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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오늘 Jun 21. 2024

나의 영원한 육아동지 "내일의 나"

내일의 나를 위하여 오늘의 나야 잘 부탁해.

잔뜩 쌓인 빨래더미 앞에서,

밀려있는 설거지 거리 앞에서,

온갖 잡동사니로 널브러져 있는 베란다 앞에서,

오늘도 찾게 되는 단 한 사람.

“ 내일의 나야 잘 부탁해. ”


학창 시절부터 누구보다 믿고 의지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건 다름 아닌 [내일의 나] 되시겠다.

학교에서 시험 기간이 공지되는 그 순간부터 찾게 되는 [내일의 나] 오늘은 이만큼 밖에 못했지만, 내일의 나는 조금 더 힘내서 해주겠지. 오늘은 너무 졸려서 이른 시간에 잠들지만, 내일의 나는 잠들지 않고 모든 것을 끝내줄 거야. 직장을 다닐 때도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주었다. 오늘 이만 나는 퇴근하지만 내일의 나는 이른 출근과 늦은 퇴근으로 오늘의 나를 커버해 줄 거야.

단, 한 번도 완벽한 내일의 나를 만나 본 일이 없고, 뭐 하나 제대로 하는 내일의 나를 본 적 없음에도 불구하고… 내일의 내가 보여 줄 열심을 기대하며 잠이 들곤 했다.


결혼을 하고 살림과 육아를 할 때도 내일의 나만큼 나를 마음 편히 쉬게 해주는 사람이 없다.

아이 저녁을 먹이고, 목욕 시키고, 늦게 퇴근한 남편 저녁을 챙겨주고, 다시 아이에게 돌아와 책을 읽어주고, 아이를 재우고 나면 몸속 에너지가 5%도 안 남은 기분이 든다.

거실에 널브러진 아이 장난감, 요리를 하면서 그때그때 치운다고 해도 남아있는 설거지거리. 깨도 깨도 새로운 판이 열리는 게임처럼 치워도 치워도 끊임없이 새롭게 생겨나는 집안일에 감탄하며 항복을 선언하고 다시금 소환하게 되는 [내일의 나] 비록 오늘은 에너지가 다돼서 아이 옆에 쓰러져 잠들지만, 내일의 나는 보란 듯이 모든 판을 깨주겠지... 내일의 나에게 큰 기대를 품고 스르륵 잠이 들기 일쑤.


아침에 눈을 뜬 오늘의 나는… 생각보다 개운치 않다. 여전히 어깨는 결리고 허리는 전날 보다 더 쑤시는 것 같고 눈까지 침침하다.


어제보다 늙은 오늘의 나.

내일의 나에게 줄 야채를 준비하며 오늘의 나는 빵을 먹고, 내일의 내가 해야 할 운동을 생각하며 운동 기구를 쿠팡으로 주문했다가 오늘의 나는 도저히 할 수 없을 것 같아서 반품하는 일도 종종 있다.

육아를 하면 좀 달라질 줄 알았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커줬으면 좋겠다. 생각하는 그 모습으로 내가 먼저 살아봐야겠다고 임신 기간 내내 생각했는데 오늘의 나는 역시나 계획만 거창했을 뿐.

내일의 나에게 모든 것을 미루며 아이와 놀아주는 일 마저 내일은 꼭, 내일은 반드시, 내일은 진짜로… 하면서 휴대폰 속 타인의 삶을 지켜보기 바쁘다.


어제저녁. 아이를 재우고 아이 곁에 누워 휴대폰을 하는 대신 무거운 몸을 이끌고 주방과 거실 정리를 했다. 깨끗해진 거실에 몸을 대자로 뻗고 누워 달도 봤다. 그러다 허리를 번쩍 들어 허리 운동도 좀 하고 허리 운동 하는 김에 팔 운동도 다리 운동도 하다 보니 온몸에 땀이 쭉 나서 따뜻한 물로 샤워도 했다. 샤워를 하니 졸음이 사라진 듯해서 오랜만에 책도 읽었다.

어제의 나 덕분에 오늘의 나의 아침은 뭐든 수월했다. 오랜만에 한 운동 덕분에 옆구리와 허벅지 안쪽이 묵직했지만 오히려 개운한 느낌이 들었고, 밀린 집안일이 없으니 눈 뜨자마자 아이와 놀아 줄 수 있었다.


타인과의 원만한 관계를 위해 자주 쓰이는 말.

Give and Take

때론 나 스스로에게도 필요한 말이 아닌가 싶다.

매일 기대고 의지하기만 했던 내일의 나에게 오늘의 내가 주는 선물.

내일의 내가 조금 더 편할 수 있도록 이제는 오늘의 내가 힘을 좀 내봐야 하는 때가 아닌가 싶다.


오늘의 나는 어제보다 늙었지만,

내일의 나보다는 젊으니까.

오늘 하루도 힘내보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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