 잠든 밤. 네가 들려주는 모든 이야기를 하나도 놓치지 않고 꾹꾹 담고 담아 네가 더 이상 엄마 품을 찾지 않는 밤. 하나하나 꺼내 보면서 그리워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러고 싶은데… 우리 집에는 홈캠이 없어서 너무너무 아쉬운 밤이네.


너와 나의 다정하고 시끄러운 밤.

오래오래 간직해서 접어주고 싶은 너와 나의 밤 밤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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