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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 오늘 May 29. 2024

남편, 너 T야?

F아내가 T남편과 사는 법.

서로 바빠 한동안 (아주 꽤.. 오랜 시간) 연락을 못하고 지냈던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뜬금없이 카톡을 보냈다.

“ 너 MBTI뭐여? 갑자기 궁금해지네.”


그 누구 하나 갑자기 무슨 일이냐 묻는 이 없고, 마치 이 질문을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 친구들은 자신의 MBTI 유형과 특징에 대해 설명해 줬다.

반갑다.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는 덤이었다.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한 명도 빠짐없이 모두가 파워 F(감정형) 일 줄이야.

우리는 입을 모아 이런 따뜻한 대화는 오랜만이라며 짧은 대화였지만 마음의 큰 위로가 됐다며 서로의 입담을 다시 한번 추켜세웠다.


여담인데 무한 공감, 일단 공감이었던 우리 대화가 얼마나 공감에 치우친 편향된 대화였냐면,

“ 아니 우리 회사에 김 아무개라고 있는데”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우리는 입을 모아 “ 걔가 나빴네. 걔가 잘못한 거지.” 했다.

그럼 친구는 손사래를 치며 “ 아니야 지금 말하는 얘는 나랑 친한 얘야...” 하고 분위기를 다시 잡아줬고,

우리는 또 질세라 “ 아 어쩐지 이름이 예쁘더라. 이름부터 착해. 느낌이 좋아. “ 하고 뒤집어져라 웃었다.

친구 중 하나는 우리를 만나면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 같다며 우리 모임을 [자존감 지킴이]라고 불렀다.


차마 물어보진 못했지만, 결혼 전 만난 연애 상대들도 대부분 F이거나 T(사고적)라 하더라도 말 그대로 연애였기 때문에 최선을 다해 공감을 해줬던 모양이다.

그렇게 나는  “다정도 병이다.”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공감과 다정함이 넘치는 사람들 속에서 30년을 넘게 살았고 그게 문제라면 문제였을까.

공감과 위로를 잘해주는 사람은 “정상” 그렇지 못한 사람은 “비정상” 차갑고 정 없는 사람. 이상한 사람. 가까이해서는 안 되는 사람이라는 선입견을 당연시하고 살았다.

그런 마인드로 남편을 소개팅으로 만나게 됐고… 다소 어렵게 대화를 이어 나갔다.

첫 만남 후 집으로 오는 길 주선자에게 감사 인사 대신

“절교장은 잘 받았으니 내일 회사 출근하면 옥상으로 올라오세요. 조금 진지한 결투 신청입니다.”라고 카톡을 보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T 남편은 연애 시절부터 납득이 되지 않으면 끝까지 싸워 이기는 편이었고, 공감 대신 흘려듣기 또는 설득하기를 시전 했다.

내가 무슨 말만 하면 “ 그건 일반화의 오류야. 네 주변이 그렇다고 모두가 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아니야.”라고 반박을 해 싸는데…

우리는 정말이지 맹렬하게 자기의 주장을 꺽지 않고 싸웠다.

달리는 차에서 지금 문을 열고 내려도 되나 고민하며 싸웠고, 이 커피를 지금 얼굴에 팍! 뿌려도 되는 건가 고민하며 싸웠고

삼겹살 집에서 아직 구워지지 않은 삼겹살을 손으로 집어 남편의 따귀를 때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상상했고,

그 상상이 실현 가능성 제로라는 사실과 그 상상을 할 때 가장 행복한 내 모습을 보며 아, 이건 아니다 싶어 남편에게 이별을 통보했다.

남편의 긴 설득 끝에 우리는 다시 연애를 시작했고, 와- 이거 보통 아닌데 하면서도 끝끝내 헤어지지 못하고 부부연을 맺고 살고 있는 걸 보면

우리 둘 다 지팔지꼰.. 이라고까지 말하면 아이한테 미안하니까 하늘이 정해준 질긴 인연이라고 이렇게 저렇게 포장해 보기로 한다.

결혼 후에도 나는 종종 주선자에게 사과를 요구했고 주선자는 그때마다 “그래도 결혼했으면 됐지 뭐” 하고는 크게 웃었다.

최근에 알게 된 사실인데 주선자도 T였다지모야야야야앗 (물론, 편 가르기를 하려는 것은 아닙니다만)


다소 늦어진 임신으로 신혼 기간이 6년쯤 되나 보니 그 사이 우리는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기보다는

서로 터치하지 말아야 할 부분과 혼자 있는 시간에 대한 존중.

함께 할 때 즐거운 순간을 잘 조율해 가며 그럭저럭 생각보다 고요하고 안정감 있는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친구 말로는 내가 내 남편 없는 세상은 상상도 할 수 없다고 했다던데… 글쎄… 어쩜 이렇게 기억이 1도 안나냐.


길고 긴 신혼 기간을 지나 아이가 태어났고, 육아 시작과  동시에 남편은 새 직장으로 이직을 하면서 나도 남편도 모든 생활 패턴과 환경이 달라졌다.

그래서 그랬을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가는 방식과 표현 방법이 달랐던 남편과 나는 연애초로 돌아간 것처럼 다시 한번 더 뜨겁게 싸우기 시작했다.

