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길에 눈꽃이 하나 둘 날리는가 싶더니
집에 도착할 즈음엔 어깨 위에 수북이 쌓여
탈탈 털어낼 만큼 매섭게 눈이 왔다.
그렇잖아도 한파가 심해질 거라는 예보에 마음이
며칠간 미리 무거워지기 시작한 터였다.
일흔이 다 되어서도 저녁에 일을 나가시는 아빠가
걱정되서다. 어느 정도 내 경제 사정이 안정되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아빠가 일을 그만두셨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하지만 당뇨에 혈압 때문에 의무적으로라도
루틴이 없으면 병난다는 아빠의 주장에
늘 못 이기는 척하며 제발 무리만 하지 마시라며
묵인하곤 했다.
건강은 핑계일 뿐 내심은 경제적으로
딸에게 의존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임을 알면서도 제발 그만두시라고 강권하지 못했다.
이번 한파엔 일하지 마시라고
잘리면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하자 해도
그저 조심하겠다는 말만 하시는 미련하게 성실한
내 아버지...
그 아버지를 닮아 나도 이렇게 성실해 빠졌는데
그 성실함이 미덕이 아닌듯한 세상을 살다 보니
물색없이 흩날리는 눈이 너무나 미워 죽겠다.
내가 미워한들 눈도 추위도 겨울도 세상도 아빠와
나도 여전하리란 것을 안다.
그저 이 눈이 녹아내릴 때쯤
아빠에 대한 미안함, 주변에 품은 미움,
스스로에 대한 한심함이 같이 녹아내리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한숨을 폭 쉬고
눈물을 훔치는 밤이다.