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이 미운 날

by HoA
1609935675320.jpg

퇴근길에 눈꽃이 하나 둘 날리는가 싶더니

집에 도착할 즈음엔 어깨 위에 수북이 쌓여

탈탈 털어낼 만큼 매섭게 눈이 왔다.

그렇잖아도 한파가 심해질 거라는 예보에 마음이

며칠간 미리 무거워지기 시작한 터였다.

일흔이 다 되어서도 저녁에 일을 나가시는 아빠가

걱정되서다. 어느 정도 내 경제 사정이 안정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빠가 일을 그만두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당뇨에 혈압 때문에 의무적으로라도

루틴이 없으면 병난다는 아빠의 주장에

늘 못 이기는 척하며 제발 무리만 하지 마시라며

묵인하곤 했다.

건강은 핑계일 뿐 내심은 경제적으로

딸에게 의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임을 알면서도 제발 그만두시라고 강권하지 못했다.

이번 한파엔 일하지 마시라고

잘리면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자 해도

그저 조심하겠다는 말만 하시는 미련하게 성실한

내 아버지...

그 아버지를 닮아 나도 이렇게 성실해 빠졌는데

그 성실함이 미덕이 아닌듯한 세상을 살다 보니

물색없이 흩날리는 눈이 너무나 미워 죽겠다.

내가 미워한들 눈도 추위도 겨울도 세상도 아빠와

나도 여전하리란 것을 안다.

그저 이 눈이 녹아내릴 때쯤

아빠에 대한 미안함, 주변에 품은 미움,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이 같이 녹아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한숨을 폭 쉬고

눈물을 훔치는 밤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꿈꾸는 새로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