물론, 아이가 있기 때문에 악을 쓴다거나 대화로 싸우는 일은 없었지만 기류의 싸움이랄까…

문을 닫을 때 싱크대에 물컵을 올려 둘 때.  대화는 없었지만 우리는 최선을 다해 웅탕쿵탕탕 물건들로 마음을 대신해서 감정을 표현했다.

아이를 향한 사랑과 비례하게 남편을 향한 미움도 날로 날로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커져갔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 시절 나는 남편이 미워서 미워했다기 보다는 남편에게 위로, 공감, 사랑이 받고 싶었던 것 같다.

가정은 물론 사회생활에서도 큰 변화가 있었던 남편 역시, 격려와 따뜻한 말 한마디가 고팠는지 모르겠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일은 짝사랑의 가슴앓이 못지않게 외롭고, 괴로웠다.

생각보다 길어진 미움의 시간 속에서 나는 우울감과 무기력감을 자주 느꼈고 정신과 상담을 받기도 했다.

관계로 인한 우울감은 그 어떤 것으로도 쉽게 해소가 되지 않았다.

남편에게 듣고 싶은 말을 책에서 찾아 읽었고, 좋아하던 에세이나 소설 대신 인간 심리책을 자주 들여다봤다.

그때 처음으로 나는 MBTI에 대해 알게 됐고, 내 성격 유형과 남편의 성격 유형에 대해 곰곰이 생각이란 걸 해보게 된다.

그리고 생각보다 남편과 비슷한 유형의 사람이 이 세상에 많다는 사실과 내 성향을 가진 사람이 의외로 많지 않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혹자는 말한다. 과학적 근거가 전혀 없는 항목들로 한 사람의 성격을 이분법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잘못된 것이며 신뢰하기 어렵다고…

그러나 육아에 지쳐있고 냉소적인 남편의 태도에 상처받았던 내게 MBTI는 한 줄기의 빛이었다.

남편을 이해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남편을 너머 시댁 식구라던가… 그 밖에 나와 성격이 맞지 않다고 느꼈던 사람들에 대해

그들이 틀렸다. 가 아닌 나와 다르다.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계기가 됐기 때문이다.

그 시절 나는 수시로 남편의 MBTI유형을 자주 들여다봤다.

말이 없던 남편 대신 그 유형에 대한 특징, 장단점을 읽고 있다 보면 마음의 평화가 깃들었다.

공감이 중요한 나는 그렇게 남편의 유형을 공감하게 된 것이다.

아, 이 남자 공감이 자체적으로 어려운 사람이었는데 10년간 공감을 강요받았으니 힘들었겠군.

오- 이 양반 파워 J(계획형)이었는데 종종 즉흥적이었던 나를 통해 스트레스받았겠군.


그 뒤로 나는 싱크대에 컵을 탁! 하고 내려놓는 대신, 남편이 좋아하는 홍초를 차갑게 해서 식탁에 올려뒀다.

육아로 힘들어도 남편이 돌아오기 전 집안 청소를 깨끗하게 해 두려고 노력했고,

남편에게 공감이나 위로가 받고 싶은 날엔 마음 따뜻해지는 에세이나 시집을 읽었다.

책 속의 작가들이 나를 찾아와 오늘 하루도 고생했다고 잘했다고 위로해 주었다.


미움의 감정은 점점 사그라들었고

미움의 자리에는 사랑이라기 보단… 나와 남편을 향한 애잔한 감정들로 채워졌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내게 이런 말을 한다.

“너도 고생 참 많아… 육아는 진짜로 네가 거의 다 하잖아. 그거 쉬운 거 아닐 텐데… 진짜 고맙게 생각해. “

나는 그 어떤 대답도 하지 않았다.

빈말은 물론 긴말도 잘하지 않는 남편에게 들은 저 말의 울림이 내게 꽤 컸달까…

그날 밤 그 공간에는 남편의 목소리만 둥둥 떠다니게 남겨두고 싶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아이가 이 시점에서 왜 우는지.

원하는 모든 것을 다 들어줬는데 어느 지점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이렇게 끝없이 칭얼거리는지 알 수 없다.

아이는커녕 나 스스로가 뭘 원하는지 나 스스로가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도 헷갈린다.

나에게 지금 필요한 것이 잠을 자는 것인지. 따뜻한 말 한마디인지. 나가서 돈을 벌고 싶은 건지…

나조차 모르겠는 내 마음을 남편에게 공감해 달라고 나는 10년을 넘게 칭얼거렸던가,

남편에게도 내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을 텐데…

그 마음 그 행동들을 나도 모르게 밟고 지나간 적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앞으로도 우리는 가족이란 이름으로 묶여있지만 영원히 서로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살게 될 것이다.

남들은 다 알아도 가족에게만큼은 보이고 싶지 않은 모습이나 마음도 있을 것이고,

남들은 다 모르지만 가족에겐 익숙한 모습이나 성격도 있을 것이다.

그때마다 그건 틀렸어. 이건 이렇게 해야지.라는 말 대신 나와 생각이 다르군.

그래 그럴 수 있지. 충분히 그럴 수 있겠어. 하고 100%는 커녕 20%도 이해하지 못하는 날이 있더라도 나는 공감왕이니까 지난 시절처럼 미워하지는 말아야겠다 F 아내는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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